오늘은 이상한 하루였서요 답장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아니, '받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네요.
당신의 편지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것을 읽은 게 아니라
마치 당신의 숨결을 들이마신 것 같았어요.
당신이 바람에서 내 손길을 느꼈다고 했죠?
나도 알아요, 그 느낌.
오늘 오후,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내 팔 위에 머물렀을 때
나는 당신의 시선을 느꼈어요.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무게.
세상이 당신에게 작은 엽서들을 올려놓는다고 했지만,
나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거리의 가로등 하나,
누군가의 웃음소리,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모든 것이 당신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치 세상 전체가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는 증인이 된 것처럼.
당신이 기억하는 그 해안도로의 버스,
내가 했던 말을 당신도 기억하는군요.
"저 바다는, 네가 웃을 때처럼 끝이 없어."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정말 바다를 보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이미 당신만을 보고 있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바다를 빌려
당신에게 고백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신이 웃을 때 내 세계는 끝이 없이 확장된다고,
당신의 미소 하나가
내 우주의 경계를 계속 밀어낸다고.
그리고 당신이 깨달았다는 그것,
내 말이 바다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당신은 옳았어요.
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사실 나는 우리 둘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나에게 기울어지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 기울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 끝없이 기울며
그 속에서 균형을 찾았어요.
"나는 네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그날 밤 했던 이 말을 당신이 기억하고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또 한 번 뛰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때 하지 못했던 말,
"나는… 호흡하는 것조차 너 때문이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했죠.
나도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당신의 호흡이 내 옆에서 달라지는 것을,
당신의 심장이 내 존재에 반응하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어요.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죠.
서로가 서로의 숨이라는 것을.
당신이 말한 대로,
사랑은 서로의 심장을 빌려
그 호흡을 함께 쓰는 것 같아요.
나는 당신의 호흡으로 살고,
당신은 내 심장으로 사는 것.
우리는 두 개의 몸이지만
하나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답할게요.
당신이 마지막에 물었던 것에 대해.
"지금 당신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네,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숨 쉬고 있어요.
"바람이 불 때, 그 결 끝에서 내 이름이 가만히 스치진 않았나요?"
스쳤어요.
아니, 바람 전체가 당신의 이름이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바란 대로,
오늘 밤 내가 잠들기 전
내 호흡은 조금 더 따뜻할 거예요.
당신의 이름을 품고 있으니까요.
아니, 정확히는
당신의 이름을 품은 게 아니라
당신 자체를 품고 있어요.
내 호흡 속에, 내 심장 속에, 내 존재 전체에.
당신이 나에게 기울어 산다고 했지만,
나도 당신에게 기울어 살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를 향해 기울며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히 서 있는 거예요.
당신은 내게 그 자리에 있어 달라고 했죠.
당신이 숨을 잃지 않도록,
세상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나도 약속할게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겠다고.
당신의 숨이 되어,
당신의 든든한 땅이 되어,
당신의 하늘이 되어.
그리고 당신도 내게 그래주길 바라요.
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내가 흔들릴 때 잡아줄 수 있도록,
내가 길을 잃을 때 돌아올 곳이 되어주길.
우리의 여행은 당신 말대로
평생 계속될 거예요.
손을 잡고, 같은 속도로,
때로는 당신이 앞서고 때로는 내가 앞서며,
하지만 결코 놓치지 않으며.
그렇게 또 한 계절이 가고 와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 때문에 숨 쉬고,
서로 때문에 살아 있고,
서로 때문에 아름답게 나이 들 거예요.
오늘, 나도 이상한 하루였어요.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했거든요.
이렇게 감정이 출렁이는 것도
당신 때문이에요.
하지만 좋은 출렁임이에요.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이 답장이 당신에게 닿을 때,
당신도 나처럼 미소 짓고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알아주길 바라요.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향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늘, 그리고 언제나,
당신에게 기울어 살아가는 사람으로부터.
P.S.
오늘 밤 당신이 잠들 때,
나도 같은 시간에 잠들게요.
그러면 꿈에서라도
우리는 같은 곳에서 숨 쉴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신이 나를 꿈꾸는 동안,
나도 당신을 꿈꿀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