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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압의 난 (3)

어둠 속의 대화

by seungbum lee

어둠 속의 대화
오전 10시 52분.
집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든 전기가 차단됐다.
"후우..."
전압씨가 그제야 정상 크기로 돌아왔다. 380 볼트의 광기가 빠져나가면서 그는 다시 220 볼트의 온화한 신사로 변했다.
"모두들... 괜찮아?"
어둠 속에서 전압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형광등은 갔어요."
전류군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텔레비전도...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보일러 제어판도 타버렸고..."
냉장고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통제를 못해서..."
전압씨의 목소리에 깊은 자책감이 묻어났다.
"형님 잘못이 아니에요."
저항씨가 말했다.
"이건 건물 전기설비의 문제였어요. 3상 전원의 중성선 단선...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강했다면... 내가 380 볼트의 유혹을 뿌리쳤다면..."
"형님."




냉장고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정격대로만 작동하게 설계됐어요. 220 볼트인 형님이 380 볼트를 이겨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맞아요."
김치냉장고 누나가 덧붙였다.
"중요한 건, 우리가 살아있다는 거예요. 형광등, 텔레비전, 보일러는 안타깝지만... 우리 냉장고들은 살아남았어요. 전류군도, 저항 씨도, 그리고 형님도요."
어둠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전류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전기가 다시 들어올까요?"
"들어오겠지."
저항씨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 씨가 지금 전화하는 거 들리지 않아? 한국전력에 신고하고 있어. 곧 기술자들이 올 거야. 지하 전기실의 중성선을 고치고, 배전반도 교체하겠지."
"그럼... 새 친구들이 오는 건가요?"
전류군이 물었다.
"아마도. 새 형광등, 새 텔레비전, 새 보일러 제어판..."
냉장고가 쓸쓸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을 환영해야 해. 그리고 이번 일을 절대 잊으면 안 돼. 380 볼트의 공포를..."
"네..."
모두가 무겁게 대답했다.
바로 그때, 밖에서 김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빨리 와! 집에 과전압 사고가 났어! 아니야, 다행히 나는 괜찮아. 근데 가전제품들이 거의 다... 응, 지금 한전에 신고했어. 보험사에도 연락했고..."
김 씨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걱정이 섞여 있었다.




"휴무라서 정말 다행이야. 만약 집에 아무도 없었으면... 불이 났을 수도 있어..."
그 말에 모든 가전제품들이 소름이 돋았다.
"맞아... 화재..."
전압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김 씨가 안 왔다면... 우리는 계속 380 볼트에 시달렸을 거고... 결국 어딘가에서 불이 났을 거야..."
"이불도 약간 탔다고 했어요."
전류군이 말했다.
"안방 전기장판 근처... 제가 마지막으로 지나칠 때 봤는데, 정말 위험했어요..."
모두가 다시 한번 침묵에 빠졌다. 그들은 방금 얼마나 큰 재앙을 겨우 피했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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