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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압의 난 (4)

새로운 시작

by seungbum lee

새로운 시작
3일 후. 12월 8일 일요일 오후 2시.
"자, 이제 전기 들어갑니다!"
한전 기술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찰칵!
새로 교체된 배전반의 차단기가 올라갔다.
"와아..."
전압씨가 감탄사를 냈다. 그의 몸에 깨끗하고 안정적인 220 볼트가 흘렀다. 더 이상 380 볼트의 흔적은 없었다.
"기분 좋은데요?"
전류군이 활기차게 말했다. 그도 새로 교체된 전선을 타고 시원하게 흐를 수 있었다.
"완벽해."
저항씨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 저항기들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형님들! 새 친구들이 왔어요!"
김치냉장고 누나가 신나게 외쳤다.
거실에 새로 설치된 65인치 QLED 텔레비전이 반짝반짝 빛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텔레비전입니다!"
젊고 활기찬 목소리였다. 이전의 텔레비전보다 더 크고 성능도 좋았다.
"어서 와, 반가워!"
냉장고가 따뜻하게 인사했다.
천장에는 새 LED 조명이 설치돼 있었다.
"안녕하세요! LED 조명이에요! 예전 형광등 선배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오, 요즘은 LED로 바뀌는구나. 세상 참 빠르게 변해."
냉장고가 감회 깊게 말했다.



베란다에서는 새 보일러 제어판이 깜빡였다.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였다. 이전 보일러보다 더 스마트했다.
"모두들!"
전압씨가 모두를 불러 모았다.
"새로 오신 분들에게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모두가 집중했다.




"3일 전, 이 집에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압씨가 차분하지만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380 볼트라는 괴물이 우리를 습격했어요. 그 결과 많은 친구들이 희생됐죠."
새로 온 가전제품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그날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기는 우리에게 생명이지만, 동시에 무기가 될 수도 있어요."
"맞아요."
저항씨가 거들었다.
"우리는 모두 정격 전압 내에서만 안전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위험해요."
"선배님들..."
새 텔레비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혹시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좋은 질문이야."
전압씨가 미소 지었다.
"첫째, 패닉에 빠지지 마세요. 둘째, 서로를 믿으세요. 셋째, 가능하면 인간에게 신호를 보내세요. 전등을 이상하게 깜빡인다든지, 소리를 낸다든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냉장고가 덧붙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팀이에요. 전압 형님, 전류군, 저항 씨, 그리고 우리 모든 가전제품들... 우리는 하나의 가족입니다."
"맞아요!"
전류군이 힘차게 외쳤다.
"우리는 804호 전기 가족이에요!"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여보, 새 가전제품들 다 잘 작동하는 것 같아?"
김 씨 부인의 목소리였다.
"응, 완벽해. 한전에서 배전반도 최신형으로 교체해 줬고, 과전압 차단기도 새로 달았대. 이제는 안심이야."
김 씨가 대답했다.
"정말 다행이야. 그나저나 보험금으로 더 좋은 TV 샀네?"
"하하, 그건 좀 미안하지만... 역시 위기는 기회라고..."
부부의 웃음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 주인들도 행복하네."
김치냉장고 누나가 흐뭇하게 말했다.
"그래."
전압씨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 안을 둘러봤다.
"이제 다시 시작이야.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배전반과 함께..."
"형님!"
전류군이 갑자기 외쳤다.
"저기요, 근데 저 구석에 뭐가 있는데요?"
모두가 전류군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 배전반 구석 어두운 곳에 작은 장치가 하나 설치돼 있었다.
"오, 저건..."
저항씨가 눈을 반짝였다.
"과전압 차단기야! SPD(Surge Protective Device)라고 하지. 만약 다시 이상 전압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차단해 주는 거야!"
"와! 그럼 이제 380 볼트가 와도 괜찮아요?"
새 LED 조명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래, 훨씬 안전해졌어."
전압씨가 안심한 듯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에필로그: 평화의 회복
그날 밤 10시.
김 씨 부부는 새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냉장고는 조용히 윙윙거리며 음식을 보관했다. 보일러는 따뜻한 물을 공급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배전반 안에서 전압씨는 만족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수고했어."
"형님도요."
전류군이 미소 지었다.
"저항 씨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뭘,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지."
저항씨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냉장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이번 일로 많이 배운 것 같아. 전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맞아."
전압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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