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공평사이
서울 한복판, 광화문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정의빌딩'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었다. 2025년 겨울, 이 건물 17층에는 대한민국 공공정책연구원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공정해야 합니다. 규칙은 규칙입니다."
최진우 박사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한 번 쳤다. 서른여덟의 나이, 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돌아온 지 5년째인 그는 이 연구원의 공공정책실장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2026 청년고용촉진법 개정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공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출발선이 다른데 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게 정의입니까?"
맞은편에 앉은 한소희 연구원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서른다섯,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이 연구원에서 10년을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빨간 펜으로 가득 채워진 같은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창밖으로는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광화문 광장의 은행나무를 흔들고 있었다. 낙엽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앙상한 가지들만이 회색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소희 연구원, 당신은 매번 예외를 만들자고 합니다. 하지만 예외가 쌓이면 그게 규칙이 되고, 결국 누군가는 또 불공정하다고 외치게 됩니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모든 기업은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청년으로 충원해야 한다.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진우는 자신의 논리에 확신이 있었다. 그는 숫자를 믿었다. 데이터를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을 믿었다.
"간단하고 명료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있어요."
소희가 보고서를 펼쳤다. 그녀가 직접 조사한 통계들이 페이지마다 빼곡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청년과 전라남도 고흥에 사는 청년이 같은 청년입니까? 4년제 대학을 나온 청년과 고졸 청년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까? 재벌 3세 청년과 한부모 가정 청년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집니까? 진우 박사님, 당신의 '공정한' 30%는 결국 이미 가진 자들의 자녀에게 더 많이 돌아갈 겁니다."
진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소희의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의 대안은 뭡니까? 출신 지역별로 쿼터를 만들자는 겁니까? 학력별로 나누자는 겁니까? 가정환경을 조사해서 점수를 차등 적용하자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나올 겁니다. 이미 수시 제도에서 우리가 겪지 않았습니까?"
"역차별이라는 말 자체가 기득권의 언어예요."
소희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게 차별입니까? 출발선을 맞추는 게 특혜입니까? 진짜 공정은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존 롤스도 '정의론'에서 차등의 원칙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될 때만 정당하다고요."
"롤스를 인용하시니 저도 하나 하죠.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말했습니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우리는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당신의 방식대로라면, 누가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취약계층으로 분류합니까? 그 분류 자체가 또 다른 불공정의 씨앗이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밖의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