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공평사이
일주일 후, 세종시 한 호텔 컨퍼런스룸. 진우와 소희는 나란히 앉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첫 번째 발표자는 김민수(29세), 부산 출신 지방대 졸업생이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서류에서만 47번 떨어졌어요. 스펙은 나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면접 기회조차 오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알았는데, 제가 낸 회사들은 대부분 '선호 대학' 리스트가 있었대요. 저희 학교는 거기 없었고요."
민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도 노력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근데 출발선이 달랐던 것 같아요.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달랐어요. 이게 공정한가요?"
두 번째는 박지원(26세), 서울 출신 명문대 졸업생.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좋은 부모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저도 노력했어요. 밤새워 공부했고, 대학에서도 최선을 다했어요. 근데 요즘 취업하면 주변에서 '금수저'라고 해요. 제 노력은 무시당하는 기분이에요. 구조적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게 개인의 노력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제 자리를 위해 싸웠어요."
세 번째는 이수진(31세), 전문대 졸업 후 10년째 계약직 노동자.
"저는 고등학교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전문대를 갔어요.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는데, 10년이 지나도 정규직이 안 돼요. 계속 1년 계약, 1년 계약. 나이는 먹고, 경력은 쌓이는데, 대우는 신입사원이랑 똑같아요. 제가 4년제 대학만 나왔어도 달랐을까요? 제 능력이 부족한 건가요, 아니면 시스템이 잘못된 건가요?"
수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네 번째는 최현우(24세), 지방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한 청년.
"저는 대학을 안 갔어요. 집안 형편도 그랬지만, 솔직히 공부에 소질이 없었어요. 고졸로 취업했는데, 처음에는 괜찮았어요. 근데 승진이 막혀요. 대졸 애들은 3년 만에 대리 되는데, 저는 7년째 사원이에요. 회사가 학력으로 승진 기회를 다르게 주거든요. 일은 제가 더 잘하는데."
다섯 번째는 강민아(28세),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 사는 구직자.
"저는 지방대를 나와서 서울로 왔어요. 취업 기회가 지방에는 없으니까요. 근데 서울에서 살려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고시원 월세만 40만 원이에요. 식비, 교통비, 통신비 빼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다 나가요. 집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취업 준비하는데, 저는 생활비 벌느라 스펙 쌓을 시간이 없어요. 이게 같은 출발선인가요?"
여섯 번째는 정우성(33세), 지방 중소기업 대표.
"저는 대학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작은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직원이 15명인데, 청년을 뽑고 싶어도 지원자가 없어요. 다들 서울 가려고 해요. 지방 중소기업은 청년들이 오지 않아요. 임금을 서울만큼 줄 수도 없고요. 청년고용촉진법으로 의무를 부과하면, 지방 기업은 어떻게 해요? 청년은 오지 않는데 비율은 채워야 하고."
일곱 번째는 한지혜(27세), 장애를 가진 청년.
"저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어요. 하지만 휠체어를 타요. 면접을 보러 가면 회사들이 난감해해요. '우리 회사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족해서'라고 하죠. 법으로는 차별하면 안 되지만, 실제로는 차별이 있어요. 청년고용촉진법에 장애 청년에 대한 고려는 없던데요. 저도 청년인데."
진우와 소희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100명의 청년이 100가지 이야기를 했다. 누구의 이야기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이야기를 동시에 만족시킬 정책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