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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125)

龍巖의 密約 (용암의 밀약)

by seungbum lee

어둠이 내린 영광의 밤
물뫼산의 저녁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1936년 가을, 조선의 하늘은 더 이상 조선인의 것이 아니었다.
"산감님, 길이 험합니다. 천천히 오르시지요."
산돌이 앞서 가며 덤불을 헤쳤다. 열여섯 살배기 소년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이산갑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감의 작분으로 學堂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그였지만, 오늘 밤만큼은 교육자가 아닌 독립투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재호가 홍범도 장군의 밀명을 가지고 왔다니... 필시 큰일이로구나."
이산갑의 중얼거림에 산돌이 뒤를 돌아보았다.
"산감님, 저 용바위가 보입니다!"
달빛에 비친 용바위는 마치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아래 깊숙한 곳에 한도회(韓道會)의 비밀 아지트가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이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시오?"
낮고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물뫼의 달이 떴소."
이산갑이 암호를 말하자, 동굴 입구의 바위가 살며시 옆으로 밀려났다. 촛불이 어른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여섯 명의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 중앙에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일어서며 포권했다.
"이 선생, 오셨습니까. 한재호입니다."
"오래간만이오, 한 동지."
두 사람의 손이 굳게 맞잡혔다.

한재호는 만주에서 홍범도 장군 휘하의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특명을 받고 조선으로 잠입한 인물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북풍과 전투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자리하시지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한재호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촛불이 일곱 사람의 그림자를 벽에 크게 드리웠다.
한재호가 품 안에서 비단 보자기에 싼 서찰을 꺼냈다. 홍범도 장군의 친필이었다.
"諸位 동지들께 장군님의 친서를 전합니다."
한재호가 서찰을 펼치며 읽기 시작했다.
"內鮮一體라는 미명 하에 왜놈들이 우리의 言語와 文字를 말살하려 하고 있소. 創氏改名을 강요하고, 神社參拜를 강제하며, 조선의 혼을 지우려 획책하고 있소이다. 이는 단순한 식민지배가 아니라 民族抹殺이오. 우리는..."
그 순간, 동굴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산돌이 재빨리 입구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순찰조입니다! 왜병들이 산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이산갑의 얼굴이 굳어졌다. 학당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일본인 교사 다나카가 떠올랐다. '설마 눈치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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