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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시커 3-3] 기억을 잃은 현자

[RoadSeeker길을 찾는 사람] 3부: 영혼의 길을 찾는 구도자

사람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잊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 탈무드



노란 은행잎이 두텁게 쌓인, 스산한 늦가을 오후였다. 차가운 바람이 벤치에서 흐느껴 울던 현빈의 어깨를 스쳤다. 그 바람과 함께였을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혼자라고 알고 있던 그는,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움찔 고개를 들었다. 슬픔은 순식간에 바람에 날려갔다.


“제가 참견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리 괴로워하십니까?”


그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남자였다. 20대 같기도, 40대 중반 같기도 한 모호한 얼굴. 작달막한 키에 둥근 테 안경을 바짝 올려 쓴 모습이 해리 포터를 연상시켰다. 동그란 렌즈 뒤로 빛나는 눈빛에는 호기심과 온기가 함께 깃들어 있었다. 무슨 말이든 다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을 듯한 현자의 기운이 묘하게 겹쳐 있었다.


“내게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자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겁니다…”


그의 인상에 홀리기라도 한 듯 입을 열던 현빈은 문득 말을 멈췄다. 십 년 전, 악마와의 인연도 바로 이런 늦가을에 시작됐었다. 혹시… 이 남자도 또 다른 악마이거나, 같은 놈이 다른 얼굴로 돌아온 건 아닐까?


“됐으니 괜한 참견 마세요.”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혹시… 누구를 찾고 계신 건 아닙니까?”

현빈은 얼어붙었다. 머릿속이 수만 갈래 실타래가 엉킨 듯 복잡해졌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든 속을 떠봐야겠다! 악마라면 내 손으로 끝장을 내고, 아니라면 계속 찾으면 그만이다. 차라리 악마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속아주는 척하다가 역으로 칠 수도 있지 않은가.


“맞습니다. 찾는 사람이 있어요.”

그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


“그 사람이 혹시 새까맣고 작은 아이입니까? 아니면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말쑥한 남자입니까?”


작은 아이, 꼬리까지 있다면 고전적인 악마의 상징이었다. 장대한 남자는… 바로 그놈.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들은 많다.


“혹시 그런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요.”


그 미소 속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었다. 현빈은 떠보려던 마음을 거두었다.


“그런데, 제가 찾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누굽니까?”
“잘생기고, 때론 가장 흉측하게 변하며, 가끔은 새까만 꼬리를 달고 나타나는 자이지요. 하지만 실체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고 만져질 수 있지만… 본질은 잡히지 않죠.”


그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 모습은 어린아이 같기도, 늙은이 같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그놈을 찾는 걸 알았죠?”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저 역시 믿기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깨어났는데, 뒤통수에 커다란 혹이 있더군요. 예전 기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신분증도 없었죠,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과거를 잃었습니다.”


현빈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과거는 없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어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존재인지도 압니다. 나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기쁨과 확신으로 충만합니다.”


“정말 가족을 찾고 싶다거나, 과거를 되찾고 싶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지금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나는 예전에도 지금과 같았는데, 기억만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제가 악마를 찾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죠?”
“저에겐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타심통이지요. 악마가 아무리 모습을 바꿔도 저는 그 마음을 읽고 악마를 찾아낼 수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그쪽 앞에서는 생각을 조심해야겠네요.”

현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꼭 필요한 때, 중요한 순간에만 능력을 씁니다.”


“아, 참. 사고로 기억을 잃었으면 정확한 나이도 모르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 뒤로 정확히 41년이 지났다는 건 기억합니다.”


붉게 물든 석양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현빈은 붉게 물든 그의 얼굴을 보며 전율이 일었다. 그의 주변에 흐르는 시간이 인간의 것이 아님을 예감하면서...



- 로드시커 3부 : 영혼의 길 - 구도자의 불꽃

- EP3 : 기억을 잃은 현자

<끝>


EP4에서 만나요.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욕망의 길에서 추락한 주인공은, 성공적으로 마음의 길을 걸어왔지요.

이제 영혼의 길을 걷고 있네요.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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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심통 #기억상실자 #현자를만나다 #악마를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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