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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거 May 16. 2023

다신 만날 수 없는 시트콤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사라진 <빅뱅이론>에게 보내는 추모 리뷰

정신적으로 힘들 땐 사람마다 다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 간다.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운동을 한다. 나는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과 <프렌즈>를 봤다. 웃을 일 하나 없던 힘든 순간에 멍하니 바라보다가 낄낄거리며 웃으면 힘든 삶에 위로가 된달까. 그 덕분에 <프렌즈> 시즌 10을 6번 돌려봤고, <빅뱅이론> 시즌 10을 4번 돌려봤다. 그 많던 시트콤의 회차 제목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프닝송 나오기 직전에 출연진들의 대사만 봐도 그 회차 내용을 다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웃었던 포인트에서 똑같이 미친 듯이 웃었다. 이렇듯 <빅뱅이론>과 <프렌즈>는 삶을 살아가는 나만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 <빅뱅이론>을 보러 왓챠에 갔는 데 있어야 할 이어보기 목록에서 사라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라며 흔들리는 동공과 미친듯한 검색 끝에 알아냈다. 오늘부로 <빅뱅이론>의 서비스가 종료됐다는 소식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사라지다니.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5월 16일 화요일이라는 이렇게나 애매한 날짜와 요일에 종료된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프렌즈>도 서비스 종료했지만 '쿠팡플레이'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라 괜찮았다. 하지만 <빅뱅이론>은 '왓챠'에서 유일하게 방영했기에 사라져서 허망할 따름이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빅뱅이론>을 추모하고자 리뷰를 해볼까 한다.


빅뱅이론의 포스터 / 왼쪽부터 라제시 쿠트라팔리, 하워드 왈로위츠, 쉘든 쿠퍼, 레너드 호프스태터, 페니


<빅뱅이론>은 정신 나간 캐릭터쇼다. 천재지만 물리 미만 잡이라고 생각하는 안하무인에 사람과 유대관계를 쌓는 법을 몰라 계약서를 작성하며 살 정도로 공감도도 낮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괴짜 이론 물리학자 '쉘든 쿠퍼'. 호구처럼 착해서 쉘든을 다 받아주고 페니랑 연인이 되고 싶어서 찌질한 모든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 물리학자 '레너드 호프스태터'. 배우를 꿈꾸며 웨이트리스로 살아가고 이웃집 괴짜들 때문에 부족한 지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연예계만큼은 빠삭한 지식을 갖고 있는 유일한 인싸 '페니'. 여자를 밝히는 징글징글함에 때때로 질려버리지만 누구보다 유쾌해서 분위기 푸는 데 달인인 우주비행사 '하워드 왈로위츠'. 돈 많은 게 유일한 자랑이지만 여자 앞에서는 말을 못 해 연애에는 젬병인 천체 물리학자 '라제시 쿠트라팔리'


솔직히 가끔 여성 비하, 외국인 비하 등이 나와 불편할 때도 있다. 여자친구인 페니와의 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전남자친구를 사랑의 한 방식이라며 페니를 이해시키려는 레너드의 초반부 에피소드가 특히 그렇다. 예전의 사회 분위기가 아무렇지 않게 담긴 거라 생각되기에 많이 아쉽긴 한데, 굳이 캐릭터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페니랑 어떻게든 잘 돼 보고자 아무 말이나 내뱉는 모습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거기에 레너드가 점수따기 위해서 전남자친구와 담판을 지으러 가는 장면까지 나오니 이해안되는 에피소드임에도 눈 질끈 감고 관대한 척 넘어가곤했다.


이런 크나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시트콤을 사랑하는 이유는 괴짜들의 삶을 보는 게 재밌기 때문이다. 덕후 기질이 낭낭한 네 명의 남자가 함께 마블 시리즈, 스타트랙, 게임을 덕질하는 모습, 과학에 미쳐서 일상생활에 과학 이야기를 접목하면서도 거기에서 드립을 날리는 모습, 사회성 부족한 네 명이 10년간 서로 부딪히면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럽고 웃겼다.


좋아하는 에피소드 클립을 남기며 추모글을 마무리해본다.


1. 쉘든의 봉고연주

https://youtu.be/OiwvBXV86Oc

머리를 잘라야 할 시기에 본인의 미용사가 사라져 머리를 자르지 못한 쉘든. 머리카락 하나 못 잘랐을 뿐인데 세상의 질서가 무너졌다면서 룸메이트 계약서를 무시한 채 마음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쉘든의 저세상 봉고연주를 보는 재미가 있다.


2. 가위 바위 보 도마뱀 스팍 (Rock Paper Scissors Lizard Spock)

가위바위보 업그레이드 버전. 스타트랙을 사랑하는 네 명이 늘 이 가위바위보로 결정한다. 물론 다들 스팍을 내서 매번 무승부로 끝나긴 하지만 말이다.



사회 실험을 하겠다며 임신했다고 거짓말하는 것, 할로윈 파티에서 코스튬 1등하려고 도플러 효과로 코스프레 한 것 등 추천해주고 싶은 에피소드는 산더미인데, 내게 영상은 없고, 원하는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 않아서 아쉬움만 진하게 남는다.


방영 첫 순간부터 알았던 시트콤이기에 더더욱 애착이 가지만, 이 글을 마지막으로 보내주려 한다.

2007년부터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안녕.


딩거의 한 줄 리뷰 : 살아갈 힘을 만들어줬던 레전드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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