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선 Oct 26. 2021

아프면 서러워


기억나니? <똘이장군>과 <해돌이의 모험>을 학교에서 단체 관람하던 80년대. 당시 반공 교육에는 북한의 실상에 대한 폭로가 항상 있었지.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북한의 의료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는데, ‘누구나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제때 제때’,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거였어. 


물론, 1970년까지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압도 하기도 했었고, 북한의 동맹국인 쿠바가 나름 의료 선진국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시 북한의 의료서 비스에 대해 저 정도까지 폄하하는 건 조금은 과장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북한에서 보내오는 삐라를 찬찬히 읽어보는 것마저도 왠지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시절 이어서 북한의 의료서비스가 공짜라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었거든. 


그리고, 가족 중 누구 하나 암과 같은 불치의 병에 걸리면 집안 살림 전체가 풍비박산 나는 남한사회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나로서는 저런 교육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긴 했었어.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나라인 캐나다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예전의 저 반공교육 문구가 생각나게 될지는 몰랐지.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해마다 많은 수의 한국 사람들이 캐나다에 들어왔고, 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곤 했어. 그 중에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캐나다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다시 역이민을 가는 경우도 많았지. 그리고 대부분의 역이민자들이 한결같이 꼽는 캐나다 사회에 가장 어려웠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이야.



패밀리 닥터


먼저 간단하게, 캐나다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용어 정리를 하자면, 보통 처음 의사를 만나게 되는 곳은 패밀리 클리닉 (Family Clinic)이라고 하는 패밀리 닥터 (Family medicine physician, 가정의)가 모여있는 1차 병원이야. 보통 초기 진료를 하거나 임상병리 검사를 요청하고, 또 필요하면 전문의를 소개하기도 해. 


옛날에는 환자 병력 및 치료기록이 전산으로 공유가 안되었었고, 그러다 보니 내 병력차트를 가지고 있고 내 몸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의사에게 계속 가는 경우가 많았어서, 그렇게 평생을 걸쳐 내 병력을 관리해줄 사람을 '패밀리 닥터', '홈닥터', '주치의'이라고도 불렀던 것 같아.


하지만 요즘은 처음 가는 병원에서라도, 의사가 마음만 먹으면 전산망을 통해 환자 개개인의 지난 병력을 다 알 수 있거든. 그래서인지, 환자입장에서 ‘패밀리 닥터 - 주치의’이란 시스템의 특징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일반 워크인 클리닉 (Walk-in Clinic 사전 예약 없이 아무나 그냥 들어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클리닉) 에서 받는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어. 오히려, 요즘엔 패밀리 클리닉들이 모두 대형 체인화되어 가고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가정의들 역시 개인 비즈니스가 아니라 대형 의료기업에 고용된 입장이거든. 그래서인지 환자당 진료시간이 점점 짧아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 때문에, 서비스 퀄리티 면에서도 사실 워크인 클리닉과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어.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패밀리 닥터 - 주치의’라고 하면, 지금의 패밀리 클리닉에 근무하는 의사가 아니라, 마치 회원제 클럽처럼, 미리 알고 있는 몇몇의 환자들만 예약을 통해서 진료를 받는 의사를 의미하기도 하더라. 당연히 개별 환자당 진료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겠지만, 요즘은 이런 패밀리 닥터를 (그것도 젊은 사람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특히 신규 이민자에게는 더욱 그렇지.


한국에선 어느 도시나 수많은 전문의들이 1차 병원을 개원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도 배가 아프면 내과,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 이렇게 찾아야 할 전문 병원 종목을 다 알고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역 보건소에 가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가정의학에 대해서는 좀 어색한 경우가 태반일 텐데, 캐나다에서는, 내 병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상급 검사나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패밀리 닥터의 검진이 필수적인 셈이야. 다시 말해서 패밀리 닥터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 가에 따라서 치료과정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 수도 있는 거지. 


운이 나름 좋아서, 이민 초기에는 B 섬에서도 그렇고, B 섬에서 나와 살게 된 노스밴쿠버에서도 너무나 좋은 패밀리 닥터들을 만났었어. 경력도 풍부하고 옛날식으로 일을 해서 그런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진료를 하더라구.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전문의를 수배해서 예약해주기도 하고 말이야. 워낙 오랫동안 의료현장에서 일해온 터라 그만큼 아는 사람도 많아서 그런지, 전문의 수배가 아주 빨랐지. 하지만,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게 장점과 동시에 단점이 되어서, 그 의사들은 연세가 모두 지긋했기 때문인지 금방 은퇴를 해버리는 거야.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앞으로 내 여생 건강을 책임지게 될 주치의를 찾는 것이니, 이번엔 경험이 적더라도 가능하면 젊은 사람을 찾자고 생각했지. 나중에 내가 늙고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릴 때 즈음이면, 이 의사도 경험을 많이 쌓았을 테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지금의 패밀리 닥터를 만나게 된 거야. 


그럼 패밀리 닥터를 어떻게 찾냐면 말이지, 공개적으로 찾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 오직 소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 같더라구 이러니 밴쿠버가 신규 이민자 에게 불친절한 도시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지. 물론 모두에게 열려 있는 워크인 클리닉도 있고, 응급실 진료도 누구나 동등하게 받을 수 있지만, 막상 이민을 와서 직장에 갔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주치의를 가지고 있고, 나는 아프면 워크인 클리닉에 가야 한다면, 저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안 받을 수 없잖아? 


또한,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그리고 인맥 사회인 밴쿠버인지라, 예전부터 내 병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내 병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거지. 워크인 클리닉에 가면 그냥 타이레놀 주면서 한 1~2주일 더 지켜보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두통도, 패밀리 닥터 입장에서는 “엥? 너 지난번에도 그 얘기하지 않았어? 한번 응급실 가서 CT 한번 찍어보지 않을래?” 이럴 수 있다는 거야. 


어쨌든, 패밀리 닥터를 찾기 어려운 요즘이라도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https://bccfp.bc.ca

/for-the-public/find-a-family-doctor/) ; 


l  주변 인맥을 동원한다. : 직장 동료, 주변 이웃, 친구들에게 혹시 신규 환자를 받는 패밀리 닥터가 있는지 문의한다 (아.. 써놓고 나니.. 너무 원시적이라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내 경우엔 이 방법으로 현재 패밀리 닥터를 찾긴 했다)

l  지역 의료기구 (https://divisionsbc.ca/divisions-in-bc) 에 전화를 걸어 혹시 신규 환자를 받고 있는 패밀리 닥터가 있는지 물어본다.

l  지역에서 활동하는 패밀리 닥터 명단  (https://www.cpsbc

.ca/public/registrant-directory)을 뽑아 신규 환자를 받는지 연락해본다.

l  워크인 클리닉에 가서 진료를 받은 후 마음에 드는 의사에게 혹시 신규 환자를 받는지, 내 패밀리 닥터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문의해본다 

뭐, 참… 죄다 맨땅에 헤딩하라는 얘기라서, 이렇게 적어놓기에도 정말 민망하구나. 근데, 실제로 지역 의료기관이나 의과대학에서 이 방법 들을 추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2차 멘붕이지.



전문의, 정밀검사와 응급실


이렇게, 패밀리 닥터의 추천을 통해서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전문의)를 만나고 정밀 검사나, 추가 진료를 받게 되는 거야. 하지만 바로 여기서 심각한 의료 적체 현상이 일어나는데, 내과나 정형외과가 골목마다 즐비 하고, 아무리 작은 정형외과도 엑스레이나 초음파 정도는 그 자리에서 찍었던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밴쿠버에서 전문의 한 명 만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게 되는 거지. 


요즘은 그래도 엑스레이는 빨리 찍을 수 있게 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엑스레이 찍는데 한 달 이상 걸렸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민자들을 많이 만났다 (물론 눈에 보일 정도로 부었거나 뼈가 부러진 상황은 그 때나 지금이나 곧바로 찍을 수 있는데, 눈에 잘 안 보여서 이게 응급상황인지 잘 모르는 - 예를 들어 힘줄이나, 허리 디스크 같은 경우 - 상황일 때에는 패밀리 닥터가 엑스레이 처방을 안 내려주는 경우가 많았거든. 방사선 문제도 있고 하니까). 예전에 아내가 운동하다가 다리 힘줄을 다쳤을 때, 스포츠 부상 전문의를 만날 때까지 6개월 넘게 걸렸었고, 물론 그때는 이미 다 나은 상태였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정확한 원인을 알 도리는 없지만 그래도 추정을 해본다면, 일단 이 지역에서 한 해에 배출되는 의료인력의 수가 형편없이 적어. 그래서 외국에서 딴 학위를 인정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적은 것 같아. 그나마 자격증을 획득한 의대 졸업생 중에서도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곳에 비해 몇 십 배 되는 고소득을 올린다고 해 (그러고도 밴쿠버 사람들은, 여기 남아 있는 의사들은 돈을 좇지 않는 훌륭한 의사들이라고 자위하지). 


한편으로는 밴쿠버 집값이 미친 듯이 치솟으니, 젊은 사람들은 자리를 못 잡고 결국 떠나게 되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까, 전반적으로 고령화되는 밴쿠버 사회에서 폭증하는 환자 수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거야. 


몇 해 전에는 어깨가 아파서 패밀리 닥터를 만나 얘기했더니, 일 년이 지나고 나서야 초음파를 찍을 수 있었어. 어깨 초음파를 판독할 수 있는 전문의가 밴쿠버 보건청 관할지역 (Vancouver Coastal Health)에선 단 2곳에서만 진료를 본다고 하더라구. 결과는 1년 전에 물리치료사가 말해준 회전근개 파열이었다. (그리고,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그냥 조심하라고 하더라. 원래 회복에 오래 걸리는 병이라고..) 이것이 캐나다 3대 도시 중 하나인 밴쿠버 의료시스템의 현실이야


몇 달 전에는 이유 없이 고열이 지속되어 (코로나 검사를 먼저 받고) 응급실에 갔더니, 간수치가 완전 비현실적으로 올라가 있더라. 열은 계속 나고 있었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한 정도의 컨디션이라서 혈액검사 결과나 의사를 만날 때까지 많이 기다려야 했다. 결국 응급실 의사를 만났지만, 부루펜을 쥐어주고는 병가 내고 집에서 쉬다가 계속 아프면 다시 오라고 하더라구. 


며칠 후 패밀리 닥터와 연락을 해서 피검사를 한번 더 했는데, 간수치는 더 악화되어 있었고, 그걸 본 패밀리 닥터가 응급으로 간 초음파를 잡아 주더라. 근데 그게 3주 후였어. 하하하. 결국 초음파를 찍을 때 즈음에는 이미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있어서, 뭐가 급성 간질환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거지. 더 큰 문제는, 이곳 밴쿠버에서 한 달 내에 초음파를 찍도록 예약을 해준다는 것이, 이런 응급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야. 그 사정을 대부분 알고 있다 보니까, 주변 직장동료들 모두, 내가 3주 후에 초음파가 잡혀있다고 하니 정말로 응급상황이구나 하면서 걱정해주더라.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프면, 그래서 당장 초급적인 혈액 검사라도 받으려면, 일단 엄살을 피우면서 응급실에 가야 해. 응급실에 가면, 맨 처음에 응급 환자 분류 처치 (Triage)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간단한 바이탈 체크 (혈압, 체온, 맥박 등)를 하면서 응급 정도가 구분되는 거지. 그리고 그 당시 응급실 상황에 따라 금방 의사를 만날 수 있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6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기도 해. 


내 경우엔, 신장 결석으로 응급실 갔을 때는 마침 한가한 때여서 신속하게 처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처치라고는 하기엔, 수액 꽂고 좀 독한 진통제 처방 받은 것뿐이었지만), 급성 간질환으로 갔을 때는 응급실이 너무 바빠서 3시간 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혈액 검사를 받을 수 있었어. 또, 그 뒤로 한 시간 더 기다려서야 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말이야. 그때 당시, 어떤 사람은 톱질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려서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바이탈도 안정적이고, 지혈도 잘되어 있고, 손가락도 완전히 이탈되지 않은 상태였어서 나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렸던 걸로 기억한다. 


대신, 좀 더 응급을 요하거나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중병에 걸려있는 상태라면, 보다 안정적이고 자상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더라. 예전에, 극심한 편두통 때문에 응급실에 가서 요오드 조영제를 넣고 CT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정작 편두통이 생긴 원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추정), 조영제 때문에 온몸에 발진이 생기면서 병원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나로서는 CT 결과에 아무것도 안 나오니, ‘별 것도 아닌데 너무 엄살을 피웠나’하는 민망함도 들었고, 발진이래 봤자 그냥 불긋불긋한 것이 피부에 돋아 오르면서 가려웠던 것뿐이어서, 그냥 북북 긁어가면서 슬그머니 집에 가려고 했더니, 당시 당직 간호사가 고함을 치면서 날 붙들어 침대에 테이크다운시키고, 의사를 호출하고 난리가 났었다. 뭐, 물론, 충분히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어서 그랬을 테지만, 그때는 ‘어라? 얘네들이 슬렁슬렁 하는 것 같아도, 할 때는 또 빠릿빠릿하네?’ 생각이 들더라구. 


몇 년 전, 예전 직장 동료의 아내는 갑상선 암을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는데, 곧바로 BC 암 센터로 배치되었고, 시술과 화학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칠 때까지 아주 친절하고 자상한 진료를 받았다고도 하더라. 물론, 이 모든, 암 치료, 응급실 치료, 혈액 검사, CT 촬영 모두 공짜이긴 하지. 그래서 아내는 종종 나처럼 이곳 무상 의료의 혜택을 많이 입은 사람은 (비싼 의료 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은) 불평해서는 안 된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더라



너무 늦다


아무튼, 이민자로서 캐나다에서 아프기 힘든 원인 중 하나를 들자면, 바로 이 의료 적체 문제를 꼽을 수 있어. 늦다, 너무 늦다. 뭐 하나를 하려 해도 너무 오래 걸리는 거야. 노인들이 많이 사는 BC의 경우 (캐나다에서 ‘보건, 의료 서비스’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이어서 전국적인 역병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연방정부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 사태는 더 심각한 거지.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는 무료지만, 환자 수에 비해 의료진들이 턱없이 부족하거든. 


달랑 반백 년 산 나만 해도, 몸 어느 한 군데라도 현재 진행형으로 안 아파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 BC의 병원마다 노인들로 북실대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아니야. 그러다 보니, 의사가 딱 보기에, ‘아.. 이 사람은 그래도 오늘 내일 죽진 않겠는데..’ 싶으면 당장 순위가 저 뒤로 밀려가게 되는 것이겠지.  


그러니, 일반 한국 남성의 허세처럼 ‘아… 뭐… 좀 아프긴 해도 참을만합니다’ 이딴 식의 제스처를 보였다가는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을 가능성이 높아.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무슨, 급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옵션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만만치가 않더라구. 영리 병원이니 사립병원 등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아주 비싸서 (비보험 MRI 촬영에 $800~$1500, 비보험 응급실은 최초 진료비만 $1050) 교통사고 분쟁 등의 법적 증거가 필요할 때만 간다거나, 그마저도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고, 패밀리 닥터가 인정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갈 수 있는 형편이더라.


그래서인지, 한인 이민자 중에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급환일 경우엔 차라리 미국에 가서 진찰을 받고 오고, 좀 시간이 걸리는 큰 프로젝트라면 한국에 가서 서비스를 받고 온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비보험 의료비에 항공료가 포함되더라도 한국이 미국보다 싼 경우가 많으니까),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소시민들에게는 쳐다볼 수도 없는 꼼수인거지.


그래서, 이민 초기부터, 선배 이민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얘기가 ‘무조건 엄살을 피워라. 아파 죽는시늉이라도 해라’라는 충고였고, ‘정 아프면 무조건 응급실에 택시 타고 가라’라고도 했는데, 절대 틀린 말이 아니더라구. 그냥 엄하게 참아 넘기다가 실제 큰 병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좀 싼티 나더라도 아픈걸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은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 같은 경우는 아무리 해도 엄살 연기가 잘 안되어서, 어디가 아프면 (하지만 참을 수 있다면) 미리 좀 숙제를 하는 편이야. 예를 들어, 예전에 편두통이 몇 년간 계속된 적이 있었는데, 일단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후 그 경우의 주요 증상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부한 다음,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비슷한 증상이 있다면 패밀리 닥터와 약속 잡기보다 곧바로 응급실에 가곤 했어. 딱히 그 증상이 없더라도, 미리 공부를 해두면 아무래도 의사들과 대화하기 편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지.



생존소통


그리고 바로 이 ‘의사소통’ 문제가 이민자들이 쉽게 아프기 힘든 두 번째 큰 이유가 되는 거야. 말 잘 통하는 한국에서도 의사들과 얘기할 때는 왠지 주눅이 들어서 하고 싶은 말도 그냥 삼키곤 했는데, 영어로 의사에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인 거지. 그리고 통증을 표현하는 한국말 표현은 어쩌면 그렇게 다종 다양한지, 도대체 영어로 어떻게 갖다 붙여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부지기수거든. 


예를 들어 ‘얼얼하다’라는 표현은 보자면, 여기엔 극심하진 않지만 뻐근한 통증의 의미를 포함하고 (sore), 가끔 화끈거리거나 부어있는 경우도 있으며 (swollen), 은은하게 퍼지는 듯한 통증인 데다가 (spreading), '대개 평소의 감각이 사라져 있는 경우 (numb)가 포함되니까 말이야. 이 밖에도 ‘(무릎이) 시리다’, ‘(마디마디가) 자근 자근 아프다’, ‘(입맛이) 깔깔하다’ 등이라든가, 두통만 해도 ‘지끈지끈’한 두통이나 '쪼개지는 듯한’ 두통 등이 있어서, 영어로 통증 표현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은 거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사를 만나서 문진을 하기 전에 예습을 하는 게 나에겐 필수가 되었어. 내 증상에 대한 영어 표현을 찾고, 또 구글을 통해 실제 용법을 재검증해서 가능한 한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해. 말하자면, 병원에 가기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거지. 그래도 도무지 정확하게 들어맞는 표현을 찾기 힘들 때는 작문을 하기도 해. 


예를 들어 ‘쓰리다’라는 통증을 표현할 때,  ‘누가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 (feeling like somebody sprinkling salts in my abrasion)’라고 한 적도 있고, 목 디스크 부분이 저리면서 따끔거릴 때는 ‘누가 내 목 부분에 미싱질을 하는 것 같은데 (feeling like somebody stitching on my neck with Brother sewing machine)’ 라고 해서, 진료하던 의사를 빵 터뜨린 적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어. 맨날 쓰는 ‘pain’, ‘sore’, ‘pins and needles’, ‘numb’ 만으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는 걸……


뭐, 이렇게 바보 같은 영어를 쓰면서 서로 하하호호 하며 진료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사실 아주 행운인 경우일 지도 몰라. 나나 아내나… '나 원래 영어 못하는데… 그래도 죽어가고 있거덩?’ 식의 배째라 정신이 있는 편이고, 궁극적인 목적 - 치료를 위해서 바보 같은 영어를 쓰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그런 건 없는 편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영어 쓰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영어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 같은 영어를 써서 바보 취급을 받게 될 자신의 처지를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거든. 


뭐.. 사실… 타인에게 개무시 당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게 무서워서 자신의 통증을 참는 건, 그거야 말로 바보 같은 일인 거지. 아니 오히려, 자기 자신이 아픈 건 어떻게 참을 수는 있어도, 자기 가족이 뻔히 옆에서 아픔을 참고 있는 게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 자신이 없어서) 응급실로 향하는 걸 주저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이런 일을 한두 번 겪고 나면, “이 눔의 나라 지긋지긋해!” 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아니야.


때문에, 비단 캐나다 밴쿠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여행이나 이민을 갈 때는,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도는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건 어학능력이 아니라 생존능력 카테고리로 넣어야 하는 부분이거든. 그게 안된다면, 그냥 스마트폰 을 이용해서 자신의 통증을 나타내는 명사만 나열해도, 의료현장에서 서비스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 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몇 년 후에 돌이켜 보면, ‘아놔.. 참.. 그렇게 유치한 영어를 하면서 의사를 괴롭혔다니..’ 하며 이불킥을 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것도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가능한 이불킥이라고 봐야 하는 거지. 인터넷 등이 안되어서 쓸모 있는 단어 채집에 어려움이 있다면, 캐나다 BC의 경우 의료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도 하더라 (http://www.phsa.ca/health-professionals/professional-resources/interpreting-services).  



의료보험 사각지대


앞서, BC 주에서 받은 모든 진료와 검사 등이 무료라고 했는데, 엄밀히 얘기하자면 ‘의료적으로 필수적인 (medi cally necessary)’ 진료와 처치에 대해서만 무료인 거야. 2021 현재 집권하고 있는 BC 신민당 (New Democratic Party) 정부가 들어설 때, BC 주의 주정부 의료서비스 의료보험비 납부를 없애기로 결정했었어. 


물론 정규직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전에도 의료보험비를 회사에서 납부해줬으니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겠지만, 수많은 비정규,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자가 부담을 해야 했으니까 경제적인 부담이 크게 줄었을 거야. 


그전에, 의료서비스라는 것을 어차피 공공 서비스라는 형태로 제공하는 BC 주정부에서, 그 의료 서비스에 들어가는 의료보험 비용을 주정부 세수로 해결한다는 공공복지 정책에 대한 현 정부의 관점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지. 하지만, 이 주정부 의료 서비스라는 게, 그야말로 ‘의료적으로 필수적인 (생존에 필수적인?)’ 것만 커버를 하기 때문에, 뭐 성형수술 같은 건 아예 기대도 안 하더라도, 치과치료나 물리치료 등 역시 포함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 결국,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분야들은 존재를 하는 거지 (https://www2.gov.BC.ca/gov/content/health/health-drug-coverage/msp/BC-residents/benefits/services-covered-by-msp/medical-benefits).


이러한 부수적인 의료 서비스 (Supplementary medical service : 물리치료, 침술이나, 안과, 치과 등)의 경우에는, 보통 정규직 직장인들에게 직장 의료보험으로 제공 되거나, 무직자나 자영업자의 경우 본인부담으로 구매를 해야 하는 일종의 실손 보험 상품인 건데, 사실 모든 보험이 그렇듯이, 개별 가입을 할 경우 (연령에 따라 보험료가 인상된다든지, 오래된 지병은 커버가 안 된다든지) 가입자에게 이익을 주는 보험은 찾기 힘들어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가입을 망설이고 있는 형편이야. 


한편으로는, BC 주정부에서 저소득층에게 부수적 의료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하는데, 아주 한정적인 금액이기 때문에 (https://www2.gov.bc.ca/gov/content/health/health-drug-coverage/msp/bc-residents/benefits/services-covered-bymsp/supplementary-benefits), 그걸로 뭔가를 하기엔 아쉬운 경우가 많고, 결국 직장 의료보험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결국 부수적 의료 서비스를 포기하는 상황이지.


예를 들어, 예전에  슈퍼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중 한 명은, 당시에 이미 캐나다에 이민 온 지 20년이 넘은 분이셨는데, 의료보험을 주는 직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다 보니까, 치과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셔서 치아가 많이 상한 상태였어. 섬에 오랫동안 사셔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워낙 낚시를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섬에서 굴을 채집하거나 우럭을 낚는 일이 있더라도, 그저 믹서에 갈아서 죄다 전으로 부쳐 드시더라구. 결국 돈을 모아 60세 생신을 맞아 한국에 가서 치과치료를 받고 오시더라. 

 

나 같은 경우, 예전에 정육점에서 고기 배달을 할 때 허리를 다친 이후로는, 오래 서있는 일을 잘할 수가 없었어. 마트에서 일할 때에도 여전히 허리 통증은 없어지지 않아서 결국 X-ray를 찍었더니 디스크가 조금 삐져 나왔다는 진단을 받았었거든. 패밀리 닥터는 그냥 진통제 처방을 해주었고, 물리치료를 받아보라고 했는데, 그때는 입사 초기라 회사에서 가입할 수 있는 추가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였고, $100 가까이 되는 치료를 도무지 내 돈 내고 받을 엄두가 안 났었다. 


뭐, 사실, 허리 디스크라는 병이 딱히 다른 치료 방법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물리치료 한번 못 받고 그냥 집에서 스트레칭만 하고 있으려니 좀 서글픈 생각도 들더라구.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면,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나라를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겠어?

 


유급병가


이렇게 무상의료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료사각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각지대에 놓인 채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 전 세계 사람들이 살기를 원하는 캐나다, BC의 현실이야. 그런데, 이 밖에도, 아프기 어려운 심각한 이유가 있으니, 그건 바로 유급병가 (Sick Leave)가 없는 직종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야. 


2021년 현재 (희한하게 노동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개악되더라), BC 주 혹은, 더 큰 온타리오 주의 경우에도, 주정부 노동법에 일 년에 3일까지 무급 병가를 보장하도록 명시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아플 때 3일간 쉰다고 해서 해직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뜻이지, 아파서 쉰다고 누가 생계를 보장해준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지.

L 마트에서 정규직 승진을 하고 나서 10일간의 병가와 직장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을 때, 뭔가 한 고비를 넘은 성취감은 있었지만, 매일매일 쳐 쌓여 들어오는 컴퓨터 수리 일감 때문에, 과연 저 10일간의 병가를 과연 쓸 날이 있을지 의문이었었지. ‘차라리, 그냥 반 잘라서 5일치를 돈으로 주지’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 하면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 몸이 아프면 집에서 쉴 수 있는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리고 환산해서도 안 되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 이라고 봐야 하니까. 


실제로 당시 L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10년 넘게 일한 동료는, 그때 당시에도 정규직 혜택을 받지 못했었는데, 열이 펄펄 나는 날에도 나와서 일하면서, “난 아플 여유가 없어 (I can’t afford to be sick)”이라고 하더라구. 그 얘길 듣고 있자니, 정말, ‘내가 이 꼴 보려고 가족친지 다 등지고 이국만리에 와서 살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들더라.


유급병가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은 비단 저소득 노동자뿐만이 아니야. 냉동 서비스 기사로 일해온 지난 몇 년간 어느 회사도 병가를 지급한 적이 없었어. 시간당 $65불을 버는 노조 소속 저니맨에게도 병가는 지급되지 않았어. 각자 자신의 추가 근무 잔업 시간을 아껴뒀다가 (Banked Hour) 사용하고는 했었지.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아파도 일하러 나올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현실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BC 주정부는 서둘러 임시적인 병가 시스템을 만들어서 고용주가 준수하도록 했는데, 코로나 확진자 에게는 3일간의 급여 지급을 할 수 있게, 그리고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는 3시간의 급여를 지급하도록 했었어


그리고 2022년부터 BC 주정부에서는 보편적인 병가 (Universal Paid Sick Leave)를 도입하게 되었지. 그전 6개월동안 사업주와 노동자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그걸 바탕으로 BC의 모든 노동자는 5일간의 유급병가와 추가로 3일간 무급병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 (https://www2.gov.BC.ca/gov/content/employment-business/employment-standardsadvice/pad-sick-leave). 사실, 그동안 신민당 정권의 헛짓거리에 대해, 그리고 현 BC 주 수상에 대해 여러 가지 볼멘소리도 많이 했었는데, 이런 걸 보면 또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더라. 


당장, 모자라는 병원을 의료인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 그리고 전 세계 어딜 봐도 지역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정권은 없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노동자 가 맘 편하게 아플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정치가들이 할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구.



** 덧 : 2022년 12월, 캐나다 연방 정부에서는 연방 정부와 같이 일하는 회사들의 경우 노동자들에게 연 10일 병가를 의무적으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을 기화로 캐나다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합당한 병가가 법적으로 보장되기를 바랍니다. 

이전 07화 나의 (인종) 차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