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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Jul 01. 2024

알코올 중독 이야기

질병코드 F10, 나는 알코올 중독입니다

지난 6월 12일,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와서 방송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나는 알코올 중독입니다", 바로 중독에 대한 첫 이야기다. 


생로병사의 비밀 6.12 방송본 캡쳐 (KBS1)

중독 (Addiction, 의존증) : 뇌의 조절능력을 상실한 질병


알코올, 담배, 마약과 같은 유해 물질 남용으로 신체적 의존(physical dependence)뿐 아니라 심리적 의존(psychological dependence)이 생겨 뇌의 조절능력을 상실한 질병을 “중독 (Addiction, 의존증)”이라 부른다. 이른바 <술, 담배, 마약>의 3대 물질 중독을 포함해 <도박, 쇼츠, 야동(?)>과 같은 행위 중독까지 그 범위는 굉장히 넓다. 


그 중 내가 준비한 알코올 중독은 <질병코드 F10>으로 분류되어 있는 질병이다. 1980년대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뇌에도 쾌락 중추라고 알려진 보상회로가 발견되고 도파민이 중독 질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알코올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뇌질환이라는 인식으로 변화했다. 기존까지는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 나약한 의지에서 중독이라는 타락이 발생한다고 치부했지만, 중독은 엄연히 뇌의 질병인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음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매일 14명, 음주 관련 사회경제적 비용은 10조 원을 육박했다. 언제 어디서든 술을 구입할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 술과 안주를 시킬 수 있는 편리한 배달 음식, 유명인들이 펼치는 각종 술방의 모습들에서 우리는 음주에 관대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취재했던 알코올 중독을 고백했던 사례자 분들


“나는 애주가일 뿐, 알코올 중독이 아니다” 


내가 만난 알코올 의존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스스로의 병식에 대해 부인했다. 이른바 도덕적 결함이나 개인 의지의 문제로 치부했던 부정적인 과거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스스로의 알코올 중독 문제를 인식하고 고백하는 순간 치료는 시작됐다고. 


명문대 졸업, 번듯한 직업... 술도 이겨야 될 경쟁이라고 생각했다는 김 모씨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안도감을 얻은 건 술이었다. 길바닥에 취해 쓰러져 경찰에 의해 가족에 인도될 때까지만 해도, 술을 주지 않는 가족들을 향해 물건을 던져 부수는 행위를 할때까지만 해도 그는 가족들에 의해 버려진 존재였다고 생각했다. 강제로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했을때까지만 해도 이제 내 삶은 끝났다는 생각에 모든 치료행위와 식사를 거부했다. 알코올 전문병원에서 다섯 명의 중증 사례자를 만났다. 각기 다른 삶 속에서 술을 동기화한 원인은 다르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강하게 중독을 부인했고,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치료의 시스템 속에 온전이 순응하게 됐다. 


번듯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잘하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알코올 중독일 수 있다. 이를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이라고 부른다. 일상생활에 큰 문제 없이,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점 술에 의존하는 당신. 적절한 음주 치료나 음주 패턴의 변화 없이 음주가 계속될 경우 중증 알코올 중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나도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알코올 중독의 초기 증상은 아닐까? 


중증이었던 그들은 "취재 후" 현재까지 70일째 단주를 이어가고 있다!


중중 알코올 중독에서 70일 단주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일 천안에 내려간다. 어렵게 섭외된 첫 사례자이자 가장 포기했던 사례자였던 그의 70일 단주를 축하해주기 위해서다. 사실 방송 중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방송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 그와 그의 어머니는 방송후 내게 정말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알코올 전문병원 치료를 포함해 모든 치료를 다 받았지만 그의 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어머니. 처음엔 제작진의 방문마저 강하게 거부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전까지 4명의 경증 알코올 중독 사례자 분들이 가족들의 반대로 촬영 전날 펑크내는 바람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전 전화취재로도 하루 소주 8병 정도는 마시는 중증 사례자라 내심 섭외하고 싶지 않았던 대상임도 고백한다. 경증은 어느 정도 의지로 단주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으나, 이렇게 중증은 사실상 포기라고 할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아니, 주변에 의료진들도 중증 환자들의 단주 프로젝트 참가는 사실 거절했다. 


어쨌든 그를 만나기로 한 전날 밤, 그는 문자로 "PD님, 오지 마세요. 어머니가 하지 말래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어머님을 설득해보겠다고 자정에 양해를 구하고 무려 1시간 가까이 통화했지만 끝내 어머님은 설득되지 않았다. 모든 치료를 다 받았지만 실패한 아들인데. 괜히 방송 촬영한다고 아들의 삶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는 다 받아봐야되지 않겠냐고, 만일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방송을 내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결국 <그래도 오지 마세요!>라고 어머니는 단칼에 거절하며 전화를 끊었다. 


만나러 가지 말까? 쫓겨나도 내려가볼까? 


촬영감독과 나는 다음날 아침 촬영 스케줄을 취소하면서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점심 먹기 전, 그래도 한 번 내려가서 상황이라도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감독 손을 잡고 천안으로 향했다. 물론 그에게 미리 연락을 했을 때도 술을 마시고 있는 상태여서 온전하게 만나는 건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의 집. 여기서부터는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상 생략하겠다.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산다는 삶 자체는,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다.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했지만 술기운이 떨어졌을 때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결국 술 기운에 두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또 다시 이야기했다. 그날 밤, 어렵사리 어머님을 만나 두어 시간 가량 설득한 끝에 "촬영은 하되, 만일 본인이 치료를 거부할 시 모든 방송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첫 촬영을 진행했다. 


한 잔 술이 트리거가 된다!


한 잔 술이 트리거가 돼 천 잔, 만 잔의 술을 부른다


이 격언이 묘하게 와 닿았다. 왜 그들은 술을 끊지 못할까? 

십년간 술을 끊어도, 한 잔 술에 십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고 한다. 

중독이라는 질병이 그렇다. 한 번 조절 기능을 상실한 뇌는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미 도파민 조절 능력을 상실해버린 쾌락 중추, 

술 한 잔이 가져다주는 보상 심리가 역치를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전보다 더 많은 양의 술을 부르게 되는 재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


술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당신은 무죄!


알코올 중독은 유전이다. 

술 잘 마시는 것도 다 알코올 분해능력이 좋은 내 조상 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알코올 분해능력이 좋은 사람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쉽다. 

술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금방 취하는 사람은 

오히려 알코올 중독 유병 가능성에 있어 다행인 셈이다. 

참고로, 알코올 분해능력이 떨어진다고. 술이 약하다고 꾸역꾸역 

자신의 음주능력(주량)을 점점 올리는 분들은 유전자 보호인자를 갖고 있음에도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프로젝트의 목적


단주 프로젝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삶의 목적을 상실해 술에 모든 걸 의지해버린 자아를 극복해내는 방법.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내 인생에서 완성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인지 

그 방법을 갈구하는 것. 


술 없이도 더 즐거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어쩌면 긍정 도파민을 올리는 방법을 찾는 게 단주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감사하게도, 중증이었던 두 사례자 분 모두 

3주 단주를 무척 열심히 성실하게 성공해 주셨다. 

여러가지 중독을 해결하는 방법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다. 


"당신은 해낼 수 있어요"


매일 먹고 자는 것, 약 먹고, 심리 치료를 받고

일주일에 두 세번 씩 대면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다면,

긍정적인 피드백과 적극적인 소통이 꾸준하게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면.

중독은 해결될 수 있다. 


중독은 의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병식에 대해 주변에서 이해하고 돕는 것만이 

지독한 중증에서 헤어나올 수 있음을 명심하는 것!

이번 알코올 중독 편에서 배우고 또 배운 부분이라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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