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그레이스에게
지금 나는 교토에 와 있어. 스무 해 전 부모님을 모시고 왔던 그 카페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쩐지 낯익은 풍경을 품은 비슷한 카페에 앉아 있지. 그때 찍어둔 사진 속 부모님을 다시 보니 참 귀여우시더라. 지금은 많이 마르시고 노쇠하셨지만, 여전히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응원해 주시는 두 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큰 힘을 얻어. 그래서인지 오늘 마시는 이 말차는 단순히 내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손길과도 이어져 있는 듯해.
교토에서 마신 진한 말차의 향이 아직도 내 입안에 머물러. 하지만 사실, 우리의 말차 사랑은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됐지. 2025년의 너는 늘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창구 앞에서, 말차 라테 한 잔을 나만의 메뉴처럼 주문하곤 했어. 가격표에 적힌 6천 원이 잠깐 마음을 스치기도 했지만, 결국 “이 정도 보상은 괜찮아”라며 기꺼이 컵을 받아 들었지. 무료와 유료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너의 태도는 지금 돌아봐도 참 현명했단다.
말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어.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작은 의식이었고, 무료한 일상에 꼭 필요한 유료의 활기를 불어넣는 리추얼이었지. 그 한 잔은 너를 리프레시하고, 다시 집중할 수 있게 했으며, 스스로에게 ‘오늘도 잘하고 있어’라는 신호를 건네주는 방식이었어. 인생이 너무 무료할 때는, 오히려 이렇게 확실한 유료가 절실하다는 걸 그때의 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네가 좋은 점은, 늘 적절하게 스스로를 북돋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거야. 말차 한 잔이 단순히 ‘소비’가 아니라, 너를 부스트 업하는 루틴이 된 이유도 그 때문이지. 죄책감이 아니라 자극과 보상의 순환 속에서, 너는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워 왔어.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어.
이제 나는 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인생을 기꺼이 밀어 올려주는 ‘한 가지’를 찾았다는 건 행운이라는 걸. 누군가에게는 달리기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음악이나 술일 수도 있겠지. 우리에게는 말차였다. 그 작은 컵 하나가 무료와 유료 사이의 균형을 지켜주고,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러니 2025년의 나요, 계속 즐겨 마셔라. 죄책감 대신 확신을, 망설임 대신 기쁨을. 초록빛 거품 위에 쌓아 올린 순간들은 결국 네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사소한 보상을 즐기는 지혜가, 결국 너를 멀리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교토 카페에서
20년전 교토여행 사진을 보며
편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