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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의지할 수 없는 타인, 예측할 수 없는 미래, 흔들리는 감정 속

by 두유진

아침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인생은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상황에 따라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선택은 수시로 달라진다. 큰 그림을 그려도 곧잘 지워야 할 일이 생긴다. 그렇다면 계획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하라고 배운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계획을, 사회인이 되어서는 커리어와 재무 계획을 세운다. 부모가 되면 자녀의 삶까지 계획하려 애쓴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삶이 온전히 계획대로 흘러간 적은 거의 없었다.


1. 통제의 환상

우리는 어릴 적부터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고 배운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결혼, 가정, 노후까지. 마치 삶이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 갑작스러운 병, 관계의 끝, 또 다른 기회가 불쑥 찾아온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청년 시절 품었던 꿈은 성인이 되면 흔들리기도 하고, 안정이라 믿었던 자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우리는 미래를 통제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환상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2. 감정의 파도와 선택의 변심

인간의 마음은 늘 흔들린다. 아침에 다짐했던 결심이 저녁에는 흐려지고, 확신했던 선택이 며칠 만에 바뀌기도 한다. 때로는 두려움이, 때로는 기쁨이 결정을 좌우한다.

감정이 바뀌면 선택도 바뀐다. 그것은 변덕이라기보다 성장과 변화의 증거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과거의 계획에 얽매여 스스로를 탓한다. “왜 나는 일관되지 못할까.” 그러나 사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끊임없는 수정과 재선택에 있다.


3. 타인에게 기댈 수 없는 이유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연인, 가족, 친구에게 마음을 기대며 살지만, 결국 모든 관계는 불완전하다. 부모조차 자녀의 길을 대신 걸어줄 수 없고, 배우자나 연인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외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한 계획은 쉽게 무너진다. 타인의 선택과 상황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 내 삶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이다.


4. 그렇다면 계획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왜 계획을 세워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계획은 단순히 결과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설령 그 계획이 수정되거나 지워져도, 그 과정을 통해 내 삶의 가치를 점검한다. 또한 계획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이 삶을 끌어간다.


5. 각자도생, 독고다이의 진실

결국 인생은 각자도생이다.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용기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은 자신뿐이다. 이 사실은 고독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자유롭다. 내 인생을 조율할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소년 > 류승옥

6. 지워도 다시 그리는 용기

인생의 그림은 수없이 지워지고 다시 그려진다. 계획이 무너졌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용기 속에서 우리는 더 유연해지고 단단해진다. 중요한 것은 계획의 완벽함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가치와 방향감각이다.


7. 명화와 함께 떠올린 삶의 단상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운명의 세 여신(The Fates)’을 그린 고전 명화다. 한 여신은 인생의 실을 뽑아내고, 다른 한 여신은 그 길이를 재며, 마지막 여신은 그 실을 가위로 자른다. 인간의 삶은 이 여신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난다고 여겨졌다.

그림을 바라보면 깨닫게 된다. 아무리 치밀하게 그린 계획도, 삶의 실을 재단하는 힘은 우리의 손을 넘어선 곳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주어진 순간을 성실히 살아내고 언제든 새로운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것이다.


그림을 바라보면, “내 계획이 완벽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 내 힘으로 다 할 수 없구나. 그럼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자.” 라는 메시지를 그림은 말하고 있다.


오늘 아침,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허무했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 계획은 틀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생은 완벽한 설계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드로잉이다.


의지할 수 없는 타인, 예측할 수 없는 미래,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도 결국 나를 붙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각자도생의 길 위에서 우리는 고독을 배우지만, 동시에 자유를 배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야 비로소 진짜 나답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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