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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미 Mar 06. 2022

발칸스터디 2부와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이 끝난 후 : 코소보를 둘러싼 나토의 발칸 전쟁이 남긴 것들>

1998년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과정에서 코소보 전쟁이 벌어졌다. 분쟁 이전, 코소보에는 세르비아계(95%)와 알바니아계(5%) 주민이 공존하고 있었다. 두 민족간 갈등은 소련 해체 후 유고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소수의 세르바아계가 다수의 알바니아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불만에서 시작되어 본격화되고, 알바니아계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그랬던 것처럼 코소보의 분리 독립을 주장한다. 세르비아에게 코소보 독립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코소보는 세르비아 정교의 발원지이자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성지이며, 오스만 제국에 마지막까지 대항했던 1389년 코소보 전투의 현장으로, 세르비아 민족정신 고취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분리 독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지자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자 독재자) 밀로셰비치는 코소보가 가지고 있던 자치권을 박탈하게 되고, 긴장감이 고조되던 와중 1998년 3월 코소보 해방군이 세르비아 경찰을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된다. 세르비아 정부 지원 하에 세르비아계는 코소보 내에서 알바니아계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고, 1999년 NATO는 코소보내 알바니아인 인권 수호라는 명분 하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공습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 코소보를 둘러싼 나토의 발칸 전쟁이 남긴 것들>은 코소보 분쟁을 철저하게 좌파적인 시각으로 분석한 에드워드 사이드, 노암 촘스키, 지오반니 아리기 등 11명의 지식인들의 짧은 글을 엮은 책이다. 11개의 글은 모두 세르비아-코소보 분쟁 당시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 하에 세르비아를 폭격한 미국과 나토 의사결정을 정당성, 효과성, 일관성 모든 측면에서 비판한다.


세르비아 폭격은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정당화하기에는 발칸지역에서의 나토 영향력 유지와 러시아 견제라는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고, 무엇보다 공습의 결과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는 한편 “78일간 계속된 폭격과 3만6천회의 출격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의 기갑부대는 거의 상처 하나 입지 않은채 코소보에서 나왔”을만큼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타깃이 무엇인지 하는 문제에 관해서조차 나토의 최고위 군부 내에 심각한 분열이 존재”했을 만큼 나토내 의사결정 과정이 비일관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 이익이 걸려있으니 개입하는 거면서,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개입인 척, 그러면서도 주요 언론을 통해서는 세르비아인들을 인간말종(scum)으로 표현하며 “야수를 물리치고 인종말살을 중단시키려면 전쟁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폭격을 정당화한 미국과 나토에 대한 비판에는 나도 동의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를 까려다보니 자연히 세르비아를 옹호해야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나친 비약, 예를 들면 당시 세르비아의 대통령이자 독재자 밀로셰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헌법을 준수하며 세 번이나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서방이 주장하는 것처럼 독재자라고는 볼 수 없다는 주장에는 당연히 동의할 수 없었다.


대놓고 편향된 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걸러가며 읽는 것이 좋은 책이었지만,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통념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흑백논리로 세르비아는 나쁜 놈들이고, 미국과 나토는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함께 스터디를 하는 친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그래서 대안이 뭔데? 까기만 하는건 누가 못해?“라는 입장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토와 미국을 까지만, 그렇다면 그 당시 코소보 분쟁을 종식시킬 더 평화로운 대안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11인의 저자 모두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러시아, 나토 그리고 미국이 주요 행위자라는 점에서 1999년 코소보 분쟁, 그리고 그 이전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벌어졌던 수도 없는 역사적 분쟁들과 맞닿아 있다. 지금이 푸틴이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소련 해체 이후 미국과 나토의 동유럽에서의 팽창적 행보는 정신 나간 푸틴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비극에는 미국과 나토도 일말의 책임이 있고, 러시아 경제 제재니 유엔총회 결의니 지금의 대응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뭐가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토와 미국이 핵보유국인 러시아를 직접 상대로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가는 상황이 겉잡을 수 없어질 것 같고… 


약간 충격적인 것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일부 세르비아인들의 생각이었다. 최근 베오그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전세계인이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분은 그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민스크협정을 지속적으로 위반했고, 1999년 세르비아 공습을 포함 미국과 나토의 정책은 위선적이었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세르비아에서 주류에 있는 지식인이라는 분이 격앙된 어조로 러시아를 옹호하는 걸 듣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졌었다.


또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 세르비아인들이 자신의 SNS에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 당시 사진을 업로드한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의도일까 잘 캐치하지 못했는데, 이번 사태에서 서방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우회적인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세르비아인들은 아직 나토 공습의 기억을 안고 서방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같은 슬라브족이라는 민족적 정서로 러시아를 옹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자지라는 최근 우크라이나 다음 분쟁의 무대가 발칸반도로 옮겨올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고, 유럽연합 또한 다음 분쟁이 발칸 반도에서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 후보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라고한다. 1994년 보스니아 내전 이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2008년 마침내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는 아직도 내정이 불안정하고, 여전히 러시아와 서방의 영향력이 공존하며 충돌하는 곳이다. 


최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내 친러시아 성향의 스릅스카공화국(세르비아계)에서 과격한 분리 독립의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러시아가 이 상황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로 결정한다면 발칸 반도가 정말로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도 있다. SNS가 고도로 발달한 2022년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비극을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보고 반응하고 있는데, 또 다른 전쟁은 안될 일이다.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자, 마지막 전쟁이 끝난지 고작 30년밖에 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더더욱 안 된다. 유럽과 미국이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본인의 책임을 다하고 지역의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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