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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비전공? 독학?

by 사온

처음에는 그냥 낙서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삐뚤빼뚤 만화로 해외살이를 그린 인스타툰 작가님들을 보면서, 아 저런거라면 나도 잘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날 “글씨가 들어간 캐릭터 그림”은 일러로 쳐줄 수 없고, 누가 그런걸로 돈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부 희망낚시 사기이며, 조회수 높이기 좋은 움직이는 릴스로 유명세를 확보하는 것은 파렴치한 것이라는 의견이 스레드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자유분방한 인스타그램 세계에, 글씨크기가 얼마나 커야하는지 몰랐고, 그리면서 계속 의견을 반영해서 조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스레드가 발달하면서 굳이 인스타툰으로 이야기 안풀어도 되는 소재가 되면서 기존의 툰작가님들의 양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내 그림보다 떡밥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짐. 그러다 가끔 공들여 그린 그림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것에, “아, 뭔가 컨텐츠를 만들어서 내보여주려면 결국 사람들는 공들인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깨닫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막 시작할 그 쯤 내 계정은 하루에 백명단위로 팔로워가 늘어나고 있었고, 아무 글이나 써도 하트가 몇십개씩 달리던 때라, 신선한 소재와 단순하고 조잡한 그림으로 받는 주목에 다른 작가들도 많이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반응에는 당연히 부정적인 반응이 따르기 마련이고, 지금도 조회수나 팔로워를 생각한다면 늘릴 수야 있다. 그런데 당장은 목적에 부합하는 그림을 먼저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 일단은 계정 확대는 멈춘 상태이다.


그 시기,


“꼭 비전공자라고 하면서 안배워도 잘한다고 잘난척 하는 인간들이 제일 싫다“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강의를 홍보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사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잘 못하니까 좋게 봐달라고 하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올 때에는 갖춰야할 성의가 있어야 하고 어떤 예의란게 필요한걸까! 하며, 글씨가 있는 4컷툰이 아닌 일러스트를 그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전시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저 말을 하면서, 내 그림을 사사건건 지적하고 자신의 강의에 영감까지 얻어가며 돌려서 저격하던 분에게 매우 피곤함을 느꼈는데, 실제로


”안배워도 나 엄청 잘하는데 뭐하러 미술로 대학을 가냐“


하는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아... 날 왜 오해했는지, 왜 저렇게 싫어하신 것인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정말 저 마인드, 나도 비전공이지만 정말 내가봐도 "짜치기" 때문이다. 저런 마인드를 가진 분은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가족을 동행해서라도 자신의 사업과 다른 숭고한 예술활동에 얼마나 소양이 깊은지 증명을 받고싶어하시는 듯 보이셨는데, 처음에는 수준급의 실력에 늘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드렸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단 한번도 오고가는 유대감이나 교류 없이 때때로 나타나 비아냥대는 어조를 일관하시는 모습에 사람이 다시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타고난 금수저에 재능도 없는데, 부모를 잘만나 철모르는 열정으로 자신처럼 비운의 예술인을 비웃는 사람이라거나, 과장된 이력으로 유학이력 한줄 올린 채 진정성 없는 음악에 몸을 바치는 듯한 시선이 매우 불쾌했다.


사실 나는 미술 비전공자라고 했지, 독학했다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작가님 누구에게 배웠고, 작가님 누가 시작하라고 권했다고 명확하게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때때로 우연히 발견한 강의 문구에 "독학 아닌데 독학인 척 하면서 제대로 갖추지 않은 그림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의 진정성 없고 거만한 태도를 지적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 것들을 지적한다고 해서 자신의 작업에 큰 발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역시 피아노 전공자고 레슨을 해왔던 입장에서 이론과 기본기가 왜 중요한지 알고있기 때문에 - 중요한 이유가 있을 뿐 정답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정된 레벨에 얽매여 어떤 허들을 절차적으로 밟지 않았다는 것이 실력을 증명하지 않고, 그 과정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기때문에 아카데믹하게 배우지 않고도 음악의 시적인 언어와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를 이미 알고있다면 정론이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영재를 가르쳤던 적이 있고, (한국 학생이 아니였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선택으로 인해 불필요한 수도권 변방의 학교 시스템에 굳이 몇년의 과정을 밟아야 했는데, 내 의견에는 그 아이를 어머니 욕심만큼 키우고 싶다면 나에게 개인과외를 받을 때 학교수업의 보조강사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역량을 존중하고 파리 시내로 나와서 내 교수에게 제대로 개인 레슨을 받고 시간을 앞당겨 정식으로 음악학교에 입학하는 절차가 그 아이에게는 맞는 방법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학부모는 이미 학교 시스템을 밟는 것이 어떤 사회적 "인정"을 받는 수단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필드의 정보도 많이 부족한 분이셨음 - 주위에 음악인이 없었다.) 결국 공교육에 맡겼다. 아이의 경우 약간의 자폐증상이 의심되었고,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진단을 받았으나 음악을 배우면서 말이 트인 경우로, 학교수업이 맞지 않아 몇번을 유급하지만 개인레슨 몇번으로 바로 암기해서 한 곡을 칠 수 있었고, 나이에 비해 상당히 높은 집중력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한번 레슨을 하면 몇시간이고 앉아있을 수 있었다. 여러가지 갑갑한 부분이 많았고, 나는 빌리엘리엇의 발레선생님처럼 화려한 이력과 학부모를 꺾을 만큼의 기세가 있는 강인한 강사가 아니였기에 그 아이와는 작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경우는 매우 특수한 케이스이고, 대부분 소질이 있고 역량이 있는 경우는 배우면서 자신의 길을 찾기도하고,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집안이 그런 환경이라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언어체계로 쌓아 음악이든 미술이든 하나의 작품으로 창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예시로, 모 미술 작가님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지휘자의 자녀에게 미술수업을 제공했었는데, 나이가 어려 형태라던가, 선연습을 굳이 하지 않고 설치작업에 가까운 창작수업을 했었다.


아이의 경우 이미 음악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고, 그 체계가 잡혀있는 경우 높은 확률로 절대음감이며, 멜로디를 들으면 반주정도는 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알베르티 베이스) 기본기가 갖춰진다. 나 역시 어머니가 음악 전공이 아니신데도 불구하고 태교를 클래식으로 했고, 태어날 때부터 자주 울어서 늘 클래식음악을 틀으면 그나마 잠잠해져서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에 익숙했다. 피아노를 시작한 것은 글을 막 읽기 시작할 때로, 만나이 3살 쯤 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유치원 입학할 쯤 멜로디를 듣고 웬만한 곡은 간단한 반주로 칠 수 있었다.


아이를 피아니스트로 키울 생각이 없다면, 서포트할 생각이 없다면, 하지만 그 재능을 살려 음악의 감을 틔우고 싶다면 굳이 제도권의 아카데믹한 교육을 밟아 절차를 이뤄나갈 필요는 없다. 이미 음악적인 감이 있기 때문에 악보 읽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고, 음악 자체를 즐기면서 체화된 코드감각으로 음악을 접한다면 충분히 작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것 자체가 "자랑"은 아니다. 접근이 달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도 이론이 필요하다고 느낄 순간이 오게된다. 감으로 알고있으면 정리를 하고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것을 굳이 거치지 않은 작업물은 또다른 매력이 있다.


말이 빠르면, 음악을 빨리 이해하고, 음악을 빨리 이해하면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듯 싶다. 나는 특히 성적에 비해 외국어 구사 능력이 빠르게 느는 편인데, 나보다 훨씬 더 빨리 느는 전공은, 성악이다. 아무래도 여러 언어로 가곡을 많이 불러야해서 그런 듯 싶다.


미술도 마찬가지로 나는 독학을 한 케이스가 아니다. 어릴 때 미술학원과 음악학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했는데, 미술학원 선생님은 검은 옷을 입고 계셨고 조금 엄한 분위기인데 반해 음악학원 원장 선생님은 파스텔톤의 옷에 상냥한 톤으로 "엄마와 함께 동화나라로"의 엠씨였던 배우 오영실님의 분위기로 반겨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학원을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친오빠는 배운 적도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제 종합장에 4-5컷 만화를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오빠는 할머니와 자란 기간이 길어서, 강요받지 않은 채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자랐는데, 고모들이 사준 "챔프" 만화 잡지, 게임보이, 에반게리온 등 온갖 종류의 만화로 늘 가득했다.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어른들이 오빠에게 일러스트 그리기 교본을 갖다주기도 하고, 그렇게 스스로 그리다가 나중에는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전히 당사자의 게으름과 심경의 변화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고, 현재 회사를 다니며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빠가 늘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형태를 잡기 전에 십자가 모양으로 눈코입의 위치를 잡는 것, 참고하던 일러스트북이 있었던 것, 그림을 그리는 모습 모든게 아주 익숙했고, 오빠가 워낙 잘해서 난 미술에 큰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음악이 아닌 다른 취미 하나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이어리에 조금씩 그려나가던 것들을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나는 칸이 정확하게 나눠진 다이어리보다는 여백이 많고 내가 원해는대로 채워나가는 노트를 좋아해서, 몰스킨을 애용했는데 그 곳을 채울 때마다 늘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스티커나 속지로 채우기보다는 색연필과 색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마음과 함께, 상경한 이후 음악 콘서트만큼이나 미술 전시회에 다니는 것에 잔뜩 재미가 들려있었다. 그림을 더 잘 이해하고싶다는 호기심도 가득했으니, 종종 열리던 클래식 세미나에서 만난 화가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아 인품이 높으신 유화 작가님으로부터 간단한 워크샵을 5회 받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내 마음이 어떤지, 그리고 싶은게 있는지 등을 물어봐 주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이렇게 집중해도 된다는 것에 큰 치유를 받게되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한 마음에 더욱더 집중하고, 내 마음에 더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주셨던 덕에 선연습조차도 지겹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에 와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작가님께 3회정도, 한번 배울 때 반나절 이상 아틀리에에서 기본기 이외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림을 배웠다. 그 역시 세미나에서 만난 화가 선생님의 소개로 만나게된 인연인데, 이후 선생님이 아닌 언니 동생의 사이만큼 가까워졌다. 언니는 내게 정신적으로 큰 의지처가 되었고, 난 언니의 선택과 말에 늘 따라가며 불안하고 우울하고 외로운 마음을 극복하고 홀로서기할 수 있는 큰 도움을 받게되었다.


이후 현재 살고있는 집에 살고계셨던 작가님 (나는 아저씨라고 부르는게 편했음: 친구의 아빠) 께서 그림을 왜 안그리냐고, 겸손한 척 하지 말라며 역정을 내시면서, 그렇게 "언젠가는 그림을 그리긴 해야겠다"라고 한 것이, 집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면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돌아가신 그 작가님의 집에서 결국 살게된 것이다.


이런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엄밀히 말하면 나는 "독학"이 아닌 것에 가깝다. 입시미술을 한 미술인들만큼 집중해서 그린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5년간 그리고 싶을 때는 2-3시간 정도 생각날 때마다 꾸준히 그려온 모든 시간을 합치면 그렇게 적은 시간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비전공이나 독학 그 자체가 “자랑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던 것을 보자면, 음... 갸우뚱하게 된다. 비전공인데도 이정도 하는 것이 자랑이라는 생각을 하늘에 맹세코 해본 적이 없다. 정말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기 떄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피아노 비전공자인데 프로의 실력을 겸비한 채 피아니스트로 활동한다면, 전공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프로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스스로 그림을 잘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잘 그리는 것은 갖춰야할 성의이고, 들으면 좋을 칭찬인 것이지, 나는 잘 그리는 것보다 그려야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아노를 잘 치면 매우 기쁜 것이다. 기술적으로 결함이 없고 해석이 좋고 프레이징 표현력이 좋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연주해야할 곡을 연주하게 만들고 완성된 것을 꺼내보인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즉, 내용에 대한 이해 - 그냥 그리면 예쁘고 색깔이 예뻐서 예쁜 것이 아닌, 그러니까 건반을 누르면 당연히 기분좋은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 서사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특히 돈을 받고 일하는 상황이 아닌 개인작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미 만들어진 곡을 퍼포먼스하는 연주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만들지 않은 곡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구현해내는 것은 화풍과 스타일 등을 이해하고 자신의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과정과 흡사하다. (물론 창작과 연주는 매우 다르다)


때때로 보이는 독학부심이라던가, 비전공자 부심이라던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분노(?) 라고 해야할까 - 선택하지 않은 분야에서 필드 안에서 뛰는 것이 고리타분하다거나 의미없는 일에 불과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면, 이미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고있는 사람의 체념 속에 슬픔이 비친다. 중간에 배우다가 그만뒀다거나, 선택받았어야만 하는 운명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선택을 늘 존중하지만, 나역시 늘 제도권 안에 안정적으로 머무르는 상황이 아니며, 그 궤도를 이탈한 적이 몇번이나 된다. 그 것은 포기를 위한 선택이 아니였다.


탄탄한 과정을 밟고 제도권 안에서 준비된 예술가로서 활동하는데도 불구하고, 빛나는 이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찾을 수 없는 무명의 예술가들이 수도없이 많다. 예술만 바라보고 살면 좋겠지만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요양원이나 고아원 등의 행사에 발벗고 뛰어 찾아가 봉사를 한다. 무급일지언정, 그 높은 학력과 이력으로 공장에서도 일을 한다.


그들의 마인드는 재능이나 전공, 비전공을 넘은 상태다. 그래서 내게 누군가 "돈 안쓰고도 이정도 한다" 라던가, 굳이 힘든길 안가도 문화센터가서 배운 정도의 그림을 들고와서 이정도면 대학 갈 필요 없지 않느냐, 라고 한다던가, 필요한 것만 갖춘 채 굳이 공교육이나 절차가 필요 없었던 케이스를 들고와 "이런 천재도 있다"라고 굳이 "배우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태도에서 때로는 그들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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