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이다! 아들의 기말고사. 유난히도 길고 힘들었던 시험 준비 기간. 1학년 2학기 때는 뭣도 모르고 엄마가 이거 해야 한다, 저거 해야 한다 주문을 외우듯 뱉어놓으면 그 말을 줍줍 주워서 고대로 실행했던 아들. 엄마의 끝없는 주문 덕분인지, 제대로 된 시험을 처음 임하는데서 오는 나쁘지 않은 긴장감 때문인지 아들은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고 그때부터 시험과 성적이라는 무거운 짐을 그 좁디좁은 어깨에 덜렁덜렁 달고 다녔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나름의 합리화를 시키며 아들의 어깨에 스리슬쩍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야금야금 엄마의 욕심도 얹어지고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조금씩 무거워지는 어깨의 짐을, 왠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무거워지는 어깨의 그 짐의 무게를 견디며 단단해지고 있었다.
3번의 시험을 치르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가던 아들. 그 아들이 이번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멘털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혼잣말인 듯 혼잣말이 아닌 아들의 외롭고도 지친 외침이 나의 귀로, 머리로 흘러들어온다.
“맑음아, 뭐가 잘 안돼? 많이 힘들어?”
“나는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명확해지지가 않아. 뭔가 답답해.”
학습패드 하나에 의지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던 아들. 모르겠는 건 EBS강의도 찾아 듣고 그래도 모르겠는 건 챗대리의 도움을 받아가며 공부했지만 답답함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 듯했다. 가려운 등을 벅벅 긁어주듯 모르겠는 문제를 누가 명쾌하게 설명을 해주면 참 좋으련만.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도록 옆에서 도와주면 참 좋으련만.
“맑음아, 2학기부턴 학원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학원을 다니면 숙제 양도 어마어마하고 맑음이가 공부할 분량이 더 늘어나서 힘이 들 수도 있어. 그런데 이제 혼자 공부하는 건 한계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곧 죽어도 혼자 공부해 보겠다는 아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 이 아이도 원하고 있었구나.
“맑음아, 엄마가 궁금한 게 있는데 솔직히 말해줄래? 혹시 너 학원을 망설였던 게 혹시... 경제적인 부분 때문인 거야?”
아들의 말을 듣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학원 하나를 다니는데도 이렇게까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허투루 학원을 다닐까 봐 걱정하고 있었구나.
“맑음아, 우리 집이 부유한 건 아니지만 너 학원 보내줄 정도는 돼. 그러니까 너무 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꾹 참으며, 목이 메어서 목구멍이 아팠지만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기에 최대한 웃으며, 장난치듯 이야기했다.
“혹시 맑음아, 그럼 너 그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들 스스로 돈 모아서 사겠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야?
“응, 우리 집이 다른 집에 비해 돈이 없다는 거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스스로 모아서 사고 싶었어.”
가슴이 한번 더 쿵 내려앉는다.
부족하지 않게 키운다고 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이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맏이라는 자리는 그런걸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흘러가는 공기 속에, 부모의 대화의 흐름 속에 들어있는 속사정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커버린 아이.
결핍이 오히려 아이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거라며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냥 내 마음이 편하자고 좋게 좋게 포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영암에 터를 잡고 살아오면서 우리가 겪었던 힘듦, 그리고 그것들이 해결되었던 과정들, 생각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며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펼쳐졌던 순간들을 아이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표정은 놀라움, 안도감, 마지막엔 평안함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진 덕분일까. 아이는 다시 멘털을 붙잡고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향을 잡고 책상 앞에 앉았다. 최대한 아이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고자 같이 머리를 싸매며 문제를 풀었고 끙끙대며 잡고 있던 문제가 해결됐을 때는 호들갑을 떨며 아이에게 문제를 설명해 주었다.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싶었고 나의 그 마음이 아이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시험준비도 안정감을 찾았고 드디어 오늘이다!
오늘만큼은 어깨에 짊어진 그 짐들을 잠시 내려놓기를 바라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등교하길 바라는 바라며 집을 나서는 아이 손에 전날 밤에 써놨던 손편지를 가만히 전해주었다.
두근두근, 이제 곧 있으면 문을 박차고 들어오겠지. 어떤 표정으로 들어올까. 아무 말하지 않고 무조건 잘했다, 수고했다고 말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