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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어질지니

매일 글쓰기 6. 세 가지 소원

by 새벽별


드라마 본방사수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사치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하교하는 오후 4시부터는 나의 시간은 없다. 배고파하는 아이들 간식도 좀 신경 써야 하고 정확한 배꼽시계를 가진 아이들의 입을 막으려면 정확히 6시에는 저녁을 차려야 한다. 저녁을 먹고 난 뒤 7시부터는 아이들의 학습을 봐줘야 하고 씻으라고 잔소리도 좀 해야 하고 자기 전 방정리도 좀 시켜야 하고... 드라마를 제시간에 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실 요즘 어떤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지 뭐가 재미있는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에게 드라마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못하게 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유튜브 알고리즘.

어쩜 그렇게 재미진 부분만 쏙쏙 보여주는지 정신 차리고 보면 마지막 회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는 내가 있다. 요즘 빠져서 본 드라마는 바로


‘다 이루어질지니’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와 소원 세 개를 이루어준다는 기본 포맷에 좀 특이하지만 엄청 예쁜 여자주인공이 등장하고(어떻게 특이한지 궁금하면 찾아서 보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심리와 욕심 기타 등등 흥미로운 소재가 들어있는 이야기다. (궁금하면 정주행 하시길)

소원 세 개. 램프의 요정 지니가 실제로 있다 과연 나는 어떤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할까. 혹 나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욕심이 생겨 마지막 소원을 말해야 할 때 “내가 두 가지 소원을 빌었다는 걸 당신(지니)이 잊게 해 주세요.”같은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까.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소원 세 가지를 무얼 말해야 하나 자꾸 생각하게 됐다.(실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인데 대체 왜?) 내가 소원을 빈다면,


램프.jpg


우선 첫 번째로는, ‘행복한 가정, 가족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빌 것 같다. 말하자면 일주일 꼬박 새워야 할지도 모를 나의 복잡한 가정사. 그 안에서 느끼는 불행, 슬픔, 우울. 이번 추석을 보내며 화목한 가정에 대한 바람은 더 커지게 되었고 나의 원가족에게서는 느끼지 못했으나 내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이루어갈 가정까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만나기만 하면 마냥 다 좋을 가족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만났을 때 불편하지 않고 서로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그런 가족. 다툼보다는 웃음이 조금 더 많은 그런 가정을 만들고 싶다.



두 번째로는, ‘멋진 할머니로 늙게 해 주세요’라고 빌 것 같다.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으로 뭉쳐있는 사람 말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계속 배움을 놓지 않는 지혜롭고 총기를 잃지 않는 어른, 그런 할머니.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데 자꾸 배어 나오는 인품과 온화한 표정을 지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얼굴을 가진 어른. 그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세 번째로는, 속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 역시 물질과 관련된 소원을 빌 것 같다. ‘아이 셋 키우는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물질을 주세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경제적으로 엄청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그러다 신학생인 남편을 만나고 그런 남편을 따라 지도에서만 보던 전라도 어디쯤으로 내려오고. 경제적인 문제로 바닥까지 치고 올라온 경험을 하고 나서 알았다. 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임을.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질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는 눈치를 자꾸 보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가 종종 있다. 아이들이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을 만큼의 부를, 마음껏 나누고 돕고 섬길 수 있을 만큼의 물질을 주세요라고 마지막 소원을 빌지 않을까.




가만, 글을 쓰며 문득 드는 생각. ‘기도해. 기도하면 되잖아’

아, 그렇지.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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