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8. 오늘의 소비
몇 달 전부터 아들의 여드름이 심해진다. 여드름이 청춘의 꽃이라지만 한창 외모가 신경 쓰일 사춘기 아이에게는 그리고 (내 눈에만) 잘생긴 아들의 얼굴에 깊고 얕은 흔적들이 남는 걸 바라보는 엄마에게는 그 꽃은 영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여드름에 좋다는 연고, 화장품, 여드름 패치까지 사다 나르기 바빴고 이런 내 고민을 정확히 간파한 SNS는 시기적절한 알고리즘을 통해 여드름에 좋다는 각종 광고를 수없이 쏟아냈다.
엄마보다 더 얼굴에 찍어 바르는 게 많은데도 호르몬의 영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고민 끝에 아이와 피부과 진료를 받기로 결정, 대기가 너무 많은 병원이라 조퇴 후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나의 중고등 시절에 여드름으로 피부과 진료를 받는다는 건 언감생심 상상도 못 했었다. 일단 부모님이 자녀 피부까지 크게 신경 쓸 만큼 애정 어린 분들이 아니었고 먹고살기 바빠 내 피부를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나 역시 중고등 시기엔 당연히 겪고 넘어가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으니까. 청소년기 때 제대로 잡고 넘어가지 않아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끝없이 솟아나는 여드름으로 고생을 했었고(지금도 진행 중) 피부과에서 미용 관련 시술을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대로 된 진료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게 한이 되었던 걸까. 아이를 위한 진료비가 전혀 아깝지가 않다. 오히려 결제를 하는 그 순간이, 아이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일단 피부가 깨끗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이미 나는 글렀고 아이들만큼은 깨끗하고 맑은 피부를 갖게 해주고 싶다는, 어쩌면 어미의 대리만족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가성비 좋은 피부과를 소개받았는데 강진까지 가야 한다. 이곳에 살면서 편도 30킬로는 이제 뭐 먼 거리도 아니다. 아들을 태우고 강진까지 가는 그 길이 참 여유롭다. 차창밖으로 솟은 산도 단풍이 오려다 만 것 같은 풍경도 참 좋다.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도 참 아름답다. 가족 외출 때마다 지박령도 아닌 것이 혼자 집을 지키겠다며 함께 할 시간을 주지 않았던 아이와 함께 하는 길이라 더 신이 났을까. 무심하게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심취해 있는 무덤덤한 표정의 아이는 함께 하기만 해도 좋은 엄마의 이 마음을 과연 알까. 새로 난 여드름 하나에 반응하는 아들의 그 모습을 보며 엄마도 함께 마음 졸인다는 사실을 과연 이 아이는 알까.
피부과 진료를 다 마치고 카페도 들렀다. 예쁜 카페도 아니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아닌 그냥 평범한 프랜차이즈 카페일 뿐인데 아들과 차 한 잔씩 시키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이 엄마의 소확행이라는 걸 이 아이는 결코 알 수가 없겠지. 매일 이것저것 사달라는 두 아이와는 달리 뭐 하나 사달라는 말 한마디가 없는 아이에게 맛있는 음료라도 사주고 싶은 이 엄마의 마음을 넌 긴 시간 동안 모르고 살겠지.
그래, 몰라도 돼.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이 끝나지 않을 짝사랑, 나 혼자 오래오래 하지 뭐. 그냥 지금처럼만 마음도 생각도 몸도 건강히 지내줘. 그거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