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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사랑은 뒤에 있었다.

매일 글쓰기 9. 수능

by 새벽별

수능날이다.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내왔는지, 얼마나 고통 속에 지내왔는지 누구나 다 알기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과정을 묵묵히 걸어왔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날임을 알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집안에 수험생이 없어도 이날만큼은 마음이 뭉클해지는 날이 아닐까. 수능이라는 단어와 멀어진 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침 뉴스에 흘러나오는 소식과 화면을 통해 비치는 고3 아이들, 그리고 묵묵히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고요해지고 뭉클해진다. 그러곤 아주 잠깐이지만 그들의 행운을 빌어 본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수험생들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아이들보다 자식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는 부모들에게 눈길이 간다. 방송에서 “부모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넘의 집 자식을 보는데 나한테 한 말도 아닌데 주책맞게 왜 내가 눈물이 나는 건지 원.



중2 큰 아이를 볼 때면 짠한 마음이 들 때가 참 많다. 초등학교 때는 상상도 못 했을 어마어마한 학습 양, 그리고 그에 따르는 난이도. 각종 평가와 시험. 그 안에서 허덕이면서도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더 속상한 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젠 점점 없어진다는 것.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한답시고 ‘힘들면 하지 마. 쉬어. 괜찮아!’라고 속 시원히 이야기해 줄 수도 없고 공부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하는 아이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조심스레 건네는 위로가 전부다. 아직 중학생인 아이를 바라볼 때도 이렇게 마음이 짠한데 수험생을 둔 부모의 심정은 말해 무엇하리. 밤늦게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결과 앞에 희비가 엇갈리고 잠시도 주저앉아 있을 작은 여유조차 없었던 시간들. 지쳐있는 아이에게 그냥 다 내려놓고 쉬라는 그 말 한마디 쉽게 꺼낼 수 없었을 그 시간들. 그 모든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수해야만 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던 아이들도 힘들지만 함께 달리고 옆에서 동행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건 아닐까.





내가 고3일 때가 흐릿하게 기억이 난다. 수능 전날 밤 거나하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아빠가 꼭 안아주며 고생했다고, 시험 잘 보고 오라는 말을 건네며 흘리던 아빠의 눈물이. 그땐 아빠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아빠가 흘리는 그 눈물의 무게가 무거웠고 그래서 시험을 망치면 안 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컸고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부모가 되어보니 그리고 점점 커가는 아이를 바라보니 그때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제 몇 분 후면 모든 시험이 종료되고 누군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누군가는 아쉬움을 잔뜩 가지고 시험장을 나오겠지. 결과가 어찌 되었든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애 많이 썼다고, 고생 정말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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