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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앤오스틴 Aug 05. 2021

100만 원으로 창업하기

-4- 디자인의 값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투자자를 찾았고, 바로 투자자분에게 인사를 드렸다. 외국에 계신 투자자분은 우리 자매를 응원한다면서, 그래놀라가 완성되면 꼭 보내달라 하셨다.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날부로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레시피 개발을 하고 그래놀라를 구웠다. 사업을 구상하는 건 처음인데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신기하게도 해야 할 것들이 딱딱 그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를 할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난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너무 일찍 찾아왔다.


 사업은 처음이라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든 부분은 '디자인'이었다. 패키지 디자인을 구상하던 중 일러스트가 필요해서 우리 브랜드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일러스트레이터께 메일을 보냈다. 1시간도 안되어서 빠른 답장을 주셨는데, 작가님께서 제시해주신 금액은 나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다. 그림 한 장의 가격. 미술을 좋아해서 나름대로 디자인의 가격을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시세를 모르는 것이었나.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답장을 드리는 것을 보류한 채 고민에 빠져버렸다.


 동생과도 상의를 했지만, 동생도 예상보다 훨씬 큰 금액에 고개를 내저었고 다른 일러스트 분께 컨택을 드리기보다 시세를 알자는 생각에 나와 가장 가까운 지인이자 디자이너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그림이 예쁜데, 그림 한 장의 가격으로는 너무 비싼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한마디를 해주었다.




디자인의 가치를 모르는 사업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

 


 


그 순간, 그동안 예술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내가 부끄러웠다. 뜨끔했다. 예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실은 그 그림을 정말 쓰고 싶었다. 그분의 디자인이 필요했다. 내가 상상하던 일러스트가 그분의 손끝에 달려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돈을 지불할 능력이 안되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초라했다. 일러스트의 가치, 패키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러스트 비용으로 예산 초과의 금액을 지출해버린다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패키지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디자인 마케팅이 중요한지, 아니면 일러스트를 포기하는 대신 재료와 레시피 개발에 우선 투자할 것인가. 자본은 한정되어있었고,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놀라 패키지를 구상하기 전에 타사 브랜드의 패키지를 많이 검토했는데, 기억에 확 남는 로고나 일러스트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굉장히 유명한 업체의 패키지 또한 내가 상상했던 그래놀라의 이미지는 없었다. 그런데 비용을 알아보며 깨달았다. 이상이 클수록 비용 또한 그에 맞춰 비례한다는 것을.


 국내 최고의 건축가 김승회 건축가님이 설계한 해방촌 더월 갤러리의 관장님께서는, 원하는 디자인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컨택을 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라고 조언하셨지만, 당장 우리 브랜드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한 어떠한 것도 완성된 게 없었다. 레시피는 아직 개발 중에 있었고, 디자이너님께서 제시해주신 금액은 그동안 쌓아오신 실력과 능력에 합당한 금액이었다. 그것을 깎는다면, 그분이 지금껏 자신의 그림체를 만드느라 쌓아온 시간들까지 부정하는 것이었다. 당장 우리의 사정은 고사하고서라도.


 하지만 첫 기획이니만큼 투자금액을 회수하고 손실을 줄이는 것도 사업이 계속 진행되기 위한 필수요건이었다. 때문에 결국 작가님께 정중히 메일을 드렸다. 사업이 번창하면 꼭 일러스트 의뢰를 드리고 싶다는 소망을 남긴 채.


 다른 일러스트레이터 분께도 컨택을 드려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대략적인 시세를 알았으니 우리가 생각한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스스로 일러스트를 구상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나. 보는 안목은 있어도 그림 그리는 능력은 부족한 내가 어떻게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고민 끝에 다니던 미술학원 선생님께 SOS를 청했고, 선생님은 같이 그림을 그려보자고 선뜻 용기를 주셨다.









 먼저 아이패드에 간략하게 사물들을 그리고 종이에 옮겨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가운데에는 제인과 오스틴의 사진을 일러스트로 따고, 그를 주변으로 빵, 과일, 꽃, 고양이들, 그림, 책, 잼병 등 좋아하는 것들을 그렸다.






아이패드에 그린 것들을 구도를 잡고 종이에 옮겨 그렸다. 오른쪽 하단에 제인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그려 넣고 수채화로 색칠까지 했지만 여전히 아마추어의 그림이라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결국 디자이너 친구에게 S.O.S를 요청했고, 원하는 느낌의 그림들을 스크랩해서 레퍼런스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답장은



저는 진심으로 이 친구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존경했지만, 이 정도면 완전 crush on her...)






그렇게 '그림 한 장'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제인앤오스틴의 일러스트가 나왔다.

처음 초안을 그려 보냈을 때가 7월 22일이었는데, 최종본이 나오고도 끝없는 수정을 해서 8월 2일부로 완전히 마무리를 하고 스티커 주문제작에 들어갔다. 내가 처음 그저 '그림 한 장'이라 생각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친구는 호텔에 들어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고, 처음 단순한 ‘그림 한 장’이라 생각한 그림은 그 후로도 10일을 꼬박 피드백을 주고받다가 완성이 되었다. 절대 가벼운 그림이 아니었고, 절대 가벼운 디자인이 아니었다.  


 친구는 말했다. 그 그림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영혼을 갈아 넣는다고. 그게 일러스트라고 해서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고.


 이 한 번의 경험으로 처음 작가님이 제시했던 금액이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수정과 의견의 교환 끝에 그림 하나가 탄생된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친구이자 존경하는 이진선 디자이너님께서 제인앤오스틴의 출발을 기원하며 선물로 주셨다. 감히 그냥 받아도 되는 거냐는 질문에 친구는 오히려 이럴 때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건강하고 맛있는 만들고 싶다는 마음 외에는 가진 게 없는 나에게 참 과분한 친구다. 더 잘해야지, 인연에 더 감사하고 브랜드를 잘 런칭시켜 보답해야지 생각이 든다.



ps. (그래서 디자이너님께는 제인앤오스틴 그래놀라 평생 이용권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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