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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레타로에서 치정 살인극의 무대, Museo Casa de la Zacatecana (사카테카나스 부인의 집 박물관)을 방문한 후 점심을 먹을 새도 없이 다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사카테카스 부인의 집 박물관 (멕시코 케레타로: 귀신이 나오는 박물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f28ba79a1a61477/18
네시 반에 출발한다는 버스는 네시 반이 되어서야 도착해 짐과 탑승객들을 실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좌석이 훨씬 편안했다. 좌석 간의 공간이 널찍했고, 다리 받침대가 있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었다. 시트도 뒤로 젖힐 수 있어 다리 받침대를 펴고 좌석을 젖히면 거의 누워서 가는 것과 비슷했다. 한국 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는 요금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탑승객도 나를 포함해 셋이 다라 버스 내도 조용하고 쾌적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오밀조밀 모여사는 집들의 풍경이 정겨웠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 해 아래, 달리는 버스 내에서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기사님의 애창곡 리스트 중 열댓 곡 들었을 때쯤 산 미겔 데 아옌데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터미널은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니 드디어 목적지였던 산 미겔 데 아옌데에 도착했구나, 싶어 기분이 들떴다.
CENTRAL DE AUTOBUSES (SAN MIGUEL DE ALLENDE)
주소: Calz. de la Estación 90, San Miguel de Allende Centro, Zona Centro, 37700 San Miguel de Allende, Gto. 우버를 잡기 어렵기도 하고 일반 택시도 비싸지 않으니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반 택시 (초록색)을 타면 된다. 산 미겔 데 아옌데 중심가까지는 70-80페소 정도로 요금이 책정되어 있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LA MORADA 호텔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이 호텔을 예약한 일이었다. 나는 여행할 때 주로 위치와 가격만 중요시 여기는데, 퇴사 여행이고 힐링여행이니 하나 더 욕심내서 '욕조'가 있는 룸을 예약했다. 멕시코는 한국 대부분의 아파트에 기본적으로 배치되어있는 욕조가 없다. 호텔도 대개 스위트룸 정도는 되어야 욕조가 있으니 평소에는 입맛만 다시다가 이번만큼은! 하는 마음으로 예약했다. 이번 여행 전체에서 가장 큰 소비가 있었던 부분이지만 전혀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좋았다.
HOTEL LA MORADA:
위치 ★★★★★ 주요 유적지와 맛집이 가까움
시설 ★★★★☆ 옛날 콜로니얼 양식의 건물이지만 잘 관리되어 있어 깨끗하고 쾌적했음 다만 현대적인 시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음
서비스 ★★★★★ 산미겔에서 만난 사람들 대다수가 친절했고 호텔 직원도 마찬가지
https://goo.gl/maps/Pr5MmiAyv4Fh6Qs86
호텔 앞에 도착해 택시 기사님이 차를 대려고 했는데 마침 앞의 차가 고장 나 도로를 그대로 막은 채로 짐을 내리게 됐다. 빵빵대지도 않는 뒷 차들을 보며 기사님께 "다들 인내심이 있고 여유 로우시네요!"라고 하니 기사님이 웃으며 대꾸하시길, "여기서는 다들 여유로워야 하지요, no hay de otro (다른 수가 없으니까요)"
그 말에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멕시코 회사에서 일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지쳐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꾸역꾸역 물 밀려들어 오는 업무는 왜 하나같이 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들인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하나같이 급하게 해서 넘겨야 하는 일들인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의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고 손도 빨라졌는데 왜 아직도 내가 처리하는 일들보다 업무가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도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를 다그치고 저기에 사과하며 2년을 넘게 버티는 것에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결국 사표를 던졌고 1달간의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이 여유로운 도시, 산 미겔에 도착했다.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고, 다른 수는 없다고 말하는 기사님 말에 마지막까지 본능적으로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으며 왠지 눈물이 났다. 여기서는 쉴 수 있다. 여기서는 여유로울 수 있다. 여기서는 빠르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는 효율적이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는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된다.
뜨거워진 눈시울이 괜히 부끄러워 눈물을 손으로 아무렇게나 훔쳐 셔츠 자락에 슥슥 문질렀다.
호텔 체크인을 마친 후 짐을 간단히 풀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봐놓은 리뷰 좋은 맛집이 있었다
RESTAURANTE LOS MILAGROS:
위치 ★★★★★ 중심가에서 가까움
맛 ★★★★★ 구글 코멘트에서 1점 준 리뷰조차 맛은 있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서비스 ★★★★★사람들이 친절하고 손님이 많았는데도 음식이 금방 나왔다
분위기 ★★★★★ 내가 갔을 때는 라이브 뮤직 공연이 있어 멕시코의 청취를 느끼기 좋았다
시설 ★★★★☆ 엄청 깔끔하고 현대적인 식당은 아니다
https://goo.gl/maps/aMYeLVdSSd5LELqZ6
아라체라 (한국으로 치면 제비추리 부위)와 ALLENDE 흑맥주를 시켰다.
생각보다 음식이 빨리 나왔고 라이브 뮤직 공연도 흥을 한껏 돋워 좋았다.
나는 원래 음식 사진을 찍는 타입이 아닌데 한입 썰어 입에 넣고 나서 '아 이건 찍어야 해'라는 생각에 후다닥 사진을 찍었다. '이것만 먹으러 산 미겔 와도 좋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입이 짧다. 한 접시 시켜서 다 먹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런데 여기 음식은 싹싹 긁어 다 먹어치웠다. 산 미겔에 갈 예정이 있다면 다른 데는 몰라도 이 맛집은 꼭 가야 한다!
맥주 한잔에 기분 좋게 술기운이 올라 식사를 계산하고 숙소를 향해 걸었다.
알록달록 예쁜 색의 옛날 양식을 한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자니 동화 속의 마을에 들어온 것 같았다. 화려한 장식을 한 곳도 있고, 옛날 가게의 정겨움을 품고 있는 곳도 있었다.
걷는 내내 볼거리가 많아 괜히 한 바퀴 반대쪽으로 더 돈 후에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고생했으니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쉴 차례였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나와 산 미겔의 대표적 건축물, Parroquia de San Miguel Arcángel을 보고 있으니 산 미겔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핑크 성당으로도 유명한 산 미겔 성당은 스페인의 바로크 양식을 따서 지어진 17세기 건물이다.
산 미겔 데 아옌데에 놀러 간다고, 이미 다녀온 사람들에게 뭘 보러 가야 하고 뭘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공통적으로 했던 대답이 있다. "그냥... 구석구석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뭐 특별히 보러 가야 하고 해야 하는 것도 없다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구석구석에 켜켜이 접혀 쌓인 분위기가 있다고. 그런 곳을 만나게 되면 잠깐 앉았다 쉬어가라고.
뭔가 하기 전에 계획을 세워야 하고 미리 알아봐야 하고 동선을 짜야하는 나에게는 색다른 여행지였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서 하루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곳. 이성보다 감성을 먼저 앞세워 걸을 수 있는 곳
그렇게 발걸음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수녀의 방귀를 파는 가게를 만났다.
수녀의 방귀라고 하니 꼭 상상 속의 마녀의 가게에서 팔 것 같은 이상한 이름이지만, 산 미겔 데 아옌데에는 정말 수녀의 방구라는 것이 있다. 뭔가 초록색일 것 같고, 이상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이름이지만 수녀의 방귀는 달콤하고 쌉싸름한 이곳의 특산물! 초콜릿 디저트다. 나는 오리지널과 다크 초콜릿 둘 다 샀다
이 초콜릿이 수녀의 방귀라고 불리게 된 기원은 이러하다.
"El nombre de este chocolate artesanal Queretano, en contra de lo que pudiera parecer, no tiene nada que ver con lo que esta pensando..."
"케레타로의 장인이 만든 이 초콜릿의 이름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도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답니다..."
옛날에 케레타로에 살던 두 명의 멕시코인 초콜릿 장인이 있었단다. 이 두 장인이 만나 "El Palacio del Chocolate", 그러니까 초콜릿 왕궁이라는 초콜릿 제과점을 열었는데 이곳에서 실수로 그리고 우연히 이 수녀의 방구라는 초콜릿 디저트가 탄생했다. 어느 날 이 장인들이 평소대로 초콜릿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실수로 레시피를 잘못 읽어 엉뚱한 초콜릿이 나왔다고 한다. 실수로 만들어진 이 초콜릿은 생각보다 아주 맛있어서 정식 제품으로 내놓으려고 이름을 정하려던 이 장인들, 평소에 존경하던 이탈리아 셰프의 작품 "Petto di monca" 수녀의 가슴이라는 디저트의 이름을 따오기로 한다. (원형이 된 이 디저트가 궁금하다면 구글에 nuns' breast pastry라고 쳐보시라, 차마 부끄러워서 사진은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조수 보라고 수녀의 가슴이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Pecho de monja"라고 써두셨단다. 그런데 이 분들이 초콜릿에는 일가견이 있어도 글씨는 영 못쓰셨는지, 조수가 "Pecho de monja"를 "Pedo de monja", 즉 수녀의 방귀라고 잘못 읽어 그렇게 판매되기 시작했고 결국 그게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실수에 실수가 더해져 탄생한 명작, 수녀의 방귀의 이야기다.
이렇게 실수가 사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영감이 되는 이야기들을 나는 좋아한다.
수녀의 방귀 초콜릿까지 샀으니, 이제는 로컬 시장에 가볼 차례다!
수녀의 방귀를 드셔보셨나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