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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Jan 10. 2022

코스타리카에서 지명수배자와 결혼을#2

#내띨빵한4번방남자가한건할줄알았지

"¿Antonio? ¿Criminal? ¿De qué me está hablando?"
(안토니오가 범죄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고 신뢰가 두터웠던 안토니오가 범죄자라니, 아줌마가 잘못 안 것은 아닐까?

충격과 의심이 가시기도 전에, 주인아주머니가 던진 또 다른 충격발언.


"안토니오는 안토니오의 본명도 아니야, 많고 많은 가명들 중 하나일 뿐이래. 그리고 지명수배자 신상공개 시스템에 나와 있는 전과 경력도 화려해."


세상에 안토니오가 안토니오가 아닌 것도 충격인데 등록되어 있는 전과도 한두 개가 아니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며 그 전과라는 것들은 어떤 성격의 범죄들인지. 그때까지도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충격에 휩싸여 있는 우리에게 집주인 아주머니가 천천히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몰랐겠지만 모든 세입자들이 처음 들어올 때 요구하는 기본 서류들로 어느 정도 background check를 해. 소성일 너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체크를 했었지. 안토니오 신분증으로 범죄사실 체크 시스템에 돌려봤는데 범죄 기록이 있었어. 자세한 내용을 보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했는데..."


자세한 내막은 이랬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세를 주며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집주인 아주머니는 항상 모든 세입자들에 대해 백그라운드 체크를 해왔고, 안일하게도 본인의 실제 신분증을 제시한 안토니오는 그 과정에서 범죄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 집주인 아주머니가 워낙 밝은 분이고 재밌는 상이라서, 항상 웃으며 타박하기는 해도 친절하고 착한 분이라서, 그렇게 체크할 만큼 치밀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까?


등록된 안토니오의 전과는 총 13건으로서,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흉악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전과는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 절도로 시작한 그의 범죄 이력은, 점점 진화하며 특수 절도 및 강도로 진화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범죄 이력은 '강도' 로서 '무기를 사용하여 위협...'이라는 구절에 숨을 흡 들이쉬게 되는 흉악범죄였다.


아니 그 작은 체구로,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싹 지우고, 강도짓을 하던 사람이라고? 

우리 집에 있을 때도 절도는커녕, 오히려 다 같이 먹을 빵을 부엌에 갖다놓는다던지, 누구든 편하게 가져다 쓰라고 세탁기용 세제를 더 사다 놓고는 했다. 아무리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해도 말이지, 그 사람이야 말로 범죄와는 거리가 먼것 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절대로 자연적인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사실상 불임 판정을 받았던 우리 집 아주머니가 어렵게 아이를 임신하신 이후, 아주머니는 신변에 대해 훨씬 더 까다로워졌고, 안토니오가 범죄자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단다. 아주머니는 세입자 중 (그중에서 가장 친했던 나에게 조차!)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편과 상의 후 어떻게 안토니오를 아무 트러블 없이 내쫓을 수 있을지 고민하셨다고 했다. 결국 안토니오에게, 본인의 임신 이후 뒷집에서 앞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몸이 무거워 힘들어졌다며, 앞집에서 살기로 했다 하고 그중 가장 큰 방인 안토니오의 방을 써야겠으니 방을 비워줬으면 한다고 통보했다.


안토니오는 당연히 반발했지만 1년 임대계약이 끝나는 시점이라 결국 방을 비웠으며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와 안토니의 연이 끝이겠거니 생각했다. 


"누구든 안토니오와 연락하거나 만나는 사람은, 집주인인 나와 나머지 세입자들의 seguridad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알고, contrato de arrendamiento (월세 거주 계약)을 즉시 종료하는 것으로 하겠어"


안토니오와 연락이나 만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최후통첩이었다. 어쨌든 방을 비워주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으며, 본인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것을 알면 충분히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게 집주인 아주머니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앙심을 품을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우리 모두 안토니오가 단순 범죄자도 아니고, 13건의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한두 건은 실수 일 수 있지만, 그 범죄가 더 중대범죄로 발전하고 있는 양상을 띄고 있고,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조차 본명이 아니라니. 사람 좋은 안토니오가 안토니오가 아니라니. 당연히 더 조심해야만 했다. 우리는 코스타리카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들이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혹시 모른다며 집 주변에 거금을 들여 CCTV를 설치하고 밤중에 누군가가 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보안시스템을 깔았다. 사실 집 대문도 그렇게 높지 않고 출입문은 나무로 되어있어서 누구나 침입하고자 하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치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이것이 작은 해프닝으로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에, 안토니오가 범죄자였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안토니오가 내 아마존 계정도 확인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다 주고, 정말 친절했는데"

"그렇지만 더더욱 조심해야 해. 책 커버만 보고 내용을 알 수 없듯이 사람만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까"

"그래, 그래도 키도 다 반납하고 깔끔하게 나갔으니 다시는 엮일 일 없겠지"


있었다. 엮일일이. 내가 아주 이 4번 방의 띨빵 한 남자가 한 건 할 줄 알았다.


세입자들끼리 대화할 때 옆에서 아무 말 없던 4번 방의 남자가 집주인 아주머니의 면담요청을 받고 한차례 면담 이후 그대로 짐 싸서 나갔다. 이번엔 대체 또 무슨 일이냐며 진저리를 치던 나에게 아주머니가 말했다.


"안토니오가 방을 빼면서 반납한 키 외에, 따로 복사한 키가 있었던 모양이야"


아주머니가 CCTV를 설치하신 이후, 여러 차례 모니터링하시던 중 4번 방 남자가 외출 후 밤에 돌아오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4번 방 남자가 차에서 내려 대문을 열쇠로 열려고 하던 중, 열쇠가 없었던지 난처한 표정을 짓자, 4번남자를 내려주고도 도로에 서있던 차에서 안토니오가 내려 (세상에 안토니오를 만났다니!)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열쇠로 대문을 열어주고 차를 타고 다시 유유히 떠났다고 한다. 결국 안토니오에게 모든 키가 복사되어 있다는 것을 4번 방 남자를 통해 알게 된 후, 아주머니는 다시 거금을 들여 집의 모든 열쇠 잠금장치를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4번 남자는 결국 계약 위반으로 다른 집으로 옮겼다.


생각해보면, 안토니오는 왜 내게 (서류상) 혼인신고를 제안했을까? 그저 선의의 제안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위장결혼을 통해 신분세탁과 또다른 범죄를 계획하고 있었던 걸까?


그 사건 이후, 나는 원래부터 생각해왔던 이사를 앞당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보안을 중점에 두고 물색하던 중 괜찮은 곳이 나와 2주일 후 바로 이사를 나왔다. 그 이후로는 정말 다시는 안토니오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도 딱 한차례 안토니오를 만난 적이 있다. 주말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가게에서 나오던 나를 안토니오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소성일 안녕?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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