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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Aug 18. 2022

멕시코 산미겔: 산미겔에 가면 고양 영감에게 인사하세요

#시장터줏대감 #고양영감에게인사하면입장료무료 #멕시코색깔이진한곳

시장을 좋아하시나?

나는 시장을 정말 좋아한다.

높은 구두를 신고 백화점을 또각또각 걸으며 벨벳으로 된 옷걸이에 걸린 옷을 괜히 뒤적여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편한 운동화를 신고 시장에서 보물 찾듯 내 맘에 쏙 드는 것들을 골라내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어딜 여행하든지 간에, 그 나라의, 혹은 그 동네의 로컬 시장을 꼭 일정에 넣는 편이다. 로컬 시장이라고 해도 사실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경우가 적잖이 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느껴지는 그 나라의 색깔과 아름다움에 잠깐 젖는 것이 좋다. 그리고 주머니 사정만 허락한다면 그중 몇몇을 사 오는 것은 더 좋다.


오늘 소개할 곳은 멕시코 산 미겔의 로컬 시장 Mercado de Artesanias



Mercado de Artesanías

주소: Lucas Balderas S/N, Zona Centro, 37700 San Miguel de Allende, Gto.

운영시간: 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손으로 만든 장식품, 그릇, 기념품 등 다양한 물건 판매


한참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Mercado de Artesanias라고 적힌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입구 초입에는 고양 영감이 한 분 계시는데, 가끔 쥐 할멈을 만나러 가셔서 안 계실 때도 있지만 그 자리에 계신다면 꼭 인사를 드려야 한다. 인사를 드리고 기분이 좋아지시면 입장료도 안 받고 공짜로 들여보내 주신다.



다만 귀엽다고 지나치게 가까이 가거나 쓰다듬으려고 하는 것은 금물. 

그러려고 하면 기분이 언짢아지신 영감님이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리시니 그런 예의 없는 짓은 하지 않도록 하자.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는 멕시코 특유의 느낌이 물씬 나는 아름다운 장식품들이 많다. 멕시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죽음을 두렵고 어두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나라답게 죽음과 관련된 여러 장식품들이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해골이 괜히 께름칙하고 맘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다른 물건들도 많이 있으니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인데, 중남미는 그 위치 상 해가 바로 머리 위에 위치한단다. 그러다 보니 예술작품들을 보면 채도가 높고 밝은 색깔들을 주로 쓰는데, 이것은 이 로컬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건들의 특징과도 부합한다. 나는 이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쨍쩅 내려쬐는 태양빛에 영감을 받았다는 중남미 특유의 색깔들이 좋다. 꼭 태양이 칠한 작품들 같잖아. 


채도가 높은 쨍한 색깔들을 다 어우러지게 쓴다는 것은 대범함이 필요하다.

멕시코 사람들은 대범한 사람들인가 보다.



몇몇 개는 저렴한 가격 덕에 쉽게 집어 들었던 반면에, 마지막까지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가격에 져 내려놓은 것들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그림도 있었다. 흔히 그렇듯 액자에 넣어 파는 대신 종이들을 겹쳐쌓아 놓고 일괄된 가격으로 판매했다. 언뜻 보기에는 투박해 보일지라도 나는 멕시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도 고즈넉한 풍경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아무렇게나 그은 선들 사이에도 질서가 있고,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작은 소품까지도 은유적 의미를 담은 Thomas Ramirez라는 멕시코 화가의 작품이었는데 결국에는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꼭 사야지 (열심히 벌자)



가벼워진 지갑과 무거워진 가방을 지고 숙소로 털레털레 돌아오는 길

산미겔 데 아옌데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추로스 집을 만났다.

나는 그렇게 단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실 그냥 지나갈까 고민도 했는데, 다리도 쉴 겸 잠깐 들렀다.

만약 들르지 않았다면 너무 후회했을 정도로 맛있었던 추로스 집, 만약에 산 미겔에 가실 일이 있다면 오리지널 추로스는 꼭 드셔 보셔야 한다


Café y Churrería San Agustín

San Francisco 21, Zona Centro, 37700 San Miguel de Allende, Gto.

영업시간: 월-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별 것 아닌 추로스 같아 보이지만 적당한 바삭함과 속의 부드러움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콤보로 시킨 초콜릿 우유도 진하고 맛있었다!

그것에 더해 가게의 인테리어도 유니크하고 다채로워 추로스를 먹으며 구경하기도 좋았다


카페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가, 예쁜 돌을 파는 가게를 만났다.

돌이라니, 별걸 다 파네 다 상술이야 라고 생각했을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각각의 색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안내문을 꼼꼼히 읽으며 돌 두 개를 골랐다.


보라색은 아름다움, 마법

검은색은 힘, 미스터리함, 엘레강스

하얀색은 순수, 완벽함, 단순함

분홍색은 결합, 섬세함

빨강은 열정, 사랑

주황은 현재, 혁신

파랑은 가려서 안 보이고

초록은 안정, 평온

노랑은 에너지, 재미 를 뜻한다고 한다


나는 검고 흰 돌들 두 개를 골랐다.

먼저 검정 돌로 세상을 지배하고, 흰 돌로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내 산미겔 데 아옌데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퇴사 후 도망치듯 떠난 산미겔에서 많은 위로를 받게 된 따뜻한 여행지.

나는 화려하고 현란한 여행지들도 좋아하지만, 시골 속 작은 동화마을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산미겔 같은 곳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갔다가, 어렴풋한 대답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또 다음 만나게 될 곳은 어디일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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