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갔다산으로갔다 #이제야연예판까지진출하는 #버라이어티한인생
누군가 내 어릴 적 꿈을 묻는다면, 그 답은 단연코 가수였다.
아직 아이돌이라는 단어마저 생소했던 내 어린 시절부터 나는 가수를 꿈꿨다.
내가 처음 만든 이메일 계정이었던 네이버.
그중에서도 "내게 쓴 메일함"에는 여덟 살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쓴 메일이 아직도 잠들어있다.
그 시절 나에게 가수는 꿈이 아닌 당연한 미래였다.
노래도 못하면서 가수라는 직업을 막연히 동경했던 어린 시절을 한국에 남겨두고,
니카라과로 유학을 가고, 코스타리카로 대학을 가면서 찾은 새로운 적성과 꿈들 밑에 깔려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게 된 내 꿈.
그 꿈을 한국도 아닌 멕시코에서 이룰 기회가 왔다.
교회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던 중, 한 친구가 사뭇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무슨?"
"과학자들이 우주의 끝을 연구해 봤는데, 우주의 끝이 유리로 되어 있었대. 꼭 실험실 유리처럼.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어떤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꾸며진 세상일 수도 있다는 거지"
우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게 주일 예배 후에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아?"
그 이야기를 꺼낸 친구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런 이야기도 있다는 거지"
찾아보니 우주유리설이 실제 과학적 가설은 아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본인의 저서 <상상력 사전>에서 상상한 하나의 이야기란다. 그때는 이 허무맹랑하기도 하고, 어쩌면 발칙하기도 한 상상이 내 삶의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집에 돌아와 문뜩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이없는 이야기였지, 라며 헛웃음에 떠내려 보내려다가 그럼 세상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던 내 상상 속에서 "세상"은 베르나르가 말했던 것처럼 작고 고리타분한 어느 실험실속 유리의 실험체가 되었다가, 금방 모양을 바꾸어 광활한 우주의 한 점이 되었다가, 또 하나님의 고분고분한 창조물이 되기도 했다.
내가 상상하는 대로 금세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세상을 상상하다 보니, 내가 살아가며 느끼고 받아들였던 세상의 차가움과 낯섦 대신, 왠지 친숙하고 정겨운 친구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괜히 눈치 보고 지레 겁먹으며 무서워하기만 했네 라는 생각이 드니, 억눌렸던 마음 가운데 괜히 어떤 "미친 짓"에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감이 들었다.
내가 평소 같았으면 안 할만한 일, 내가 그런 걸 왜 해라고 할만한 일, 사실 조금 하고 싶었는데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틱톡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는 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계정을 생성하고, 어떤 콘텐츠를 찍을까 고민하다가 금세 콘텐츠 하나 뚝딱 만들어 올렸다. 관심을 받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좋겠지만, 콘텐츠에 대한 결과 자체보다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계기 자체가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즐거운 대답이었기 때문에 크게 연연치 않기로 했다.
내 첫 콘텐츠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고 냉소적이었다. 그래도 그 첫 좋아요와 댓글에 나도 모르게 다음 콘텐츠를 구상하고, 요즘 트렌드는 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찾아보고 분석하게 되었다.
다음 콘텐츠는 첫 콘텐츠보다는 조금 더 좋은 반응, 그다음 콘텐츠도 아주 조금 더 좋은 반응, 그렇게 조금씩 요즘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가다가 몇몇 개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시작했다.
팔로워 1만 명,
두근두근 가슴이 뛰어 하루종일 틱톡 앱을 들락날락했다.
팔로워 2만 명,
아, 내가 재밌는 게 다른 사람들도 재밌구나,라는 쾌감에 싱글벙글했다.
팔로워 4만 명,
계속 울리는 좋아요와 댓글 알림에 알림 설정을 꺼두었다.
팔로워 8만 명,
이때쯤 중남미식 농담 콘텐츠를 올렸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논쟁의 화두가 되어 바이럴을 타 폭발적으로 팔로워가 늘었다.
어떤 사람들이 내 콘텐츠를 보는지 또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 크리에이터 툴을 보며 분석해 보기도 하고, 어떤 시장을 공략해야 할지, 어떤 콘텐츠를 추천 영상에 올려주는지 공부도 해가며 틈틈이 키운 개인 계정이 어느새 8만 팔로워를 보유한 틱톡 프로 계정이 되었다.
이때쯤 나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영 전공을 살려 회계와 경영관리 쪽으로 커리어를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틱톡 이후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워하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지금까지 커리어와는 아예 다른 콘텐츠 산업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운 좋게 대기업 콘텐츠 사업 스페인어 서비스 서류심사와 1차 면접까지 통과하고 임원 면접만 남겨둔 상황.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콘텐츠 쪽에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고 내세울만한 스펙이 없어 불리하다면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잘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어 크게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면접을 풀어나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질문이 있었다.
"이 포지션은 요즘 중남미 유행과 문화에 익숙하면서도 다음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데, 본인이 과연 그런 역량이 있는 후보자라고 생각하십니까?"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다가 돌연 후보자의 긴장과 당황을 유도하는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이력서에 차마 쓰지 못한 틱톡커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반가운 질문이라 기쁨을 참지 못하고 대답했다.
"네! 저는 틱톡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중남미 문화 시장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사람들이 선호하고 좋아했던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트렌드를 미리 예측해 보면서, 8만 팔로워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 틱톡 아이디를 공유하고, 면접관들이 내 틱톡 영상들을 구경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내 가까운 친구들한테도 아이디를 알려주거나 영상을 보여준 적도 없어서 괜히 간지럽고 쑥스러웠지만, 결국 좋은 조건으로 잡 오퍼를 받게 되었으니, 결국 그날 친구가 이야기해 줬던 우주 끝유리설이 취미를 넘어 취직까지 시켜준 고마운 이야기가 되었다.
틱톡 계정이 성장하며 인터넷 불특정다수에게 여러 메시지를 받곤 했는데, 그중 60%는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고마운 메시지였고, 35%는 이유 없는 비방과 미움이었다. 3%는 홍보용 글이나 스팸이었고, 나머지 2%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기회이자 제안들이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의 게스트 초대 제안,
다른 틱톡커의 합동 콘텐츠 제작 제안, 모델 제안 등 다양한 제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멕시코 아이돌 프로젝트 합류 제안이었다.
20대 후반의 소성일.
누가 봐도 현역 아이돌로 뛰기에는 늙은 몸뚱이와 상큼을 지나 시큼한 외모인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다니. 처음에는 웃음이 나 하하하 웃었고 두 번째로는 잊어버렸던 옛날 꿈 생각이 나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소속사 대표님이 직접 오디션을 보고 싶어 하시는데 올 수 있겠냐는 말에 정중히 거절했다. 오디션 결과에 따라 센터 자리도 줄 수 있다는 말에 삐걱거리는 관절과 어색한 표정으로 멕시칸 멤버들과 노래하고 춤추는 내가 상상이 되어 또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루지 못한 아이돌의 꿈이지만 어쩐지 이룬 기분이군요.
하지만 어떤 꿈들은 그저 꿈일 때 아련하고 아름답지요.
그렇게 취직했던 회사는 몇 달 전 정리해고로 나오게 되었고, 아이돌 데뷔도 하지 못했지만 틱톡이 가져다준 여러 가지 경험과 기회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이제는 콘텐츠를 올리지 않지만 내 틱톡 계정은 아직도 살아있다.
혹시 모르지, 틱톡이 가져다 줄 행운이 아직 나에게 남았을지도.
2023년 6월 24일 카카오톡
[김ㅇㅇ] [12:41 PM] 누나 틱톡커에요??
[김ㅇㅇ] [12:41 PM] 누나 나왔음
[김ㅇㅇ] [12:41 PM] https://vm.tiktok.com/randomtiktok/
[소성일] [12:46 PM] 앗 나아니야
[김ㅇㅇ] [12:46 PM] Cap �
[김ㅇㅇ] [12:46 PM] 거짓말
[소성일] [12:50 PM] 아무도 모르니까 비밀로 해줘...
무한한 가능성의 틱톡,
그리고 최근 친한 지인에게 들켜 부끄러운 나.
015. 8만 틱톡커에서 취직, 그리고 데뷔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