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타서 집으로 가며 또 서러움이 복받쳤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서러웠고, 나만 이렇게 불행하고 힘든 것 같아 외로웠다. 울음을 꾹꾹 참으며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방금 소매치기당해서 휴대폰 뺏겼어요"
"그럼 지금 나한테 보이스톡 건 휴대폰은 뭐야?"
"다시 쫓아가서 찾아왔어요"
아빠가 또 껄껄껄 웃었다. 난 따라 웃지는 못하고 또 엉엉 울었다.
"너 휴대폰 구형 S5 아니야? 그냥 주지 그걸 왜 또 따라가~"
"그 안에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 있었단 말이에요"
아빠가 더 큰 소리로 껄껄껄 웃었다. 이번에는 나도 좀 배시시 웃음이 났다.
외국에 혼자 나가 사는 자식이 짠하기도 할 법한데 또 엉엉 울면서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 자식이라서 아빠는 껄껄껄 웃었을까?
아무리 큰 일이라도, 아무리 힘들고 불운한 일을 당해도, 내가 웃어넘겨버리면 그 일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게 우리 아빠다. 아빠가 이렇게 웃으면 내 맘도 모르고 웃는다고 속상하다가도 그 웃음에 맘이 탁 풀려버리고는 했다. 그렇게 같이 웃고 나면 분명 별거였던 일인데, 참 별게 아닌 게 되는게 참.
뭐하냐고 묻는 내 친구에게도 자총 지종을 설명하고 이제 버스 타고 집에 가고 있노라 말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안부 묻는 친구에게 이 모든 일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별 의미 없이 보낸 안부 문자인데, 지금 방금 막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심지어 쫓아가서 다시 받아왔다고?
물어봤다, 그때 그일 생각나냐고, 무슨 기분이었냐고
Epilogue. 02 그때 그 과제는
집으로 돌아와 사진 편집을 마치고 작가노트를 작성하고 밑에 멋들어지게 서명까지 한 후 과제를 제출했다. 뿌듯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제출했다. 지화자!
그다음 날 강의실에 도착하니 교수님께서 내 과제를 프로젝터로 띄우셨다.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제를 어려워했는데 이 과제를 잘 이해하고 제출한 학생이 있어서 예시로 보여주려고 띄웠어요"
그래 여기까진 좋았다
"이 사진들을 보면, 이 학생이 말하려고 했던 코스타리카의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 그 해결책에 대한 추구 방향이 명확히 보이죠. 작가노트도 아주 잘 썼어요"
그래 여기까지도 좋았다
"그나저나 소성일 학생. 아직 제출까지는 1주일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 제출했죠? 뭐 덕분에 좋은 예시를 보여줄 수 있어서 좋네요. 아주 잘했습니다"
"네? 어제까지 제출 아닌가요?"
"아니에요 제출은 다음 주까지 입니다"
제출이 다음 주까지 인 것을 알았다면 나는 쫓아가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맹목적으로 달리지 않았을텐데...
결국 그 과제는 그날 까지가 아니었고, 나는 교수님께 받은 칭찬에 기뻐하면서도 내가 대체 무엇을, 무엇을 위해 희생했느냐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여튼 그니까... 그게... 뭐 대충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