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는 책임감을 겸비하고 꼼꼼하고 한마디로 똑 부러진 아이였다.
엄마가 우산을 챙겨주지 않아도 거의 매일 우산을 들고 등교했던 때라 비가 갑자기 내려도 난감할 일은 없었다.
어느 여름날, 비 예보도 없이 시원한 소나기가 내렸다. 갑작스러운 비에 아이들은 신발가방, 책가방을 들쳐 매고 빗속을 뛰어 하교했고, 몇몇의 좋은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당연히 우리 엄마는 내가 우산이 있다는 걸 알아서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나처럼 엄마가 오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우산 없는 아이, 남들처럼 웃으면서 책가방을 들쳐 매고 뛰어가는 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 우리반 지체장애우. 친구혜진이가 서있었다.
난감해하며 신발을 갈아신고, 멍하니 비오는 것을 바라보고있었다.
왜 하필 그 친구가 내 앞에 있었던 것인지, 쏴하고 내리는 빗방울이 순시간에 웅덩이를 만들고 아스팔트는 축축하게 젖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혜진이를 보았다. 함께 하교를 하던 내 친구는 왜 안가냐며 가자고 나를 보챘다.
“먼저가. 나 좀 놓고 온게있어서.”
친구는 알겠다며 먼저 빗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남겨진 혜진이에게 다가갔다.
평소 말을 걸일이 없는 친구. 같은 반이지만 수업도 따로 듣는 장애를 가진아이.
먼저 다가갈 생각도 잘 하지 않았던 8살에 나.
그날은 말을 걸어야 했고, 우산을 같이 써야 할 것만 같았다.
우산없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혜진이. 그리고 우리는 같이 작은 노랑 우산을 쓰고, 학교 앞 신호등까지 걸어왔다. 천천히.
불편한 몸을 가진 혜진이를 위해 그친구의 발걸음에 맞게 천천히 걸었다. 혜진이에게 무슨말을 걸어야 할까,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처음 제대로 둘이 되어본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는 천천히 멈추었고, 소나기는 짧게 끝이났다.
혜진이의 집이 어디인지 여쭤보아도 쉽게 답하지 않아 당황하고 있던 찰나에 비가 그쳐 다행이었다.
우리는 학교앞 신호등 앞에 섰다.
신호등 건너편에는 검은 우산과 분홍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어른이 서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다 집에 간 상황.
늦은 어른의 우산이었다. 어른은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혜진이를 보있던 것 같다. 그녀는 신호가 바뀌자 마자 급하게 뛰어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혜진이와 같이 우산을 쓰고 온거냐며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나는 어색하고, 머쩍였다.
잠깐 같이 우산을 쓴건데? 왜 저렇게까지 고마워하시지. 이상하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어벙벙한 나와 혜진이를 데리고 근처 슈퍼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먹고싶은걸 고르라며 아줌마가 모든 사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고, 괜찮아요. 하고 집에 가려던 나를 그녀는 끝까지 붙잡았다.
그녀는 몇개의 과자를 집어 계산을 하더니, 내손에 쥐어주며 고맙다며 또 이야기했다.
어린 마음에 웅덩이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처음이었는데, 처음 혜진이에게 말을 건낸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