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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할아버지

귤귤

by 핸드스피크

손주가 태어나서부터 장성한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모든 성장 과정을 지켜본 할머니, 할아버지는 분명 흔치 않을 것이다. 이는 삼대가 함께 다세대 주택에 산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1994년부터 1층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2층에는 아빠, 엄마, 나, 남동생이 살았는데, 이 흔치 않은 형태는 약 30년 정도 지속되다 나와 동생의 결혼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첫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자마자 바로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금연 중이다. 그는 할머니에게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대뜸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 있는 모든 담배를 아까워하지 않고 반으로 뚝 가르고는 휴지통에 버렸다. 할머니는 그러한 박력을 지금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결단이 있는 참 멋있는 남편이라고 덧붙이면서. 할아버지는 다섯 형제를 키우기 위해 똥 푸는 일부터 온갖 궂은일을 찾아 일했다. 담배가 생각나는 순간에도 토끼 같은 자식들 얼굴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청년 시절부터 고된 일을 한 탓으로 성하지 않았던 몸은 결국 중년기부터 탈이 나기 시작하여 허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여러 번 했다. 노년기를 지나는 지금은 집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남동생을 낳았을 때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그 사실이 자라오는 내내 괜히 서운했다. 이렇게 나를 예뻐하면서 왜 내가 태어난 날 병원에 오시지도 않은 거람! 은연중에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나의 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무거운 짐을 들며 여자도 힘이 세다며 힘 자랑을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멋진 각종 상을 받는 날이면 바로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려가 늠름하게 뽐내기도 했다. 할아버지, 어때요? 손녀딸도 참 대단하지요? 라는 은근슬쩍한 말도 항상 덧붙이면서. 그럼 할아버지는 세상 호탕한 웃음으로 껄껄 웃으며 나를 한숨에 안고는 내 볼에 얼굴을 비비곤 했다. 그럼 나는 턱에서 목까지 거칠고 두껍게 난 그의 수염을 느끼면서, 그의 숨결에서 은단 냄새를 맡으면서 버티다가 꺄-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곤 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 머리에 뽀뽀를 하는 것을 즐기게 됐다. 강력한 탈모 유전자로 머리가 다 빠져버린 할아버지의 매끈한 두상에 입술이 닿는 감촉이 좋았다. 처음에 질색하던 할아버지도 이제 내심은 기대하는 모양이다. 이 탈모 유전자는 예외 없이 다섯 형제에게도 모두 적용되었으며, 현재 진행형 중이다. 그러나 다섯 형제를 포함한 모든 탈모인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을 칭하라면 감히 할아버지를 꼽을 수 있겠다. 할아버지는 진한 쌍꺼풀과 높은 콧대, 크고 시원한 입매를 소유하여 가히 서구형 외모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동양적 미가 가득한 귀여운 할머니와 결혼했다. 아랍상은 두부상을 좋아한다는 가설이 여기서도 입증이 됐다.


할아버지는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은 후, 7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역까지 간 다음, 역 근처에 주차하고 지팡이를 짚고 양평역까지 전철로 간다. 양평역에 도착하면 주변을 아주 천천히 산책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할아버지의 오전 운동 루틴이다. 종종 할아버지가 운동가는 길과 나의 출근길이 겹치곤 하는데, 나는 항상 할아버지를 만나면 같이 가자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행여나 내가 출근길에 늦을까 먼저 가라며 손짓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처 출근길에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옆으로 나타났다. 전동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는 당신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당황한 나는 할아버지가 힘들 것 같아 한사코 거절했다. 내 허벅지가 할아버지 허벅지보다 2배 정도 더 두꺼웠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깃털처럼 가벼운 손녀가 아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출근길에 늦으면 안 되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보다 2배로 큰 허벅지를 가진 나는 차마 할아버지 무릎에 앉을 수 없어 스쿼트 자세를 유지하며 갔다. 다 큰 30대 초반의 어른이 80대 후반의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타고 가는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행복했다. 어찌나 힘을 줬던지 근육통은 이틀 정도 갔다. 한 번 더 기회가 생기면 또 태워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할아버지 무릎에 앉는 일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치매를 판정받으면서 안전 상의 문제로 더이상 전동 휠체어를 탈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자꾸 했던 말을 반복하고, 길을 잃는 날이 많아지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할아버지의 치매를 계속해서 부정하고 싶었다. 요즘 할아버지는 나를 볼 때면 “밥 먹었어? 여보. 우리 손녀 밥 줘야지.” 라는 말만 반복한다. 이미 먹었다고 하면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오란다 봉지를 들고 온다. 행여나 내가 배고플까 주전부리라도 챙겨주려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제 나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왜 요즘 손녀가 안 보이느냐며 나의 행방을 묻는다. 할머니에게서 전해 들으면서 나는 목구멍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애써 참는다.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인데, 당신의 늙음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마음이 아프다. 제발 할아버지가 천천히 기억을 잃어가기를. 힘들고 슬펐던 기억부터 먼저 잃어가기를. 행복한 기억만 안고 살아가기를.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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