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릿
잠 못 이루는 밤은 어찌나 길던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문득 메모장을 열어봤다. 검색창에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했다.
슬|
슬픔|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되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몇 년 전에 간간이 쓴 것들이었다. 그 시절 내가 어떤 마음으로 꾹꾹 눌러 담았을지 궁금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한 줄 한 줄을 읽어 내려갔다.
[당신이 무심코 저지른 행동으로 이렇게 된 건데 왜 당신이 아닌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네요.]
2015.09.08. 00:13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관자놀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거의 10년 전 한밤중에 쓴 글이었다. 그 당신을 가리키는 대상이 누군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를 향한 내 원망과 억울함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글도 있었다. 어린왕자의 한 구절도 보였다.
[하지만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2015.03.30. 02:00
이때는 책임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였나 보다. 그 아래에 [충분히 했다]라는 다섯 글자가 있었다. 할 만큼 다 했는데 알아주지 못한 것이 답답해서 썼던 걸까. 목 안의 소리로 ‘그래, 넌 충분히 했어.’하고 중얼거리면서 화면을 쓸어내렸다.
[자유란 자신을 책임지는 의지다.]라는 문장 앞에 잠시 멈칫했다. ‘웬 자유지?’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감이 오지 않아서 다음 장으로 넘겼다.
[요근래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건강한 까칠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진 순간들로 가득찼던. 그간 나를 괴롭혔던 감정의 찌꺼기들. 안녕할 수 있을까?]
2015.12.31. 23:36
새해를 맞이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나와 마주했다.
[검정색 심을 품고 있는 빨간 볼펜이 제일 싫어. 거기에다 더 증오해.]
2016.04.08. 22:47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만나 마음고생했던 때의 나도 있었다. 그렇다고 왜 하필 볼펜으로 비유했을까. 참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며 썩 쓸어내렸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심지어 내 몸과 마음까지 갈아먹힐 것만 같다.]
2017.05.11. 01:23
순간 눈앞이 새하얘진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어라? 지금도 가끔 그러는데… 이건 아마도 나의 디폴트값인가 보다.’
내 메모들은 원망에서 책임으로, 그리고 자기 방어를 위한 까침함으로 변해갔다. 마지막 메모에 이르러서는 내면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의 색깔도 변해갔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밤의 고요함 속에서 나와 마주하는 슬픔이었다.
시간은 참 묘하다. 그때는 그토록 무겁게 느껴졌던 슬픔이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슬픔이 유통기한을 넘기면 쓸쓸함으로 변질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이제는 그때의 슬픔까지도 다 잊었는데 왜 마음 한켠이 이토록 헛헛한지. 아마 슬픔이 시간 속에 녹아 쓸쓸함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핸드폰을 돌려 희미한 불빛에 캄캄한 방 안을 비췄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이미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질세라 메신저도 열어보았다. 올해는 또 어떤 슬픔들이 있었을까.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스노보드를 들고,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케이블카 문이 열리자 유난히 눈보라가 몰아쳤다. 고글 안에 하얀 눈들이 들어가고 입에서 나오는 김과 뒤섞여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정상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힘겹게 내려오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수십 번도 넘게 넘어봤지만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꼬리뼈에 금이 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더욱 낙담했다. 딱히 치료 방법도 없어 진통제를 먹으며 뼈가 붙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찌릿찌릿한 통증을 함께하는 일상과 생각보다 긴 회복 기간이 나를 슬프게 했다.
수영도 떠올랐다. 정부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동 강좌 수강료를 지원한다는 소식에 친구 셋과 함께 수영을 시작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웠던 나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모두 할 줄 알았다. 첫날 테스트 차 한번 해보라는 강사님의 말씀에 나는 세 번째 레인, 나머지 친구 셋은 첫 번째 레인으로 나누어졌다. 초급과 중급으로 레벨이 나뉘어진 것이었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다른 반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슬펐는지 한 달 뒤에 레벨 테스트에서는 일부러 못한 척해 친구들과 함께 첫 번째 레인으로 배정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넷의 수영 시간은 특별했다. 퇴근 후의 시간을 채우던 물살을 가르는 느낌, 젖은 머리칼로 함께 나누던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으로 1년을 채웠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생일을 챙기며 스포츠센터 근처 케이크집에서 케이크를 주문했다. 수영장 탈의실에서 젖은 머리를 털며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던 순간들이 쌓여갔다. 올해도 당연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영 열풍 때문이었을까. 정원이 순식간에 차버렸고, 우리 넷은 각자 다른 강좌로 흩어져야 했다. 누구는 수영을, 누구는 요가를 하게 되었다. 남들이 스쳐 지나갈 법한 순간에서도 늘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길 좋아하던 친구가 문득 케이크 가게 사장님을 떠올리며 “이제 우리가 주문하러 안 가면 사장님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다. 한마음으로 작년을 그리워하며 슬퍼했었다.
결혼을 앞두고 장만한 자동차에 얽힌 여러 가지 감정들도 있었다. 가족보험에서 내 이름을 빼던 날 엄마는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스멀거렸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네 자리가 우리 집에서 비워지는 시발점인 것 같아 슬프다.” 그리고 출고된 지 열흘 뒤 연인은 미세먼지 때문에 금세 더러워진 차를 보며 슬퍼했다. 같은 지점에서 각자 이렇게 다른 슬픔을 느끼는구나. 퍼스널컬러를 받은 친구는 볼드하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포기해야 한다며 슬퍼했다.
쓸쓸해진 슬픔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슬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몇 년 전의 나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 책임, 자유에 대해 밤낮으로 고민하며 무거운 슬픔을 안고 살았다. 그 슬픔은 시간이 흘러 쓸쓸함이 되었고, 지금은 뱃살처럼 묵직하게 남아있다. 분명 똑같은 마음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점점 불어난 쓸쓸함이 마치 작아진 바지를 입었을 때 느끼는 압박감처럼 나를 옥죄어온다. 무심코 스치기만 해도 아릿한 자국이 남는 그런 존재로.
반면 올해의 슬픔들은 조금 다르다. 꼬리뼈의 통증처럼 진득하게 오래 가는 슬픔도 있었고, 함께하던 추억을 잃어버린 것처럼 아련한 슬픔도 있었다. 엄마의 공허함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하면 새 차가 얼마 안 가 더러워진 게 못내 섭섭한 것처럼 금세 씻어낼 수 있는 슬픔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슬퍼한다. 누군가에겐 화려한 액세서리를 포기하는 것이 슬픔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케이크 가게 사장님의 마음을 걱정하는 것이 슬픔이 된다. 어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고, 어떤 슬픔은 쓸쓸함이 되어 남는다. 그리고 또 어떤 슬픔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디폴트값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들여다보니 슬픔이란 게 참 신기하다. 무거운 슬픔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가벼운 슬픔이 깊어지기도 한다. 쓸쓸함이 되어버린 슬픔들 사이로 새로운 슬픔들이 끊임없이 자리를 채워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