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릿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을 하다가 예고 없이 모니터 속의 글자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에 잡아먹혔다. 책상 위에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자주 있는 일인 듯 옷소매로 남몰래 닦고 서랍 안에 있던 안경집을 꺼냈다. 힘겹게 안경집을 열고, 얇은 뿔테안경을 꺼내 쓰며 빨개진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또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의 품속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때 그 기억이 내게 무력감을 처음 안겼고, 이후 지독히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집단생활에서 빈번히 무력감을 느꼈고, 내 삶은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나무 블록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 같았다.
차차가 울산에서 이직하여 상경한 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이날에도 한창 짙은 무력감을 감추며 애써 미소를 띤 얼굴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었다. 그때 차차가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혹등고래는 산란하기 위해 매년 12월에서 3월 사이에 북쪽에서 따뜻한 바다를 찾아 내려온다고 했다. 이 시기에만 오키나와 바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고래를 보러 갈 거라는 차차의 말에 꺼져가는 것만 같았던 불씨가 나도 모르게 살아났다.
그날 밤 나는 뭔가에 홀리듯 항공권을 질러버렸다. 이게 올해 나의 첫 용기이자 살고자 하는 의지였다.
오키나와에 있는 나하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인 한인 다이빙샵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자마자 천장에 달린 거대한 파란 서프보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보드 안에는 ‘보여 드리고 싶은 바다가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어떤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걸까?’, ‘그 바다가 어떤 세상일까?’, '그런데 내가 보고 싶은 바다는 또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순간, 강사님의 설명이 시작되어 내 생각을 끊었다.
혹등고래를 관찰하는 데에는 많은 수칙이 있었다. 수면에서만 고래를 관찰할 수 있었고, 고래가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수면에서 첨벙첨벙 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골반이 아닌 배 쪽에 무게추를 차서 핀을 아래로 잠기게 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고래를 찾을 때마다 빠른 입,출수를 반복해야 해서 기다란 핀을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스쿠버 다이빙도 불가능했다. 고래를 보호하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 속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게 묵직한 책임감을 안겼다.
혹등고래를 보는 여정은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했다. 많은 보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에 모였다. 날씨가 제법 흐렸고, 약한 빗줄기가 떨어졌다. 빗방울이 바다 위에 떨어지며 원형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배가 출발하여 수평선을 향해 무한히 흔들렸다. 생전 멀미약을 먹어본 적 없었던 나는 흐린 날씨처럼 내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멀미가 나는 건지, 피로감에 못 이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녹슨 의자 위에 누워 출렁임과 함께 잠들어 버렸다.
수십 분 정도 흘렀을까? 배는 여전히 출렁이고 있었지만 내 정신은 도리어 맑아졌다. 좌우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어느덧 기어가듯이 보트 후미로 이동했다. 그러자 사방으로 탁 트인 수평선 가운데 흐릿한 무지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2층에 있는 강사님과 까만 방풍 재킷을 입은 현지 스태프들도 보였다. 그들은 모아이 석상과 같은 모습으로 제각각 역할을 나눠 동서남북으로 파도가 들썩이고 있는 바다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성체 고래는 한 번 입수하면 30분 넘게 수면에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고래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10~15분마다 숨을 내쉬러 올라오는 아기 고래를 찾는다고 했다. 선장님도 한마음으로 숨을 내뿜는 아기 고래를 찾아다니며 배를 운행했다.
고래를 찾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 사이에 한 스태프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며 외치는 듯했다. 보트가 갑자기 우우웅-거리면서 가리킨 방향으로 돌진했다. 사람들이 뱃머리로 몰려들었다. 누구는 액션캠을 들고, 누구는 핸드폰을 들고, 누구는 더 잘 보이려고 양손을 망원경처럼 만들어 눈앞에 댄 채 한쪽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 속에서 유독 다른 형체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바로 아기 고래가 숨을 내쉴 때 분출되는 물보라였다.
하지만 더는 그쪽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거기는 보존 구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볼 수 없어 아쉬워하던 참에 저 멀리서 고래가 꼬리를 물 위로 높이 들어 올린 후 힘차게 내려쳐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고래의 역동적인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들리지 않는 환호가 보였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살짝 탄성을 내질렀다. ’와…’ 많은 사람의 탄성을 뒤로하고 선장님은 방향을 틀었다.
얼마 안 가 다른 숨결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엔진을 끄고 조용히 접근하는 동안 뱃머리에 있던 사람들이 후미 쪽으로 신속히 움직였다. 벨트의 양옆에 각각 1kg의 납이 달린 것을 허리에 매고 발을 보호하는 삭스를 신고 그 위에 오리발을 꼈다.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 스노클까지 채웠다. 마치 군대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모든 사람이 일제히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는 순식간에 입수할 준비를 마쳤다. 배 앞쪽에서 한 고래가 바다 위로 몸 전체를 힘차게 뛰어오르자, 강사님의 신호에 맞춰 차례대로 은밀하게 재빠르게 물에 진입했다. 고래가 입수하는 소리에 놀라서 도망가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입수하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남색같이 시커먼 바닷속 모습에 깊고 넓은 어둠에 잠기듯 절로 숙연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래만 멍하니 바라보던 중에 문득 하얀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게 처음에는 모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스태프가 내 팔을 잡아당기자, 시선이 수면 위로 돌아갔다. 그때 코앞에 지나간 아기 고래가 유유히 유영하며 숨을 몇 번 내뿜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갔고, 수면에 둥둥 뜨고 있던 나는 아기 고래의 움직임에 따라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래로 쭉 내려가던 시선을 멈췄을 때 모래가 아닌 엄마 고래였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와 아기 고래가 함께 바닷속에 머무는 모습이 너무 경이로웠다. 아기 고래는 사람보다 약 2배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고, 엄마 고래는 아기 고래보다 5배 크게 보였다. 그들이 동시에 올라와 숨을 내쉬더니 반대쪽으로 헤엄치며 힘차게 흔드는 거대한 꼬리들의 움직임에 깊이 매료되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우울함이 다시 찾아왔지만, 나의 눈에는 고래의 거대한 꼬리가 물을 때려내며 만들어내는 물보라의 잔상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에 두 번째 용기가 생겼다. 자연 속에서 말이 필요 없는 조용한 순간에 고래와 서로 마주치고 있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도 한 생명체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듀공을 보러 필리핀 코론 섬으로 떠나는 것에서 내가 숨 쉬고자 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에 힘입어 필리핀으로 가는 항공권도 샀다. 듀공과 만나 함께 유영할 때까지만 아무리 무기력하게 지내더라도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의지로 숨결을 내뿜었다는 사실에 안심되었으나 머지않아 다시 슬퍼졌다. 나는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달력을 보며 남은 날짜를 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