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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죄책감 속의 구원

빵호

by 핸드스피크

“촤아아악 !”


얼굴 앞으로 물 한 바가지가 뿌려졌다. 할머니가 뜻 모를 말을 외치며 뿌린 물은 얼굴에 수많은 화살이 쏘인 듯 따가웠다. 아득하게 의식이 깨어난 내 머릿속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 앞에 보이는 상황 정보를 빠르게 수집했다. 여기는 습기가 폴폴 나는 목욕탕 안의 열탕 근처. 안경을 두고 와서 안 좋은 시력과 내부 습기로 인해 뿌연 시야 속으로 보이는 바로 앞에서 쓰러진 할머니. 나는 서 있었고, 나와 할머니 주변으로 여자들이 하나 둘 모여서 쓰러진 할머니를 살피고 있었다. 내게 물 뿌린 할머니는 나에게 계속해서 뭐라고 소리질렀다. 보청기는 방수가 되지 않아 사물함에 두고 온 나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 하는거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 순간, 내 몸이 확 뒤로 당겨졌다. 나를 뒤로 하고 앞에 선 신체는 엄마였다. 안 좋은 시력으로도 엄마의 축축하게 젖은 뒷통수는 익숙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를 두고 어딘가에 갔다왔던 엄마는 그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무슨 일인지 파악하는 듯 했다. 사람들은 모두 쓰러진 할머니를 향해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엄마는 그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내 앞에 철썩 붙어있었다. 남다른 발육을 자랑했던 나는 그 때 이미 엄마의 키를 넘어선 상태였고 엄마의 머리 너머로 다 볼 수 있었지만 그녀의 작은 몸 뒤에서 정체불명의 혼란과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도 내 탓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일어나기 몇 분 전, 나는 열탕 밖에서 앉아 쉬고 있었다. 정면을 보고 있던 나는 왼쪽 눈 끄트머리에 무언가 걸려서 그 곳을 보았다. 한 할머니가 열탕에서 나와서 바닥에 두 발을 짚은 순간 갑자기 고꾸라졌다. 뿌연 시각으로 할머니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입모양도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고 있는거지? 할머니가 왜 수그리고 앉아있지? 혹시 어디가 아프신가? 아닌가? 말을 걸어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이 때 나는 15살이었다. 15년 내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는 상황을 목격하지 못했었다. 급작스러운 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혼란스러운 머리 속이 암전이 되었다. 일순간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열탕 속에 있던 할머니가 그런 나를 보고 물을 뿌렸다. 정신이 깨어나고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불꽃같이 형형한 눈빛이었다. 성난 눈으로 내게 외치는 할머니를 두고 엄마가 달려와 내 앞에 선 것이다.


아아, 물 뿌린 할머니는 내가 쓰러진 할머니를 방치하고 지켜보기만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들리지 않아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그 할머니와 소리 치고 싸우는 듯 했다. 나를 번갈아보며 상황 파악이 끝난 듯한 엄마는 내 앞을 여전히 지키고 선 그대로 사람들이 쓰러진 할머니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고, 정신을 차린 그에게 상태가 괜찮은지 묻고는 쓰러진 할머니가 목욕탕 밖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뒤에야 나를 이끌고 샤워를 하고 목욕탕을 나왔다. 탈의실에서 환복하고 집에 가는 내내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일전의 상황으로 일시적인 공황에 빠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매주 목욕탕에 갔었는데, 그 후로 나는 몇 개월동안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리라. 우리는 마치 약속한 것처럼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이 생긴 지 며칠 후, 엄마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엄마가 말했다.


“딸, 그 때, 목욕탕에서 할머니에게 뭔가 했니? 넌 왜 그렇게 서 있었어?”

“엄마,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진짜야. 사실 그 때 무슨 일인지 몰랐어서 뭘 해야할지 몰랐어.....지금 생각해보면 들리지 않아서,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 같아...”


그동안 막혀있던 둑이 탁 터지고 흘러내리는 것처럼 급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는, 그 당시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정보 부재의 현장 속에서 더욱 크게 느꼈을 나의 공포를 이해한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어주었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네가 했든 하지 않았든 먼저 그 사람이 어디를 다쳤는지, 괜찮은지 상태를 확인해야 해. 그 후에 판단을 해도 늦지 않아.”


엄마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는 그 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때 목욕탕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침잠하여 알 수 없는 엄마의 표정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엄마는 내게 다시 사건에 대해 말하기까지 몇 일동안 무슨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을지 차마 가늠할 수 없지만, 딸의 마음을 최대한 보호하며 어떻게 말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으리라.


돌발적인 위기상황에서 상황 파악을 하느라 신체가 정지되는 나의 공황은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이래로 가져온 고질병같은 버릇이었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지는 어디론가 숨어버린 채. 그러나 나는 그 대화를 기점으로 이 버릇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 동기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 비춰진 ‘눈 앞에 쓰러진 할머니를 방치한 상도덕도 없는 딸로 키운’ 엄마, 그리고 ‘다 컸으면서도 알맹이는 어리숙한 딸을 사회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시켜야 하는’ 엄마가 되게 한 것, 결국 엄마가 불필요한 오해를 받게 하고 겪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하게 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후로 무슨 일이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게 되었다. 들을 수 없어서 판단력이 마비되는 고비가 와도 애써 신경 쓰지 않고, 장애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피해의식과 병적 무력감을 누르고, 일단 몸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옳다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했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할아버지를 보았을 때도 일단 부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119 전화를 요청했다. 지하철 역사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 알 수 없는 내용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바로 근처 직원을 찾아가 내가 청각장애인이어서 알아들을 수 없음을 설명하고 같이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행동하는 대신 들리지 않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은 주변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기꺼이 도움을 받으며 나아갔다. 또한 지인이든 동료든 누군가와 다툼이 발생하면 진실은 뒤로 하고 지인의 편에 서서 저항함으로써 그를 일단 보호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어 도움이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 속에서 어릴 때의 목욕탕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눈 앞에 엄마의 축축하게 젖은 뒷통수가 보였으므로, 나를 잡고 자신의 뒤에 두었던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으므로, 엄마가 내 말을 믿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들을 구원으로 여기고 응원의 손길로 삼아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손과 발을 떼고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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