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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빵호

by 핸드스피크

나는 예로부터 친구들의 꼬심에 잘 넘어가는 편이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흔쾌히 수락하는 오케이맨이었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최근 유행이 일어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경험했지만 나만 경험하지 않은 이 것. 지난 몇 년간 친구 용이가 끈질기게 유혹해오고, 실력자인 보노와 신도 한 번씩 거들었지만 결코 함락당하지 않았던 나의 마지막 철옹성은 ‘프리다이빙’에 대한 저항심이었다.


프리다이빙이란 무엇인가, 맨몸으로 깊은 바닷속까지 긴 호흡으로 유영하는 활동이다. 수면 위에서 들이마신 단 하나의 숨으로 수심을 타고 잠수하기 때문에 안정된 호흡을 위한 멘탈훈련이 요구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그런 내게 아무 산소통도 없이 내 폐활량만을 믿고 수영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내 몸을 믿을 수 없었으므로 친구들의 장기적인 유혹에도 폭풍우가 쏟아지는 제주 날씨 속에서 땅을 지키고 서있는 돌하르방처럼 굳건히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란 없다. 물을 무서워했던 나는 수영을 배우면서 물에 몸을 띄울 수 있게 되었고, 보노, 신, 용이와 함께 떠난 발리에서 바다로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물에 대한 공포가 여즉 남아있던 나는 이마저도 보노에게 빌린 스노쿨링 마스크로 수면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연습을 통해 체득했고, 근처 가게에서 오리발을 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노와 둘이 출발하여 스노쿨링 마스크와 오리발로도 충분히 바다를 수영할 수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신체적 자유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잊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몸을 휘감는 차가운 바닷물과 얼굴을 감싸는 햇빛, 그리고 물 속으로 보이는 파란색 모래와 간간이 보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


한참 깊은 지점으로 갈 무렵, 내 발에서 한 오리발이 빠졌다. 신을 때도 불안하게 크더라니, 물이 들어가 기어코 빠져버렸다. 순식간에 패닉에 빠져 나는 보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내 입 속으로 물이 들어오며 호흡이 망가졌다. 눈 앞으로 물이 출렁거리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 급급했으며, 허둥대는 내 팔다리를 조종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보노가 강력한 아귀힘으로 내 팔을 잡았다. 늘상 차분한 성격에 가녀린 몸에서 나올 수 없는 막강한 악력으로 내 정신을 일깨웠다. 보노의 손이 말하고 있었다.


‘몸에서 힘을 빼고 일자로 물에 뜨도록 해봐. 호스를 위로 올리고. 우선 천천히 호흡을 돌리는게 중요해.’


망망대해에서 믿을 사람은 보노 뿐이란 생각이 번쩍 들은 나는 그의 말에 따랐다. 수면에 둥둥 떠다니고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보노가 잃어버린 오리발을 탐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뒤이어 어떤 다이버가 불쑥 나타나 내 오리발을 어디선가 찾아와 발에 끼워주었다. 아, 비로소 몸과 마음까지도 생존한 것이었다!


나는 이 날의 경험을 계기로 프리다이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공황에 빠진 내게 사정없이 머리통과 어깨를 잡힌 보노가 불쌍하고 미안해서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친구들과 그 아름다운 바닷 속을 더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려면 폐를 끼치지 않도록 나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용이와 함께 프리다이빙 입문자 코스 수강권을 끊었다. 입문자 코스는 수업과 함께 테스트를 통과하면 초보자 레벨1부터 레벨2까지 수료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특별한 호흡법과 귓속의 압력을 조절해주는 이퀄라이징을 배웠고, 오래 숨을 참는 테스트와 40M 길이를 수평잠영하는 테스트를 겨우 통과했다. 가장 어렵다는 이퀄라이징보다도 호흡충동에 시달리는 것이 나의 큰 고민이었다. 짧은 편인 5M 수심만 내려가도 숨이 턱턱 막히고 목이 좁아지면서 호흡을 하고 싶은 충동이 세게 들었다. 마지막 테스트인 수심 15M 수직 잠영과 구조 테스트를 앞두고 나는 스스로 숨을 참고 내쉬며 숨을 길게 가져가는 연습에 매진했다.


드디어 마지막 수업일이 왔다. 복수를 위해 검투사로서 경기에 나가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처럼 결연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수면에서 호흡을 골랐다. 이윽고 줄을 잡고 천천히 물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5M에서부터 또다시 호흡충동이 왔다. 이퀄라이징이 익숙하지 않아 온몸을 쓰며 기쓰고 하다보니 금세 남은 숨이 부족한 느낌이 온 것이다. 숨이 부족하니 갑자기 깊은 물속이 차갑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고픈 충동이 거세게 들었다. 그 때 함께 내려온 강사의 얼굴을 보고 조금 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숨이 부족한 것 같아도 우리 몸은 알고 보면 항상 숨이 남아있어요. 진짜 숨이 부족한 사람은 몸짓부터 다릅니다. 지금 느끼는 기분은 가짜 호흡충동이예요. 우리 몸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되면 제가 구해줄테니 마음을 릴렉스해보세요.’


나는 왜 이렇게 물과 친해지기 어려울까? 한 손에 한 움큼씩 줄을 잡고 내려가며 과거를 유영해보았다. 여섯 살에 계곡에서 물 장난하다가 미끄러져서 허우적대던 나를 친오빠가 건져주었다. 오빠에 의해 일어섰을 때 고작 가슴까지 오는 물 높이였다. 그 바람에 오빠가 아끼던 슬리퍼 한 짝이 센 물에 흘러가버렸다. 상심한 오빠는 나와 등 돌리고 라면을 먹었다. 나는 그 정도의 물 높이에서 괜히 장난쳐서 슬리퍼를 잃어버리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현재로 돌아와 다시 다른 쪽 팔로 줄을 잡았다. 이번에는 스물 세살, 함께 놀러간 숙소 수영장에서 친구들이 수영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수영장 근처에 앉은 내 종아리에는 물이 참방거렸다. 몇 년 후 처음으로 수영을 배울 때도 호흡이 쉽지 않아 중간에 멈춰서곤 했다. 항상 문제는 부족한 자세와 기술이 아니라 조급한 마음가짐이었다.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은 공포감,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무력감.


이번에야말로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참아내리라. 터질 것 같은 얼굴과 가슴을 부여잡고 줄을 잡고 깊게 내려갔다. 숨을 귓속까지 제대로 밀어넣지 못한 탓에 귀에서도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잡던 손을 멈추고 이퀄라이징을 하며 내려가고를 반복하다가 끝내 찢어질 듯한 귀의 통증에 도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코앞에 수심 15M를 표시한 노란색 캔디볼이 있었는데! 몇 번 더 손을 옮기면 갈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에 눈물이 울컥 올라올 것 같았다. 이퀄라이징을 하며 코를 세게 움켜잡느라 벌어진 마스크의 틈 사이로 참방거리는 물이 꼭 나의 넘쳐흐르는 눈물인 것만 같았다.


물 위로 올라와 회복호흡을 하는 내게 강사가 말했다. 9M예요! 최고 기록이예요! 대단하세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찔해졌다. 이미 몇회차 시도였다. 나는 더 이상 해낼 기력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심신이 지쳤다. 그렇게 마지막 수업은 막을 내렸다.


그래도 배움은 헛되지 않는다는 듯이, 이후로도 바다에 여러 번 가며 매끄럽게 물 속을 가를 줄 알았다. 수업을 받았던 다이빙풀보다는 얕은 깊이였지만 적어도 발이 닿지 않는 바다 속에서 더 이상 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내 몸을 침착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하루를 살다가 가끔씩 다이빙풀에서 보았던 15M를 가리키는 노란색 캔디볼이 아른거렸다. 오빠가 잃어버린 슬리퍼 한 짝이, 종아리를 감싸고 흐르던 수영장 물이, 잃어버릴 뻔한 오리발 하나가 눈 앞에 밟혔다. 도달하지 못한 마지막 단계가 아쉬웠다. 그것을 이뤘을 때의 성취감이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비로소 프리다이빙에 대한 못다한 열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핸드폰 액정을 켜서 다음 달 강사님 스케쥴을 훑어보았다. 내가 헤엄쳐온 바다보다 더 깊은 수심 속으로, 다시 한번 더,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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