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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와 함께 살고 있다

넴릿

by 핸드스피크

남편 준이와 소파에 나란히 누워 TV를 보던 어느 주말 낮이었다. 나란히라고 해도 머리를 같은 방향으로 둔 건 아니다. 우리는 둘 다 농인이라 TV를 볼 때 소리보다 자막이나 화면을 또렷이 보는 게 중요하다. 같은 방향으로 누우면 한쪽에서 화면이 잘 안 보일 때가 있어 자연스럽게 거꾸로 눕게 되었다. 나는 소파 왼쪽 끝에 머리를 두고, 준이는 오른쪽 끝에 머리를 댔다. 발끝이 가운데서 맞닿은 채, 우리는 발을 꼼지락대며 나란히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에서 중요한 장면이 지나가던 중, 갑자기 뭔가 요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 싶었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살짝 들고 준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눈썹 하나도 꿈틀대지 않고 눈동자마저 고정된 채 화면만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 큰소리를 내도, 트림을 해도, 방귀를 뀌어도, 막 자지러지게 웃어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연애 7년, 그리고 결혼하고 함께 산 지 1년 남짓. 그렇게 오래 지냈어도 여전히 서로가 언제, 얼마나 화려하게 방귀를 뀌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차 안에서 바짝 붙어 앉아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맡은 이 냄새는 길가의 소똥 냄새인지, 아니면 준이의 소행인지 늘 헷갈렸다. 그저 의심만 쌓여갈 뿐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번에도 증거 불충분’이라며 사건은 조용히 종결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강력한 증거는 있었다. 냄새는 분명했고, 결정적으로 선풍기 바람을 타고 내 코를 정통으로 찔렀다. 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주춤했지만 끝내 내 발끝으로 준이의 발을 톡톡 쳐서 그를 불렀다. 그리고 말없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몇 초간 그를 바라봤다. 그도 조용히 나를 마주 봤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자 준이의 오른쪽 콧구멍이 위로 봉긋 솟듯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나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서 확신했다. 이건 빼박 준이 엉덩이에서 나온 냄새라는 걸.


“그대 맞지?”

“응? 뭐가?”

“모른 척하기는! 맞잖아.”

“…..”

“선풍기 바람 타고 나한테 왔거든!?”


나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손은 ‘으으, 냄새!’ 하듯 휘적였다. 준이는 벌떡 일어나 머쓱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괜히 사랑스러워서 나도 씨익 웃었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청인이었다면 이런 재미, 몰랐겠지. 우리는 이런 특별한 재미를 알기에 더 크게 웃을 수 있다. 방귀 하나에도 진범을 밝혀내려는 추리극이 되고, 결국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으로 끝나기도 한다. 가끔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쪽이 발끈하는 해프닝도 있다. 웃느라 고개를 젖히며 손으로 ‘아니라고!’를 외치는 모습까지.


가끔은 이런 순간도 있다. 아침마다 나는 천장의 등을 켜지 않은 채 조용히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런데도 내 옆 침대에 누운 준이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곤히 자고 있다. 잠옷은 가슴팍까지 말려 올라가 있고, 다리는 ‘4’자 모양으로 기묘하게 펼쳐져 있다. 암막 커튼만 잘 쳐두면 출근 시간이 달라도 서로의 단잠을 방해할 일도 없다. 마치 세상 전체를 노이즈 캔슬링 모드로 돌려놓은 것처럼. 총성이 터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처럼 자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고도 귀엽다. 이 고요한 아침 풍경도 어쩌면 우리가 농인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일지 모른다.


가끔은 다투기도 한다. 손으로 말하는 우리에겐 대화가 곧 몸짓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손동작은 거칠어지고, 표정은 눈 깜짝할 새에 달라진다. 그렇게 몸 전체로 언성을 높이다가도 어느 순간 누군가 자리를 휙 피하면 그게 곧 냉전의 신호다. 준이는 컴퓨터 앞에 앉고, 나는 싱크대 앞에 선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워도 마음은 서로 아주 멀리 떨어진 듯한 거리. 우리는 그렇게 잠시 떨어져 숨을 고른다. 그날도 그랬다. 싱크대 앞에 서서 그릇을 씻으며 마음속 말들이 점점 부풀었다.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는 말들. 하지만 그 순간, 준이가 있는 방으로 가고 싶진 않았다.


대신 눈앞의 작은 창문을 바라봤다. 건너편엔 큼지막한 아파트가 서 있고, 그 아래로 누군가는 느릿하게 걸어가고, 간간이 자동차가 지났다. 일상의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소리를 내려면 목 안을 긁는 듯한 느낌이 필요했다. 그래서 목을 긁기 시작하면서 감히 여기에 옮길 수 없는 온갖 쌍욕이 무성하게 쏟아졌다. 손은 그릇을 거칠게 벅벅 닦아내면서도, 입은 고질라처럼 분노를 내뿜었다. 별의별 괴성이 분명 컸는데도 준이에게 닿은 적도, 닿을 일도 없다. 그렇게 마음속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나서야 설거지를 마칠 수 있었다. 마치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처럼. 청인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누가 들을까 봐, 누군가를 자극할까 봐, 어쩌면 말 한마디조차 꾹 눌러 삼켰을지도.


그리고 어떤 날은 유난히 감정이 나약해진다. 뭔가 건드리기만 해도 마음이 툭 하고 무너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날. 같은 집 안에 준이가 있어도 나는 마음껏 울 수 있다. 숨이 턱 막히고, 어깨가 들썩일 만큼 울어도 그는 모른다. 울다 보면 콧물이 흘러내리고, 나는 휴지를 뽑아 코를 훌쩍인다. 소리 없는 울음, 들키지 않는 오열 속에서 모래성처럼 쌓여가는 휴지들. 그럼에도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결혼 전, 청인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엔 달랐다. 울음소리에 놀란 가족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왜 우냐고, 무슨 일이냐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냐고 끊임없이 물었다. 어쩔 땐 그런 다정함이 부담스러웠고, 어쩔 땐 그 관심이 오히려 더 큰 눈물로 번졌다. 심지어 가족 때문에 우는 날엔 그 다정함마저 괘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밤이면 방문을 굳게 닫고 옷소매로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울었다.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동이 튼 아침을 맞곤 했다. 소리 내어 울 수 없던 밤들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때 억눌렀던 것들이 지금은 조용히, 그리고 완벽히 배출된다. 이 침묵 속의 배설이야말로 때론 가장 완벽한 감정의 숨통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우리는 서로의 고요를 침범하지 않는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 수 있고, 무언가를 숨기고 싶은 날엔 은밀하게 들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집 안에는 소리 없이 흐르지만, 표정과 몸짓, 기류와 시선이 만들어낸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조용함은 때로 방패가 되고, 때로는 유머가 된다.

방귀 냄새 하나에 눈물 나도록 웃었던 오늘 같은 날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청인이었다면 이런 순간을 과연 알 수 있었을까?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고, 울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숨기고, 들키지 않고, 간파하려 드는, 마치 마피아처럼 살아가는 농인 부부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마피아로 은밀히, 눈물겹게, 나름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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