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귤
결혼한 지 이제 곧 3년이 되는 여자와 남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 <뿅뿅 지구오락실>을 보고 있다. 여자는 방귀 신호를 느끼고는 남자의 눈치를 살핀다. 마침 남자가 화면을 보며 깔깔 웃고 있다. 여자는 엉덩이를 살짝 들어 조심스럽게 방귀를 배출했다. 괄약근을 지나는 공기의 진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여자는 이번에도 들키지 않을 것 같아 안도한 채 남자와 함께 깔깔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봤다.
“혹시 방귀 뀌었어?”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다 몸을 배배 꼬고 만다.
“어떻게 알았어?”
“푸시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어.”
이럴 땐 재빠른 인정이 상책이다. 괜히 어설프게 아닌 척하는 건 통하지 않는다. 남자는 웃으며 여자의 볼을 꼬집는다. 다음 날, 여자는 지난 번의 치욕에도 불구하고 다시 몰래 뀌는 것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웃긴 장면이 나올 때 일부러 웃음소리를 더 크게 내며 뀌기로 했다.
“뭐야. 너무 웃겨! 깔깔(뿡)깔깔”
남자는 여자와 함께 웃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본다. 남자의 시선을 느낀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자는 이미 당황한 표정이다.
“어? 왜?”
“또 방귀 뀌었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냐며 해맑게 묻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당황스럽다. 여자는 남자가 청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걸까? 남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청인은 생각보다 잘 듣는다고 말했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방귀 소리가 거칠게 튀어나왔다고. 남자는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모기 소리 때문에 잠 못드는 경우도 있다고.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청인이 아무리 잘 듣는다지만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반격했다. 모기 소리라니, 결국 만화적 표현 아니냐면서. 소리가 아니라 인기척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 남자는 억울해하며 여자의 동생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여자의 동생은 청인이었으므로, 결국 동생한테까지 ‘모기 소리는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진실공방을 펼치고 나서야 청인이 모기소리까지도 듣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이제 여자는 애써 방귀 소리를 다른 소리로 포장하지 않고, 조용히 부엌이나 화장실, 베란다로 가서 뀌고 온다. 건강한 장 생활을 위해서는 방귀를 참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가 화장실 안에서 은밀하고 시원하게 방귀를 뀌는 순간 남자는 어김없이 신나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달려와 말한다.
“왜 불렀어? 여보?”
화장실과 멀리 떨어진 컴퓨터 방에서도 방귀 소리가 들린다니. 청인은 이렇게 평생 작고 큰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니 피곤하지 않을까 여자는 새삼 남자를 걱정하기도 했다. 농인은 잠을 잘 때 천둥소리나 빗소리, 비행기 소리, 하다못해 모기 소리에도 한 번도 깬 적이 없다. 무서운 영화를 볼 때, 보청기를 끄면 자체 음소거도 가능하다. 이 얼마나 편한가!
이제 여자의 복수가 시작된다. 여자는 남자의 방귀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아주 미세한 냄새도 잡아내는 개코의 소유자다. 남자는 여자에게 비염이 있는 것을 빌미로 몰래 방귀를 뀌곤 하지만 늘 들키고 만다. 여자는 남자가 남몰래 뀌는 방귀와 트림을 단번에 잡아낸다. 여자는 코를 막으며 “방귀 뀌었지! 트림했지!”라며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신기록을 세우고 싶어 “이번엔 몇 초 컷이야?”라고 묻는다. 이 말은 몇 초 만에 생리현상을 알아챘냐는 의미다. 지금까지 제일 빠른 기록은 0.01초, 제일 느린 기록은 3분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눈치채는 것이 수치스러우면서도, 여자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여자와 남자는 결혼 전만 해도 이렇게 서로 생리현상을 교류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다. 생리현상을 트지 않은 신비로운 이미지를 한때 선망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여서 좋았다. 기꺼이 자신의 바닥까지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므로. 누가 보면 고개를 내저으며 참 더러운 이야기라 하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끈끈한 부부의 정을 느끼고 있다. 여자와 남자는 오늘도 방귀로 서로를 부르면서 사랑을 확인하곤 한다.
“뽀옹!”
“왜 불렀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