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호
내가 있는 이 곳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소속된 작은 섬, 길리이다. 하늘의 색이 분홍색으로, 주황색으로, 보라색으로, 노란색으로 총천연색으로 변하며, 환경보호를 위해 자동차 반입 금지된 이 곳의 길거리에는 마차와 자전거, 그리고 걸어다니는 사람들 뿐으로 평화롭고 여유로운 곳이다. 여기서 걷다가 고개를 돌리면 산호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윤슬 사이사이를 유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하고 있는 나는 보노, 신, 용이와 함께 어제 길리 섬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었다. 우리는 다음 날 섬을 요목조목 탐험하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기로 계획하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업체를 탐색했다. 여러 곳에 들렀지만 생각보다 비싼 시세에 번번이 흥정에 실패했다. 정처없이 계속 걸어다니다 가판대에 있는 한 노인이 눈에 띄었다. 수많은 자전거들 사이에 서있는 그는 앞이 뜯어진 흙색의 벙거지 모자를 쓰고 하얀 턱수염을 길게 길렀으며 언뜻 눈매가 사나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지손톱이 다른 손톱에 비해 매우, 엄청나게 길다는 것이 그의 특별한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바가지를 덜커덕 씌울 것 같은 첫인상이었으므로 우리는 뻔뻔한 얼굴을 장착하고 주먹을 꽉 쥐며 상술을 쳐낼 준비를 하고 전진했다. 손가락을 4개 펼치며 자전거를 가리키니 그는 바로 계산기를 두들겨서 가격을 보여주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비싼 가격에 흥정을 시도했다. 웬걸! 이번의 그는 지금까지의 앞 가게와 다르게 오케이 사인을 보여주었다.
다음날 자전거를 빌리면서 그와 여러번 이야기하다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의 실상은 첫인상과 달리 미소가 매우 귀여운 할아버지였다. “소 뷰리풀~”이라는 찬사가 습관인 낭만적인 신사였다. 포옹으로 인사를 시작했으며, 들리지 않는 우리를 위해 천천히 한 단어씩 말하곤 했다. 어떨 때는 서로 따봉을 날리거나 손가락만으로 가리키며 소통하기도 했다.
다정한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전거 4대를 내어주었다. 각자의 키에 맞춰 자전거 안장을 만져주고서 잘 가라며 손인사를 했다.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거리에 나갔다. 자전거에 익숙한 세 친구들은 저만치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문제는 나였다. 여덟살에 두류공원에서 자전거를 연습하다가 어느 사람과 정중앙으로 부딪힐 뻔한 이후로 다시 도전하는 자전거 타기였다. 아찔했던 기억으로 그만둔 지 스무 해 넘게 흘렀으니 역시나 자전거가 내 불안한 손에 따라 우왕좌왕 비틀거렸다. 뒤에서 보면 꼭 숭구리숭구리당당 춤을 추는 모양새였다. 누가 봐도 ‘나 자전거가 너무 무서워여!’ 하고 있었다. 땀이 어느새 얼굴과 등을 적셨다. 나는 차분하게 임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진리를 몇 번이고 되새기며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리려고 했으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 비포장도로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가엾게도 쿵! 쿵! 들썩이는 자전거를 보다 못한 길거리의 어느 청년이 앉았던 몸을 일으켜 내게 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했다.
내 시야에서 청년의 입술이 영화 속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뇌 속에서 대화의 전후 상황과 문맥을 빠르게 파악하고 가장 근접한 단어를 탐색한 결과 ‘이지모드’라는 말을 추려낸 나는 “이지모드?”라고 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청년은 손잡이를 몇 번 만지더니 앞으로 손짓했다. “고!”
엉거주춤 페달을 구르며 내달렸다. 난생처음 맛보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세상에! 드디어 가고 있잖아! 청년이 내 자전거에 무슨 마법을 부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슬아슬했지만 무거운 느낌이 한층 줄었다. 얼굴을 스쳐가는 상쾌한 공기를 느낀 나는 환희에 가득 찬 채로 엄지를 높이 치켜세우며 청년에게 소리를 질렀다! “뜨-리마-까-씨! [고맙습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느끼기도 잠시, 골목길을 돌자마자 아까보다 더한 구멍이 숭슝 파인 길을 만나고야 말았다. 또다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구멍을 피해 위태롭게 이리저리 달리던 나는 체력과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포기하고 말았다. 함께 온 친구들이 괜찮느냐고 묻는 말에 끝없는 부끄러움과 좌절을 느꼈다. 최대한 기분 좋게 여행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더 갔다가는 돌이킬 수 없이 멀리 갈 것이고 그 때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전거를 끌다가 타다가 끌다가를 반복하며 처음의 가게로 돌아갔다.
위풍당당하게 떠날 때와 다르게 만신창이로 돌아온 나를 보고 눈썹을 치켜뜬 할아버지의 표정은 “와이?” 라고 묻는 듯 했다. 우리는 ‘슈렉’에 등장하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불쌍한 눈망울을 탑재하여 번역기로 이 위기를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운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면서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환경보호를 위해 마차와 자전거만 허용되는 이 섬에서는 원래 전기바이크도 혼용하고 있었으나 한 달 전부터 관할 정부에서 관광객들에게 대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최근에 생긴 일이므로 아직 효력이 퍼지지 않아 자전거를 결코 탈 수 없는 한 관광객이 어떤 가게에서 우연히 전기바이크를 빌려 탈 수 있었다는 후기를 보고 할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사정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팔을 엑스자로 휘저으며 가게에는 전기바이크가 정말 없다고 말했다. 크게 낙심한 우리의 얼굴을 보고 불현듯 큰 결단을 내린 듯한 할아버지는 비장한 표정으로 기다리라는 듯이 양손바닥을 보여주며 어떤 가게로 들어갔다. 이윽고 나온 할아버지의 뒤에는 바이크가 있었다. 그 가게의 주인이 개인적으로 쓰던 바이크를 빌려준 것이었다! 이것은 거래용이 아닌, 할아버지가 우리와의 우정을 위해 빌려준 것임을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뜨리마까시! 뜨리마까시!”를 열창하며 환호했다.
친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키가 컸기 때문에 전기바이크를 운전하는 친구의 뒤에 한껏 붙어서 쭈그려 앉은 내 모습이 꼭 가느다란 이파리에 붙은 뚱뚱한 무당벌레 같은 모양새였다. 연약한 이파리가 무당벌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나풀거리는 것처럼 바이크도 간혹 휘청거렸다. 게다가 내가 앉은 곳은 운전석보다 낮았던 탓에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지 않도록 최대한 오므려 접어야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전기바이크와 뒤에 애처롭게 달린 사람을 보고 길거리의 외국인들이 흥미롭게 쳐다보곤 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길리 섬 최초의 전기바이크와 자전거를 타고 싱싱 달리는 동양인 여자 넷이라니!
그 날 오후의 바람 냄새를 잊지 못한다. 특유의 흙바람과 바다의 비릿한 냄새,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보여준 선의가 그 가운데에 있다. 보다 못해 자전거를 고쳐준 이름 모를 청년, 마지못해 바이크를 구해준 주인장 할아버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 태평양을 넘어 여기에 온 외국인에게 보여준 그 온기를 잊지 못한다.
그 마음들 덕분에 나는 길리 섬의 뜨거운 태양과 청량한 바람이 얼굴에 지분대고 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