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에게
너는 처음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사람이다. 니요의 So Sick는 R&B 명곡이지만 그 누구도 아직까지 직접 불러주지 않은 노래다. 초등학생이던 내게 영어 가사는 그리 깊게 와닿지 못했고, 그래서 항상 음원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평소처럼 라디오를 듣다가 너를 봤다. 2008년의 보이는 라디오라 화질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너는 가수로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반했고, 내가 존경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을 흔히 팬이라고 한다. 나는 너의 팬이 되었고 네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노래를 부르는 주체가 되었다. 많고 많은 팬이란 개념 속 담긴 나는 무척 행복했었다. 잎이 돋고 앙상한 가지가 되듯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지 못한 나는 상업적 음악과 취향이란 거리감으로 너와 멀어졌는데, 후에 라디오 DJ로 돌아온 너는 다시 내게 중요한 하루의 끝이 되었다. 오후 11시 59분에 들어가서 오전인지 오후인지 헷갈리는 12시에 시작하는 푸른 밤의 라디오. 조곤조곤하고 순한 멜로디로 너는 깊은 서술자이자 전달자였다. 음악 역시도 늘 그렇듯 호소력있고 전달력 있는 좋은 가수였다. 쓰는 글마저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식마저도 알찼고, 소수자를 지지하는 다수자인 네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 해의 겨울을 떠올리면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 준비를 하는 내가 떠오르고, 너의 사망소식에 언니와 카톡을 나눈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참 무서운거 같아요. 내가 좋아하던 가수가 죽었는데 이게 실감이 안 나고, 나는 또 시험공부를 해야만 하고 우리는 또 이렇게 일상을 살아간다는게." 당장 어제의 카톡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내가 보낸 이 카톡이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너무 많이 사랑하지도 않았고 너무 무심하게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너는 참 큰 존재였다. 내가 하지 못할 것들을 해줬고, 하지 못한 걸 해줄 사람이었기에.
그 때만해도 난 So Sick라는 곡이 너의 복선이 될지는 몰랐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별게 없던 12월 중순이 누군가의 기일이 될지도 몰랐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240쪽
숨길 수 없는 진지함과 깊이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얼마 후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던 건, 자신이 가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남을 가장 열심히 위로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그가 디제이를 하던 프로의 피디였던 분이 다시 새 프로를 시작하는 날. <푸른 밤>이라는 이름의 그 프로는 그 피디의 첫번째 프로그램이었으므로. 그는 그 피디, 그러니까 그녀의 첫 번째 디제이인 셈이었다. 처음에는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가 꿈을 버리지 못해 엠비시 티브이 방송국에 입사한 뒤, 남들은 좀처럼 하지 않는 라디오 방송국으로의 전직을 감행할 만큼. 그렇게나 라디오 피디가 꿈이었던 한 사람의 생애 첫번째 프로의 첫번째 디제이.
피디는 자기 책상에 자신의 첫 디제이의 사진을 붙여놓으며 그 모든 자신의 첫번째들을 애지중지하였고, 개편이라는 이름하에 프로를 옮기게 되었을 땐 눈물까지 흘리며 애석해했었다. 그랬는데 ……… 그 잊을 수 없는 프로의 잊지 못할 디제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피디는 슬픔을 넘어 기가 막혔고, 그렇게 기가 막힌 채로 여전히 그 디제이의 사진이 걸려 있는 스튜디오를 일터로서 드나들어야 했다.
밤 열두시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풍경에 슬퍼하면서.
해와 계절이 바뀌고, 반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도록 자신의 첫번째 디제이를 떠나보내지 못해 힘들어하던 피디는 개편과 함께 다시 새 프로를 맡았다. 하여 어느 따뜻한 봄날, 새 디제이의 사진을 책상에 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피디는 떠나보내야 하는 디제이 생각에 속이 상하다가도 새로 시작할 프로그램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설렘에 놀라고 당혹스러웠던 심경을 담아 내게 소식을 전해왔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도 기어이 허기를 느끼고 밥을 먹게 되는 그런 이치와 비슷한 것일까. 제아무리 슬퍼도 언젠가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 때의 기분과도 같은?
내가 너를 보내고, 이렇게 웃고 있다니.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웃기고 아름답고 멋지고 맛있는 것들도 많은걸, 하며 자조하는 그런. 복잡미묘함?
<4월, 엄원태>
발모퉁이 빈터에 달포 전부터 베로니카 은하가 떴다. 봄까치꽃이라고도 한다. 베로니카 은하에서 연보랏빛 통신이 방금 도착했다. 워낙 미약하여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인근 광대나물 은하까지는 불과 몇십 미터이지만, 꽃들에겐 우주만큼이나 아득한 거리일 터.
산자락 외진 무덤은 잔등에 쏟아부어놓은 듯 토종민들레를 뒤집어썼다. 노란 산개성단은 산길 옆 양지꽃 은하수에도 가득하다. 무덤가 잔디밭엔 제비꽃 플레이아데스성단이 떴다. 좀생이별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희고 둥근 꽃송이들이 가장자리를 환하게 밝히며, 게자리 프레세페성단처럼 떴다. 이 외진 곳은 복사꽃이나 배꽃처럼 전폭적인 초거대 별무리들로부터 수만광년쯤 떨어져 있어, 꿀벌 전령들도 어쩌다 힘겹게 들르는 곳이다.
어느 봄날엔가, 당신이 까닭 없이 서러워져 홀로 들길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때, 저 외진 지상의 별무리들에게 그렁그렁 눈물 어린 눈길을 주었던가. 그래선지 오늘 내가 거기서 왠지 서러운 빛깔의 메시지를 전해 받는다. 슬픔도 저리 환하다.
위의 소설은 그를 언급한 책, 시는 내가 그를 떠올리며 기억하는 시이다. 시 4월의 작가는 너를 고려하지 않고 썼지만, 너의 생일인 4월엔 참 많은 꽃이 핀다고 한다. 은하도 많이 뜨고 은하보다 작은 성단도 뜬다. 무덤가 잔디밭에 뜬 좀생이별. 그리고 탱자나무 우타리에 환한 성단. 그래서 어느 봄날엔가, 내가 까닭 없이 우울해져 홀로 캠퍼스길 걸어 집으로 돌아가면, 저 외진 지상의 별무리들에게 그렁그렁 눈물 어린 눈길을 준다. 그래서인지 오늘 내가 거기서 왠지 우울한 빛깔의 메시지를 전해 받는다. 슬픔도 저리 환하다. 마치 네가 보내는 푸른밤의 위로처럼. 12월에 떠난 너를 한 달 전에 나는 미리 애도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얼어붙은 세상처럼 아픈 이들의 뇌와 호르몬이 얼어붙지 않길 바라면서. 왜 슬프고 고통스러운 죽은 날을 애도하는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너의 생일인 4월은 이렇게도 아름다워서 그러지 말자고. 이제 너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12월을 기리게 된다.
장자는 자기 아내의 장례식 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만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도가의 논리에서 슬플게 뭐가 있냐고. 계절이 변하듯 사람도 변화하는 거라고. 자기가 울면 편안히 아내가 못 돌아간다고. 나도 소중한 당신을 언젠가 울지 않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을 따라 많은 것을 배운지도 십년이 넘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내가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나의 또 다른 가수는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싸워온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당신처럼 조용하게 남을 잘 위로하는 사람이다. 당신을 존경하는 후배. 당신 덕분에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더 아껴보려 한다. 오늘도 당신은 이제 아프지 않기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