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표의 장끼, 자원, 최애
앞서 “3화 콘텐츠를 검토했다면 이제는 나에 대해 검토해 보자”에서 설명한 내용의 예시를 본아트랩으로 들어보려고 한다. 본아트랩이기도 하고 서대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작은 개인단체라 둘이 한 몸이라는 점을 양해 바란다.
그럼 첫 번째 항목부터 알아보자.
나는 아동미술을 전공했다. 전공도 전공이지만 학교 미술선생님을 하시다가 예술작업을 하시겠다고 학원을 차리신 아버지의 둘째 딸로 나의 주변에는 미술교육을 하는 사람 천지였다. 아버지의 미술학원 옆에는 아빠와 아빠의 화가 친구들의 작업실이 있었다. 뭐 여하튼 그런 환경에서 쭉 자라와서인지 미술교육의 다양한 형태를 숨 쉬듯 보고 배우고 느껴왔다. 그래서 그냥 미술교육은 나의 삶의 어느 일부분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장끼와 좋아하는 것은 다르기에 종종 급할 때는 예술교육을 해왔지만 주로 좋아하는 건 공연기획이나, 축제기획 등 문화예술과 관련된 기획 일들이었다. 그래도 예술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다른 장르에 비해 빠르고 쉽게 예술교육을 만들어 내고 운영할 수 있다.
이건 본아트랩보다는 서희원의 장끼인 것 같지만 본아트랩과 서희원은 일심동체임으로 본아트랩의 장끼이기도 하다고 해주자.
본아트랩의 자원이자 서대표의 자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바로 사람이다.
본아트랩이 설립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프리랜서로 삼삼오오 모여 활동하던 예술가 친구들과 코로나시기에 모일 장소가 필요해서 공간지원을 받기 위해 구체적으로 사업자를 내고 기획자인 내가 대표가 되어 공모사업에 지원하기 시작했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사장이 되자! 했던 건 아니다. 그냥 육아와 같은 개인 사정으로 인해 경력단절의 시기를 겪게 되면서 활동을 주저하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지원 사업을 권장하며 혼자 못하겠다고 하면 함께 하자며 기획수업을 진행했던 게 그 시작인데 코로나 시기가 되면서 공간이 자유롭지 않아 졌기에 구체적으로 단체 설립을 고민하고 진행했던 것뿐이었다.
문화판에서 나의 첫 직장이 극단기획실이었고, 이후 축제사무국 총괄기획, 문화원 사업담당, 전통연희단 기획팀장, 대학원 진학, 예술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 지인들이 축적되어 왔다. 그냥 친구이자 동료이었던 사람들과 다양한 이유로 경력단절의 시기를 공유하게 되면서 본업으로 돌아가지 못한 모든 지인들이 본아트랩의 자원으로 남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의도치 않게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장르의 인력풀을 소유해 버린 것이다.
아버지가 화가친구분들과 모여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실을 차리셨을 때 그 작업실의 기억은 매우 아련하면서도 좋다. 유화물감 냄새 사이로 믹스커피 냄새가 종종 맡아졌었는데 그 두 개의 향기는 지금도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기분 좋게 떠오른다. 삼촌들 의자 옆에 붙어 앉아서 물감을 짜주기도 했고 내가 할래 내가! 를 외치며 색도 섞어드리고 팔레트도 닦아주고 옆에 이젤을 두고 나도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어른들과 함께 나도 화가인 양 그림을 그렸으니 나쁜 기억일 리가 없다. 그래서인가 작가님들과의 수다는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화실 옆에 운영하셨던 미술학원에 대한 기억은 안 좋다. 뭐 여러 이유가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아이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다.
(학원 하시는 선생님들.. 자녀분들에게 너무 학원현황을 노출하지 마세요. 본인이 운영하듯 스트레스를 받는 답니다...)
여하튼 그렇다 보니 예술교육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상이 보통은 아이들인데 나는 그 조합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교육+아이들..
그러나 어른들과의 소통은 어려서부터 좋아해서인지 예술교육을 위해 어떠한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건 성인 혹은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이 나의 최애의 대상들.
여하튼, 세 가지는 대략적으로 위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