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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Dec 23. 2021

시인의 사인(sign)

이안정 시인의 사인을 받고

7일을 지우고 하루 더 그리는 그대
- 詩人 이 안 정 -


등단한 시인을 직접 만나고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몇 번이나 될까? 40대인 나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벅찬 경험을 해낸 15살 첫째 딸은 엄청 감격스러워했다. 엄마에게 어떤 시는 귀여운 시라며 읽어주고 보여주고 자랑하면서 사인받을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시집의 내용이 마음에 쑤욱 들어오는 내용들이라 인생 시집이라며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조잘조잘 정말 날 닮은 너…




어느 날 중2 첫째가 책 한 권을 사달라고 했다. 시집인데 읽고 싶으니 당일배송으로 주문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엄마들은 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것은 미뤄도 바로 들어주게 되는 ‘책 사달라는 주문’. 하지만 사줬는데 먼지 쌓이고 있으면 ‘속 터지는 그 주문’.


바로 핸드폰을 들어 주문을 하였는데 딸의 요구대로 당일배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빠른 배송이 되지 않는다 하니 더 안달복달. 일주일 가까이 기다려 책을 받은 후 아이는 굉장히 기뻐하고 신기해하며 책을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아이는 주말이 지나고 등굣길에 시집부터 가방에 담았다. 오늘 시집을 다 읽고 올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고 위풍당당하게 학교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 줬지만,


‘응~! 그래~ 딸! 그런데 다 읽고 오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엄마에게 장담한 대로  읽고  읽고  아이.   꽂히면 책과 뮤지컬을  ,  번씩 보는 아이이긴 하지만 평소 학교 일정과 학원 일정 때문에 독서할 시간이 많지 않은 아이가 분명  시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무엇이 아이를 그토록 시집 안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올라타게 했을까?



국어 점수를 잘 받고 싶게 하는 동기

중2병 패스하고 시집을 읽게 하는 동기

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는 동기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읽게 하는 동기

책을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동기


그 동기는 바로 우리 아이의 ‘국어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덕분에 국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선생님 덕분에 글 쓰는 연습을 스스로 하게 되었으며,

선생님 덕분에 문제집을 끝까지 풀어내고,

선생님 덕분에 시집을 읽는 소녀가 된 아이는 선생님께 받은 ‘시인의 사인’이 갖는 소중함을 통해 중2 학년 말 행복한 기억과 함께 청소년기를 의미 있게 보내는 나름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고 있었다.



엄마 이 책은 그대로 우리 선생님이야.


아이 덕분에 읽고 있는 시집은 정말 아이 말대로 따뜻했고 아침에 건네받은 괜찮은, 삶은 달걀이 주는 울컥함이 있었다.


나는 요즘 시집으로 따뜻한 아이의 선생님을 만난다.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아이가 가진 행운 덕분에.


[7일을 지우고 하루 더 그리는 그대]

월요일에는 괜찮을 거야
화요일에는 좋아질 거야
수요일에는 잊어질 거야
목요일에는 지나갈 거야
금요일에는 안 아플 거야
토요일에는 행복할 거야
일요일에는 웃게 될 거야

또다시, 일주일 그리고 너

애써 지운 추억이 매일이 되어 나에게 온다

7일을 지우고 하루 더 그리는 그대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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