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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 Oct 21. 2024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

고립 시절에 가장 위안이 된 것은 블로그다. 처음에는 광고용 계정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블로그를 했지만 나중에는 그런 생각을 지웠다. 블로그는 이미 유행이 지난 플랫폼이지만 블로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감수성을 공유했다. 특히 책을 읽거나,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특유의 감수성을 공유했다. 그 감수성을 뭐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말하면 적어도 남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지 않은 무해한 마음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런 순수함이 위선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문학을 읽다 보면 문학가들이 공유하는 감수성에는 일종의 패배자 의식이 있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 위한 아등거림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나 역시도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도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사회의 순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이 꼭 인생을 함부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힘든 세상에서 서로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 처음에는 책이나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였고, 그나마 현실로 옮긴 것이 블로그였다. 블로그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었고, 그 안에서도 서로 부딪치고, 위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블로그는 글쓰기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아무래도 글을 쓰다 보면 혼자 쓰고, 읽게 되는데,블로그에 올리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니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자기객관화가 이뤄진다.


블로그 스승을 만난 이후 인문학을 독학한 내용을 글로 올리고는 했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어렵기도 했고, 스스로 소화를 못 했기 때문에 글을 올릴 때마다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차근차근 배우면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글을 써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분야의 내용이기 때문에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한 내용은 나만 흡수하기로 하고,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거기에 관해 글을 써서 올렸다. 동시에 읽은 책은 꾸준히 기록하여 글로 남겼다.


그렇게 하다 보니 블로그에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초창기에는 순전히 블로그를 성장시키기 위해 품앗이를 하려는 이웃이었다면, 나중에는 책을 좋아하거나, 내 글을 읽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었다. 블로그에서는 철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거들이 있지만 그런 블로그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내 경우에는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독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배운 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대학원에 들어가서 교육자가 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그 길을 원했다면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때는 현실에 쉽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궁핍했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적았다. 블로그에 꼬박꼬박 글만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외로움을 느끼면 게임을 하거나, 그마저도 질리면 인터넷 방송을 봤다. 그렇게 방송을 보는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방송을 통해 전해져오는 목소리와 그 방송에 반응하여 올라오는 채팅을 보면서 당시에는 이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웬만해서는 방송에서 채팅을 치지 않았다. 만일 방송인이 거기에 반응해서 채팅을 읽어주면 그것마저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저 가만히 누워서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화면과 물아일체가 되어 내가 그 방송인이 되어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때에 따라 즐기는 방송의 종류는 달랐지만 내가 즐기는 방송은 대부분 스토리 게임을 하는 방송이었다. 게임의 퀄리티는 상관 없었다. 스토리만 재밌으면 되고, 같은 게임이라 하더라도 다른 방송인의 반응을 보기 위해 방송 플랫폼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이따금 재밌는 일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거기에 달려가서 사람들의 반응을 즐겼다. 그런 사건들은 대부분 현실과 관계없는 해프닝이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 비해서는 훨씬 재밌었다.


방구석에 있으면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을 원했다. 인터넷은 그것을 충분히 공급해 주었다.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게임이 꾸준히 나왔다. 요새는 스토리보다는 같은 유저끼리 경쟁하는 장르의 게임이 많다. 그렇지만 그 안에도 스토리가 있다. 게임에 참여하는 유저들 간의 관계가 있으며, 그 안에서 서사가 형성된다.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한다. 그것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현실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고립에서 벗어난 이후에 사회는 곪아 있던 부분이 터지고 있다.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달려들어서 물어뜯는다. 세간에는 그렇게 물어뜯는 사람을 비판하지만, 때로는 가십거리로 치부하고 만다. 내게 있어서 익숙한 일이다. 어떤 대상을 두고 욕하거나 몰입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몰두할 만한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다. 그간 방송을 보면서 오랫동안 봐왔던 일이다. 그렇지만 사회는 지나치게 소모적이어서, 소비되는 대상이 하루아침에도 바뀐다. 요새는 이것을 도파민 중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파민 중독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을 조성하는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나는 집에 돌아오면 게임이나 인터넷 방송을 즐겼다. 그러다 어느 정도 마음이 회복되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다른 일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할 일이 많아지면서 시간 여유가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과 방송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쉴 때는 그것들을 가끔 즐긴다. 그렇지만 마냥 쉬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게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여긴다. 중독이나 의존에 대한 문제를 들 때 환경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나 역시 환경에 지배받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면 어떻게든 환경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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