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안락했지만, 그만큼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낮이고, 밤이고 공장 기계음이 들려왔다. 나를 위로하는 것은 창 밖에서 지나가는 기차 소리였다. 그곳에서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게임이 질리면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인터넷 방송을 봤다. 그렇게 하면 시간은 잘 갔다. 그렇게 생활하는 게 별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과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고립된 이십 대를 보냈다.
물론 그 와중에 일도 하고, 글을 쓰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 전역 후에는 생활 패턴이 바뀌어서 좋아하던 책도 멀리하면서 게임만 했다. 거기에 대해 부모님도 게임 중독이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흘려들었다. 컴퓨터로 글도 쓰기 때문에 그것을 통틀어서 말하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돌이키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게임을 많이 했다.
그렇게 게임에 몰입한 이유 중 하나는 게임으로는 돈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가서 하는 일은 다 돈이 들어갔다. 저렴한 비용으로 야외 활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아예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외출 자체를 피했다. 외출은 하지 않아 체력은 쌩쌩하고, 늦은 밤까지 잠이 안 오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게임을 했다. 그러다 잠들면 늦은 점심에 일어나서 새벽에 자는 패턴을 반복했다. 그래도 스스로는 밤샘은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있었지만 그런 순간도 무너지고는 했다.
그래도 이십 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게임에만 몰입하던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때가 블로그에서 스승을 만난 후였다. 그동안 글을 쓰기는 했지만, 독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그 사람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7권씩 빌려 읽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다 보니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을 동원했다. 책을 난이도별로 분류하여 어려운 책은 페이지를 나누어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최대 페이지 양을 정해놓고 읽었다. 읽기 쉬운 책은 빠르게 넘기면서 읽은 페이지 수를 늘리는 식으로 성취감을 높였다. 그렇게 하면서 점차 독서량을 늘렸다.
그때는 속독을 했기 때문에 난이도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 한 권을 읽는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됐다. 글쓰기도 미루고 책을 읽었다. 하루에 세 권 이상은 읽기가 힘들었으므로 늦은 오전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면 보통 세 시가 됐다. 그렇게 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자유시간을 줬다. 그때는 게임을 하든, 뭘 하든 간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분명한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쯤에는 부모님이 잔소리를 해도 무시했다.
자유시간을 그렇게 넉넉하게 줘도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어쨌든 특정한 성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데, 노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쟁을 기준으로 했을 때다. 사람들과 비교하면 내가 하는 노력은 큰 노력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 했던 노력은 내 기준에서 최선이었다. 돈이 있어서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렇게 책을 읽으니 영감을 받아서 글도 많이 썼다. 물론 그때 썼던 글들은 공부를 위해 정리한 글이 많아서 지금의 내가 읽으면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난해한 글도 많다. 그때는 무언가에 홀려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쓴 글을 세상에 보여야 한다는 소명감이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쯤 기상 패턴도 어느 정도 맞춰져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까지 글을 쓰고, 책을 읽은 뒤 그 후에는 자유시간을 보냈다. 같은 자유시간을 보내도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음이 편해졌다. 애초에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관심이 없었다. 나이가 어떻든 하고 싶은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언젠가 알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단순한 망상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습관을 길들이고 나니 고립 이후에도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