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별다른 뜻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성인이 되었으니 돈을 버는 게 당연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그 제안이 하는 것도 없으니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들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어쩌다 일을 하면 일 하는 요령을 가르치면서 계속 같이 일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일을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건설 현장 일은 벌이가 괜찮지만, 인식이 나쁘기도 하고, 야외에서 하는 것이어서 힘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팀으로 일하는 경우에는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직접 일을 맡아서 하는 경우 인력소에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구해서 쓰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합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변수가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나도 거절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을 따라가고는 했다. 고립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래도 일당을 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아버지와 하는 일은 시중에서 노가다로 알려진 일이지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내 경우에는 대부분 시다라고 불리는 역할, 전문 용어로는 직영의 역할을 했다. 직영은 건설 현장에서 현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 자재를 정리하는 일을 한다. 자재가 어질러져 있으면 작업 진척이 느려지고, 그것이 곧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명목 때문에 큰 건설사에서는 따로 전문 직영을 두기도 한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일은 아니라는 인상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건설 현장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 자주 맡는 역할이다. 이를테면 노가다계의 인턴이다.
큰 건설 현장이라면 직영이어도 끊임없이 일이 들어오기 때문에 힘들 수 있다. 아버지와 하는 일은 그런 큰 규모의 공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느 직영이나 어려운 점이 있다. 직영이라면 자재를 정리하고, 현장에 필요한 요구에 맞춰서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만 막상 처음 투입된 거라 현장의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니 원하는 일을 해줄 수 없다. 어떤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긴가민가하면서 갖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정도는 어느 정도 배우면 익힐 수 있지만 문제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돌아오는 타박이 생각보다 거칠다는 것이다. 건설 일을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 세기도 하고, 건설 현장이 위험하기 때문에 일부러 기를 죽이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그런 타박을 아버지를 통해 들으니 죽을 맛이었다. 나중에 아버지도 건설 현장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그런 관성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아버지는 좋은 상사가 아니었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실수한 것에 화내기도 하고, 자신이 한 말도 안 했다고 우기고는 했다.
대부분의 실수에 질책이나 힐난을 했다. 그럴수록 자존감이 깎여나갔다. 어차피 이 일을 오래 할 생각도 아니었고, 애초에 억지로 끌려왔기 때문에 일할 의욕도 없었다. 대부분 전문적인 작업은 아버지가 했기 때문에 나는 멍하니 서있다가 옆에서 보조하는 게 전부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막상 아무 일 없이 8시간 남짓을 보내는 것은 그것대로 힘들었다.
오히려 직접 무언가 할 때가 할 만했다. 쇠파이프를 똑같은 길이로 잘라낸다든가, 페인트칠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시간이 잘 갔다. 그럴 때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이렇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워낙 불같았고, 그 모습 때문에 현장에 대한 애정마저 모두 사라졌다. 한편으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작업은 집 생활에 익숙한 내 체력으로 당장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산책이나 운동도 안 하던 내가 현장 일을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서 일을 한 횟수는 꽤 된다. 그렇지만 다 합쳐도 수개월이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것을 직업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독서모임에서도 스스로를 작가지망생이라고 표현했지, 어떤 일로 돈벌이를 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때때로 평일에 일을 하다가 주말에 독서모임을 가면 어쩐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는 했다.
어차피 나는 작가로 살 것이기 때문에 남들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스스로 작가로서 다층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독서모임은 평범한 사람이 모이고, 블로그는 문학의 세계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인다. 건설 현장에서는 날것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모인다. 예전에는 각기의 세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코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나는 작가이지만 마냥 이상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삶을 파헤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물론 여전히 작가로서 이상 세계를 동경한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결국 현실의 삶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여태 살아온 궤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