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는 마냥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던 해였다. 그때 나는 인간관계의 실패로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구 역시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나에게 위로를 받으려고 찾아왔지만, 나 역시 누군가를 위로할 상태는 아니었다. 당장 돈도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데 누가 누구를 위로할까. 실의의 빠진 친구 앞에서 할 말이 없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지역에서 희망일자리를 구인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당시에 코로나 유행으로 실직했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단기 일자리였다.
이전에는 공공 일자리가 있어도 공공기관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모집하는 것은 지역 자원을 조사해 아카이빙을 하는 일이었다. 공고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기사를 쓰는 일이었따. 글을 쓰는데 이런 일까지 피하면 어떤 일을 할까 싶었다. 그렇게 하여 지원을 했고 다행히도 뽑혔다.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입체적인 일이었다. 추후 지역에서 청년지원센터가 열면서 사이트와 SNS에 청년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라 이를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지만 그게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잘 와닿지 않으니 그저 기사를 쓰는 일이라 설명했다. 교육 기간을 제외하고 1주일에 한 편의 기사를 내는 것이 업무였다. 그 정도면 넉넉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당장 취재할 만한 아이템을 고르는 것부터가 막막했다.
이런 업무 대부분이 사람을 섭외하는 것이 일이다. 인터뷰를 위해서는 지역 사람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지역 내에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사람을 섭외하잖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섭외부터 막히니 막막했다.
혼자 하면 막막할 수 있는데 인근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묶여 팀으로 함께 했다. 팀으로 하니 부담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팀은 원래 네 명이지만 한 명이 시작 전에 나갔다. 세 명 중 한 명은 사전에 지원한 대로 중간관리자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다른 팀보다 인원이 부족했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팀원으로 활동하게 된 사람이 대학생이었는데, 매번 바쁘다는 핑계를 대었다. 그리고 어차피 출장을 나가면 감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대충 해도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같이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동의하는 척하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일을 하던 친구는 불만도 많았다. 그래서 나와 팀원이나 나와 직원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했다. 내가 인간관계 경험이 많았다면 중심을 잡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지를 못하니 그대로 휘둘렸다. 중간관리자 역할을 했던 팀원은 보이는 일에 비해 우리보다 급여를 더 받았다. 같은 팀이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자는 주의였다.
이로 인해 직원의 중재를 받기도 했다. 지원했을 때 역할을 정해서 모집했기 때문에 그 역할대로 하는 게 맞았다. 우리만 빼고 모든 관계자가 바빴기 때문에 그저 방치된 느낌도 들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고, 줄을 잘못 선 내 잘못이겠거니 했다. 그렇지만 중간 역할을 맡은 사람도 나중에는 자신이 맡아야 할 일도 할 줄 모른다며 떠넘기기 바빴다. 그러다가 막판에 자신에게 할 일이 몰리자 팀원과의 갈등을 핑계로 일을 관뒀다.
돌이키면 정말 어떻게 굴러갔나 싶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팀이었다. 중간에 끊임없이 관두고 싶었지만 한 번 맡은 일은 웬만해서는 끝까지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나한테는 그런대로 충족됐다. 배운 것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 하다보니 섭외를 해야 했다. 항상 섭외가 두려웠었는데, 연락이나 접촉을 했을 때 거절을 당하는 경우는 있어도 나쁜 식으로 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취지를 설명하면 좋은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난 인터뷰이 중에 인상적인 사람들도 많았는데, 실력이 부족한 탓에 내용을 잘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작가를 꿈꿔왔지만 인터뷰나 취재를 할 생각이 없었다. 문예창작과를 전공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따로 배우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게 꽤 재밌는 일이고,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인터뷰집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내가 경험했던 일자리는 일경험이라고 불리는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공공 일자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효율적인 사무 처리를 위한 일자리가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끝나고 그 사람에게 남는 게 별로 없다. 좀 더 개성 있는 일자리여야 청년들도 더 의욕적으로 지원하지 않을까 싶다. 이 일자리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에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한 경험 때문에 사회에 대한 내성이 좀 더 생겼다. 그 후 돈의 여유가 생겨 활동을 시작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물론 당시에는 많이 괴로웠다. 일을 해도 마음처럼 잘 안 풀리니 실패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 후에 일자리를 관리했던 관계자들을 나중에 만났을 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단기 일자리로 흘러오는 사람은 소외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데, 관계자들도 바쁘다는 이유로 관리에 소홀했다. 물론 지금 공무원들의 일의 강도를 생각하면 그런 기대를 바라는 게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중에 관계자한테 카톡으로 긴 문자메시지를 남기려다가 지웠다. 지금도 그렇게 한 것이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일이 끝나고 나중에는 좋은 관계로 남았으니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지만, 한편으로 그 시간에 갇혀 있을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 후유증을 핑계로 한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심지어 그때는 코로나도 있었으니 핑계를 대기 좋았다. 그렇지만 독서모임마저 열리지 않아서 새로운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 사람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