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생활의 끝에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희망일자리가 끝난 뒤에 지역의 독립서점 행사에 꾸준히 참여했다. 그곳에서 만난 작가와 사람들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곳은 그곳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으나 서점에서는 책 이야기만 하고 금방 흩어졌기 때문에 친밀감이 형성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희망일자리에서 일했던 사람 중에 스치듯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청년단체에 들어와 달라고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젠더 관련한 청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입했지만,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니 성평등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정도에 그쳤다. 서로의 뜻이 맞지 않으니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단체의 정체성이 모호했다. 모임원들도 대부분 대표의 지인 위주로 모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이후 프로그램이 끝난 뒤 단체도 더 이상 운영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했으나 전부 실패라고 느꼈다.
그러던 차에 화성시 청년지원센터에서 청년도시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을 겨우 마친 곳이기 때문에 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기에 어떤 프로그램인지 관심이 갔다. 기존 프로그램은 대부분 원데이 클래스가 많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지역 활동가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커리큘럼을 봐도 당시에는 무엇을 배우는지 알 수 없었다.
신청하기 전에 좀 망설였다. 듣고 싶은 교육도 아니었고, 막연히 기대했다가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신청했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교육 내용은 대부분 좋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활동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졌다. 그렇지만 참여자 대부분이 생각하듯이 불모지 같은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도하기가 다소 막막했다. 그 후에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팀을 짰는데, 그 과정에서 반려동물 소식지를 만드는 팀에 합류했다.
두 명이 한 팀이 되었는데 다른 팀원은 반려동물에 진심인 분이었다. 사회에서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이제 확산되는 추세이고, 마을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한 환경이 잘 조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좀 더 개선되기를 원했다. 한편으로 같은 반려인끼리 성토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하기도 했다. 소식지를 만들려는 것도 그동안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느꼈던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 경우에는 어렸을 때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있을 뿐이고, 그때도 제대로 키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은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캠페인으로 가는 게 어떨까 제안했다. 그렇지만 그 제안을 듣는 팀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방향이 맞지 않은 것 같으니 갈라서자는 통보를 받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뚜렷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발목이 잡히기 싫은 것도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이렇게 팀이 갈라져 버리면 이미 이전 일로 센터 관계자들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의견을 따르겠다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설득했고, 설득 끝에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팀을 하기로 했지만, 팀원은 하고 싶은 일에 많은 데에 비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멘토로 붙었던 활동가분이 반려견 산책 모임을 만들고, 그 활동을 바탕으로 소식지를 만드는 것으로 조율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원치 않았던 반려견과의 산책을 따라갔다. 지금도 나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반려견을 키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부모님이 케어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키우기 버거워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때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권한이 없었다.
그 후 성인이 되면서 사회에서는 반려동물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지만 내 경우에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키우고 싶지 않았고, 여유가 되어서 키운다 한들 그에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동물에 대한 관점도 결국 인간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어서 동물과의 진정한 교감이 가능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다.
그러한 의심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안에서도 의견이 안 맞거나, 시간이 촉박해서 충돌한 적도 있지만 나름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산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개는 집에 있으면 답답해 하고, 체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산책해야 한다. 한편으로 인간 중심으로 이뤄진 도시에서 개를 산책을 시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식지에 쓸 글을 썼고, 발표 당시에 다소간의 호응을 얻었다.
물론 당시에는 힘들었던 기억이 많았다. 처음 프로젝트를 한 것이기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돌이키면 청년단체에서도 내 고집을 부린 경우가 많았다. 머리로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에는 책에 매몰되다 보니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니 어떻게 의견을 조율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이후의 활동에서도 그렇게 현실을 인식하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점점 사회에 적응해 나갔다.
이전에도 여러 활동을 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매력적이지 못하거나 상대에게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달리 말하면 빌런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 경험이 쌓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대한 어려움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때를 떠올리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그저 잊고 싶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에서 유효했다.
당시에는 청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할 때 일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제는 니트 청년이나 고립청년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청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프로그램 이후에도 센터와의 인연은 이어져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