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 중 한 명이 니트컴퍼니에 관한 기록을 올리고는 했다. 나는 그게 무슨 활동인지는 모르지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화성시 청년지원센터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알고 그 분이 그곳에서 조만간 니트컴퍼니를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때가 되면 기꺼이 하겠다며 소식을 전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수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때쯤 나는 청년도시학교를 마치고 약간 지친 상태였다. 활동이 끝나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사람들과 멀어졌고, 아직도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니트컴퍼니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참여할 지 고민이 됐다. 그때는 인간관계에 지쳐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이런 활동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이곳이 그나마 내 성향과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으로 활동해보자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니트컴퍼니는 니트들이 가상 회사에 입사했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직원으로 입사한 사람들은 각자의 업무를 스스로 정해 자신이 한 것을 매일 인증한다. 운영자들은 그것을 보고 업무를 했는지 확인하고, 업무를 미루는 무기력한 사람에게는 독려한다.
내가 참여했던 곳은 9기 화성점이었다. 원래 목표 인원은 50명이었으나 홍보가 잘 되지 않아 20명 남짓이 모였다. 인근의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실제로 지역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중에 니트컴퍼니 활동을 더 해보니 이때의 여건이 오히려 좋았다는 것을 알았다. 모인 인원이 많지 않다 보니 활동했을 당시에는 끈끈하기도 했고, 센터라는 공간이 있어 매주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력을 느꼈다.
그렇지만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성비로 인해 무언가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사람들은 서로 처음 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친근하게 대했다. 대부분 무업 기간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프라인에서도 업무로 정한 글쓰기만 하면서 그저 사람들을 조용히 따랐다. 주도적인 몇몇 사람이 눈에 띄어서 그냥 묻어가야겠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묻어가면 이곳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룹별로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인터뷰를 신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각자마다 고충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활동할 때는 마냥 웃고 즐겁게 지내지만 각자의 고민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인터뷰를 같이 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내 경우에는 오랜 기간 고립 생활을 하다 보니 대부분은 나보다 불행하지 않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인터뷰를 통해 그런 마음이 사그라졌고, 사람들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친밀감이 생겼다고 해서 쉽사리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백 일이 지났고, 프로그램 마무리를 위해서 전시를 준비해야 했다. 따로 스태프를 정하지는 않고, 어쩌다 보니 모여서 각자의 역할을 정했지만 뭘 해야 할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독립서점에서 판매하는 블라인드 북을 모티프로 한 판매 부스를 운영했다. 그와 함께 전시회의 발문을 맡아 쓰기도 했다.
그때는 전시회보다 한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 사람은 인스타툰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는데 그림을 잘 그리기도 했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잘 담았다. 밥을 먹을 때도 같은 자리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고, 블로그에서 이웃을 맺고 교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의 그런 행동은 그저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여 이성적 호감으로 오해해서 실수를 저지를까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시를 마치고 성과공유회를 하면서 이전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오래 이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친밀감이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순간도 지나가는 것이고,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에 사람들과 몇 번 같이 모이기도 했고, 만남을 이어가기 위한 별도의 모임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모두 흐지부지 되었다. 그래도 몇몇 친해진 사람과는 연락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다들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인스타툰을 그리는 사람이 프로그램 마지막 날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사진을 찍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전해주기 위한 이유였다지만 단톡방을 통해서 사진을 전달할 수도 있기에 다소 의아했다. 그 후 뒤풀이 때 서로 말을 놓기로 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꾸준히 연락을 했다. 어쩐지 썸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연애 경험이 많지 않기에 설레발을 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꾸준히 연락을 하고, 몇 차례 데이트를 한 뒤 사귀게 되었다.
애인도 프리랜서여서 일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전만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주로 인문학적 글쓰기를 함께 할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연애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정서적 지지를 충족할 수 있다면 그게 애인이든 공동체든 크게 상관은 없다는 것이다. 애인과 공동체 중 어느 것을 만들기가 더 쉬울까. 그게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애인이 더 어려웠다. 20대 후반까지 연애를 한 번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연애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애인도 비슷한 환경이어서 그런 나를 이해해 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많은 우연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어쩌면 서로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만일 니트컴퍼니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활동하면서 느끼지만 니트컴퍼니 같은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지원사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운영자들이 쉽게 지치거나, 주변 상황에 휩쓸린다. 그렇기에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많아진다면 굳이 연애율 상승을 위해 애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