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연애를 시작한 때부터 고립 생활은 끝났다. 애인과 함께 카페에서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을 응원해 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둘 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 경우에는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을 거의 다 쓰고 있었고, 애인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이 있었지만, 고정 수입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껴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데이트를 해도 대부분 더치페이를 했고, 맛집이나 카페를 가도 대부분 가성비 위주로 갔다. 그렇다고 안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만나기는 해야 했다. 나라도 돈을 벌면 그런 걱정 없이 돈을 쓸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미안했다.
한편으로 애인과 함께 다니면서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게 생각보다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카페에 머무르면서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았고, 배고프면 저렴한 분식집에서 밥을 먹거나, 음식점에서 세트 메뉴 하나와 단품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양식집은 가격이 비싸고 낯설어서 아예 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애인과 함께 처음으로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지역 인근에 가지 않았던 곳을 돌아다니고, 산책과 여행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생활도 결국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 것은 아깝지 않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기 좋은 곳은 대부분 물가가 비쌌다. 그런 곳을 피해 가면 남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누구도 그런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데이트 코스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으레 가는 곳을 연상했다. 연인과 매번 분식집만 갔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는 다소 민망하다. 그래도 지금은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런 데에 대한 부담은 다소 줄어들기는 했다.
애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더 초조해져서 연애를 제대로 못 할 것 같았다. 우선은 돈을 벌어야 했다. 웬만하면 나서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은 편인데 필요하니 저절로 움직이게 되었다. 마침 시청에서 공공일자리 사업을 시작해서 지원하여 일을 시작했다.
공공일자리는 어느 정도 진행했던 기간이 있던 사업이라 분업화가 잘 되어 있었다. 처음 지원할 때 사무직과 외근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운전도 잘 못하고,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사무직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는 공무원의 감시를 받지 않고, 출장비도 나오는 외근직이 인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외근직은 일하는 사람들끼리 갈등이 있었고, 연령대가 높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사무직이 맞았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당장 관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처음 하는 일인데 그것을 당연히 해야 할 것 같은 일처럼 맡기니 부담이 컸다. 나중에는 적응이 되어서 쉬웠지만 처음 적응할 때가 많이 괴롭기는 했다. 그래도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고, 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아 더 어려워해서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숙련이 빨랐다.
그렇지만 적응을 하고 나서도 민원인의 전화를 받는 일은 힘들었다. 민원의 내용은 대부분 세금과 관련된 것인데, 크게 민감한 사안은 아니어서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일부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이미 예전부터 진행했던 사업이기 때문에 가이드가 있었고, 어려운 일은 담당 공무원에게 넘기면 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시간이 남아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가 고역이었다.
한편으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문제이기는 했다. 사무직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경력 단절 여성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다. 어차피 대부분 모니터 앞에서 자기 일을 하느라 수다 떨 여력도 없었지만, 그럴 여유가 있을 때도 관심사가 다르기에 이야기가 별로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향적이라는 핑계로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았다. 친하게 지내도 좋았을 테지만 마음처럼 그게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매번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달았다. 일을 할 때는 대부분 주말에 데이트를 하다 보니 돈을 쓰는 경우가 더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말에 돈을 더 쓰기도 했다. 그럴 때 주로 수원에 있는 행궁동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가성비를 생각해서는 결코 갈 수 없었던 맛집들을 다니고는 했다.
일은 좋았다. 급여가 적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한 돈이었다. 물론 나중에 결혼을 하거나 집을 사야 할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생활을 누리기는 충분했다. 연차를 보장해 주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전에는 어느 직장에서 일해도 눈치 보느라 이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는 목표를 미뤄야 했다. 물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고, 그것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글까지 쓴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과물만 본다면 별로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한창 바빠서 글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성장은 유예됐다. 물론 그런 시기가 있기에 지금 버틸 수 있었다.
애인은 내 꿈을 지지하고, 꿈을 위해서 당장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고 응원한다. 그렇지만 연애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삶을 지속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벌이는 필요하다. 글쓰기로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글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일자리를 전전할 수도 있다. 대신 그때 하게 될 일이 내 삶을 훼손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일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