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쯤, 역설적으로 사람들과 모이고 싶었다. 그때는 줌과 같은 온라인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었고, 내 경우에는 기존 독서모임에서 그것을 바탕으로 이미 모임을 했기 때문에 익숙했다. 그렇지만 모임을 직접 운영할 생각은 안 하다가 어느 날 블로그에 모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올렸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줘서 어쩌다 보니 글쓰기 모임을 열었다.
원래는 프로토타입으로 운영하려던 모임이어서 그 모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운영에 미숙한 것도 있고, 회원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오픈발을 살리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글쓰기 모임이 나에게 맞는가 하는 문제도 있었다. 글쓰기는 좋아하지만, 글을 피드백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 효능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글쓰기 모임을 열었던 것은 독서모임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독서 모임을 여는 데에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는 정치철학 서적을 즐겨 읽어서 독서모임을 연다면 분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주변에 정치철학에 관해 이야기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꼭 정치철학이 아니더라도 사회 문제에 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같은 독서모임에 다니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독서모임을 통해 사회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렇기에 같이 사회학 독서모임을 운영하면 어떨까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연락했다.
나는 모임의 취지와 방향을 설명했다. 그리고 사람이 모이지 않아도 두 명이라도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모임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는 모임을 여는 건 좋은데 사람이 많이 모일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람을 모으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블로그에 비슷한 장르의 책 리뷰를 자주 올렸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이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전문 사회학 독서모임, 혹은 미래를 꿈꾼다는 의미에서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사회학 독서모임을 운영했다.
모임 방식은 모임에 참여할 사람을 공개로 모집하여 단톡방에 들어오면, 모임 날에 참여할 사람을 참석 여부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단톡방에 열 명이 모였고, 나중에는 스무 명 가까이 모였다. 대부분은 블로그를 통해 들어온 사람이었다. 내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보다 알게 모르게 숨어 있던 사람이 많이 왔다.
그렇게 해서 첫 모임을 했는데 그때 했던 책이 『임계장 이야기』였다. 사회학에 가까운 책이지만 르포의 성격을 띤 책이어서 모임의 시작으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 의식하는 결이 비슷했다. 이후에는 책 선정도 나름 머리를 썼다. 사회학 책을 다루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같은 장르의 책을 다루면 중복된다는 인상이어서 피했다. 책 추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기에 기존의 읽은 책 중에서 같이 읽고 싶은 책을 지정도서로 했다.
그중에는 반응이 좋았던 것도 있고, 안 좋았던 것도 있다. 무엇보다 같이 참여하기로 한 운영자가 문제를 제기했다. 원래 취지가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아니었냐며, 그런 쪽으로 모임을 운영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운영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모인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중간에 끼어서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방치하는 편을 택했다. 어쨌든 모임의 운영 경험을 갖기 위해 모임을 일 년 이상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운영해 보니 흥미도 붙고, 고정 회원도 생겨서 이렇게만 운영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고정 회원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인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임이 지속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나쁠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 후에 연애를 시작하고, 일을 하게 되면서 삶에 새로운 분기점이 왔음음을 느꼈다. 독서도 좋지만 지금 해야 할 것은 창작이었다. 기존에는 독서와 글쓰기가 함께 가는 것이었다면, 이후에는 연애와 일, 활동까지 하면서 원하는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한편으로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물론 여전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일 년이 지나고 2기 모임을 진행하는 도중에 돌연 모임장을 관두겠다고 선언했다. 갑작스런 통보에 모임원들은 당황했다. 모임의 존속 문제에 관해서는 모임원들이 알아서 정리를 했다. 모임장을 관둔다고 해도 모임이 유지되기를 원했다. 그런 의향을 밝히자 평소에 모임에서 주도적이고, 또 여러 독서모임을 한 경력이 있는 분이 새로운 모임장으로 추대되어 모임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 후로 블로그를 통해 모임의 소식을 듣고 있다. 벌써 그렇게 모임이 유지된 지도 2년이 넘어간다. 그러는 동안 모임은 전문 철학 서적을 읽는 모임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모임의 형태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후에 모임을 같이 했던 운영자와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내 경우에는 그 일로 약간 서먹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생각했을 때 이전의 독서모임은 사회학을 다루면서 현실에 있는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도 이해했지만 독서모임의 성격상 책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먼저냐, 책이 먼저냐고 한다면 당연히 현실이 먼저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그도 이제는 독서모임을 통해 그런 자리를 찾기보다는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동하려고 한다.
이후 나는 새로운 청년단체에 들어가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것만으로 사회가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니트컴퍼니 활동을 하면서 느낀 대로 나와 맞는 적절한 공동체가 있어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내가 속했던 독서모임의 경우 나와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특히 모임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과 장르에 대해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