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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 Oct 21. 2024

실패한 모임을 좋아하는 이유

청년도시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직접 만들라는 것이다. 그게 말은 쉽지, 현실에서는 어렵다. 그런데 그때는 교육을 막 들은 차여서 감화되었다. 그래서 성과공유회 때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당장 사람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니트컴퍼니에서 만난 인연으로 다소 해결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연결의 끈을 이어가고자 했고, 이에 <요즘 애들>이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이름은 『요즘 애들』이라는 책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2, 30대가 읽을 만한 책을 선정해서 읽는다는 기획의 모임이었다. 이왕이면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독서모임 지원사업에 떨어졌고, 독서모임으로 사람을 모으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역이 중점이 되어야 하는데,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워낙 넓어 모든 사람이 모일만한 적합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금 같았으면 아예 동네로 폭을 좁혔을 테지만 그때는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정 회원부터 모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섭외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생긴 단점이 있다면 같은 지역에서 모였을 뿐, 관심사가 겹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참여 의욕이 낮았다.


무엇보다 독서모임을 운영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다. 물론 능력이라는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어서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기는 하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홍보 능력이 좋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실력이 좋을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책을 읽은 경험이 많아서 큐레이션에는 능하지만, 이것이 실제 모임에서 잘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골고루 읽는 편이기는 했지만, 나름의 자존심이 있어서 시중의 베스트셀러는 소개하지 않는다는 고집이 있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독서모임은 책을 통해서 가볍게 만나는 모임이다. 그래서 각자 읽을 책을 들고 와서 시간 내에 책을 읽고,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모임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이 책을 읽기를 어려워하고, 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모임을 오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 장벽을 낮추기 위해 그런 독서모임이 만들어진다.


책을 읽다 보면 깊이 파고들 수밖에 없다. 그런 데에 비해 책의 장르도 다양하고, 책으로 얻고자 하는 바도 각기 달라서 독서모임 하나만으로 사람을 묶기는 어렵다. 소수 인원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는 고정된 주제로 함께 모이거나, 아니면 가벼운 주제여야 한다.


이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매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모임을 여는 것으로 만족했다. 만약 이게 잘 된다면 더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인원이 늘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모임은 어플을 활용하는데 내 경우에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모집했다. 그렇다고 개인 블로그에 유입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기획자들이 보면 경악했을 테지만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했다.


모임의 진행도 그렇게 매끄럽지는 못했다. 그래도 오래 독서모임을 다녀서 진행은 했지만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높이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렇게 굳이 친밀감을 높이지 않아도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의 만족도도 떨어졌다. 사람들끼리 친해지기에는 만남의 밀도도 낮았고, 결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러니 독서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친해지기가 생각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후 다른 여러 활동을 하느라 부침을 겪어 운영을 중단했고, 이제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거나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다른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끈끈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고립 경험이 있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서 운영해도 되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고립 경험이 있는 경우 아무래도 인간관계가 미숙하기도 하고, 모임의 실패로 인해 더 크게 좌절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모임을 운영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경험을 쌓은 뒤 모임을 여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이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경험이 때로는 상처이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직접 겪는 실패보다는 덜 아프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험이 사회에 나가기 위한 좋은 건널목이 된다. 그렇기에 모임을 선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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