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더라도 구체적으로 끄집어내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했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적당한 소재를 썼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한 기대로 예전에 쓴 글을 탐색했지만 생각보다 건질 게 없었다.
블로그에 쓴 글이 다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읽은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 검색해서 확인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록용이다. 한편으로 외로웠거나 힘들었던 시기의 기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을 참고하여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기록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록들은 대부분 솔직하지 못하여 다소 어긋나 있다.
예전에 겪은 경험임에도 그 상황을 온전히 기억하기가 어렵다. 왜 그때는 솔직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블로그는 하나의 사회였다. 현실 속의 나는 어리숙한 청년이었으나 블로그에서는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렸다. 그렇게 소통했기 때문에 글을 써도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블로그에도 인연이 생겼다. 그들이 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혹여 소문이 날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인문학, 사회학 서적에 관한 글을 주로 썼다. 때로는 사회 이슈에 관해서 한두 마디 얹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만 감정을 배출했다. 그러면서도 눈치가 보여 구구절절 말하는 것을 피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라 여겼다. 나는 나의 과거나 정치적 성향에 관해서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은 나의 현실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언제까지나 나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태도를 보였다. 그런 태도는 방구석 평론가라는 단어가 적합했다.
블로그에서 가상의 필명을 갖고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몰입했다. 개인의 속사정보다 사회의 돌아가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그게 당장 나와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사자성이 떨어졌다. 물론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그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내 식대로 해석하는 것을 즐겼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창 글을 쓰던 이십 대의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는 얼마 없었다. 비록 정치철학이나 사회학에 꽂혀서 서평을 써서 올렸지만, 사회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것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그것이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때로는 사회가 개인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회 구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면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원했다. 같은 경험을 한 당사자가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활동할 것을 염두에 두어서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철저히 익명으로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혼란을 겪었다. 솔직하게 써야 사람들이 공감하는데, 고립 생활을 하면서 이렇다 할 에피소드가 없었다. 그 후 고립에서 벗어나면서 홍보를 위해 블로그에 나를 노출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 정체가 드러난 뒤부터는 이야기하기 더 조심스러워졌다.
작가 중에도 자신의 치부까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물론 그것들을 쉽게 드러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꺼낸 것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나 역시 내 모습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공언하는 일은 다른 일이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모아 그것을 책으로 엮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대신 블로그에서는 수다를 떠는 것처럼 가볍게 글을 썼다.
블로그를 했던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블로그를 찾아봤는데 때로는 열등감이나 좌절하는 모습도 보이기는 했지만 내 방식대로 명랑했다.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있었고, 그게 돈이 되든 안 되든 꾸준히 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나는 행복했다. 지금에 와서 과거의 나를 단지 고립 당사자로 보고, 그 시기를 불행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난감한 부분이 있다.
한 복지재단에서 고립청년에 관한 간담회를 진행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출연한 고립 당사자 중 한 명은 고립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물었을 때 천 편의 영화를 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사회자는 그것이 곧 고립된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 사람은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영화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 시기에 영화라도 없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게도 블로그가 있었기에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의존이 오히려 사회로 나가는 데에 방해물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여기에 관해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이후 고립청년들을 인터뷰하면서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어떤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부정해봤자 남는 것은 없다. 오히려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고립되기가 더 쉽다. 그렇기에 그시간을 털어버리고 자신의 길을 찾는다면 고립의 시기도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은둔 당사자를 위해 활동하는 안무서운회사에서는 은둔 당사자를 발굴하여 활동가로 양성시키는 프로그램에 ‘은둔 고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은둔도 스펙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어울리는 작명이다. 부정적인 면도 다른 쪽으로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태도다. 블로그에서 어느 정도 행복을 가장했지만, 그 시절이 행복한 것도 맞다. 지금은 지금의 과제가 있을 뿐이다. 그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요즘의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더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