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반짝 Oct 18. 2022

어르신들의 시간

- 세상 한 조각 젊은이가 어르신들께 보내는 응원

 시골 면서기가 되어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암호처럼 느껴지던 마을의 속지명이 지금은 듣기만 해도 어느 동네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것처럼, 이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만 보면 내 손님이구나 하는 느낌이 딱 옵니다.


노인인구가 많은 시골 동네에서 저를 찾는 고객의 대부분은 어르신들이지요. 집으로 배달된 우편물을 들고 찾아와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냐 물어보기도 하시고, 주머니에서 불쑥 휴대전화를 꺼내 벨소리나 글자크기를 키워 달라고도 하십니다. 늘 고요한 외로움과 동무하는 어르신들에게 집 근처에 있는 면사무소 직원들은 멀리 사는 자식과 손주를 대신해 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기에, 들리지 않는 귀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는 거추장스러움 쯤이야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요.


 수년째 사회복지업무를 하면서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분들의 댁을 방문해 보면, 추운 겨울에도 기름 값 아낀다고 보일러도 안 틀고 식사도 허기만 면할 정도로 대충 때우는 어르신들을 자주 보곤 합니다. 그런 분들께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할지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에 가끔씩 통장에 생각보다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적잖이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돈으로 보일러도 뜨끈하게 틀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하지 왜 이렇게 살고 계시느냐 채근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그거는 나중에 내가 마이 아파가 병원 갔을 때 하고, 또 저승 갈 때 장례 치를 돈이래, 보태준 거도 없는데 죽을 때 자식들한테 손 벌리면 안 되잖나...”


 늘 듣는 소리기에 놀랄 것도 없지만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부모님 생각이 나 찡하면서도 속상한 감정이 울컥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평생 온몸을 갈아 넣은 것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더 이상의 말은 아끼게 되지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나이를 먹습니다. 때때로 어르신들이 불가능한 것을 되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거나 별 것 아닌 한마디에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 집에 있는 아이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어쩌면 신께서 고단한 삶을 사는 동안 잊고 지냈던 어리광을 돌아가기 전에라도 마음껏 부려보라고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의 모습이 드러나게 인간을 만든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르신들에게도 누구보다 찬란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그분들이 지나간 길을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기에, 또한 언젠가는 만나게 될 나의 모습이기에 그 어떤 삶도 무시되거나 하찮게 여겨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업무든 일상생활에서든 매사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감정을 가진 동물인지라 말과 행동이 매 순간 한결같을 수는 없기에 때로는 서운함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으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이 마음속으로 늘 어르신들의 모든 시간에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신 이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