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주 남산에 갔습니다.
이젠 바람이 완연한 가을을 말합니다.
남산엔 흰구름의 계곡이라는 백운계곡이 있고 그곳에 백운암이 있습니다.
400m 남짓한 산에 구름이 머물러 봐야 얼마나 머물까요.
그 옛날 부처님은 구름을 게으름에 비유하셨다지요.
구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 하여 구름을 게으름에 비유하셨다 합니다.
그래서 나도 백운계곡으로 왔나 봅니다. 여기라면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암자 마당에 서산대사의 시가 붙여져 있습니다.
“뭘 그렇게 고민하시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길어도 산들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요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우리가 스물에 만나 쉰에 이별했으니 내 삶의 절반 이상을 당신과 함께 했습니다.
한 순간이라 말하기엔 아직은 이른 듯합니다.
다만, 눈보라 같이 지독한 외로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겠지요.
세월 가면 나도 ‘다 바람이라오‘하며 당신께로 갈 수 있겠지요.
202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