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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Oct 06. 2023

서생포 왜성이 여기 있었지

해파랑길 5코스 달리기 여행

  벼이삭색 같은 맑고 투명한 가을 햇살을 안고 있는 진하해변은 고즈넉하니 좋았다. 여름내 북적였을 해수욕객들은 모두 떠나고 어지러이 발자국만 남아있다. 지난 6월 말에 5코스 여행을 위해 이곳을 찾았었다. 그러나 계단을 헛디뎌 발목을 삐는 바람에 완주를 못하고 이렇게 추석연후에 다시 찾아왔다.

진하해수욕장. 멀리 명선도가 보인다.

  쉬는 동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여행보다는 달리는 것에 방점이 찍혀 버렸다. 개미들이 페로몬 냄새만 쫓아가듯 오직 코스를 알리는 리본만을 쫓아가기 바빴던 것이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여행이 아니었다. 귀한 시간을 들여 다시 또 온다는 기약을 할 수 없는 여행을 하면서 너무 급한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자유롭게 코스 주변에 있는 다른 볼거리도 함께 보는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해파랑길 5코스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진하해수욕장 팔각정 앞에서부터 시작하여 청량읍 상남리(덕하) 청량파출소 앞까지이며, 총거리는 17.7km이다. 그러나 나는 진하해수욕장 서편 산에 있는 서생포 왜성도 함께 둘러볼 계획이라 거리와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명선교는 건너편 횟집들과 해변을 이어주는 인도교이다

  팔각정 앞에서 큐알코드를 찍고 회야강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강양항을 향해 달렸다. 회야강은 양산에 있는 천성산 무지개폭포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운산과 천상산을 가르고 내쳐 달려 주변 들판을 휘돌아 넉넉하게 농사에 필요한 물을 내어주고 이번엔 회야댐으로 울산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유유히 흐르고 흘러 이곳 강양항에서 동해와 만나게 된다.

  나의 처갓집이 회야댐 둑 바로 앞 마을 양천이라 처삼촌들로부터 옛날 회야댐을 막기 전에는 참 맑은 물이 흘렀었고 고운 모래밭엔 물고기가 많이도 살아서 배고프던 그 시절 집집마다 고추장이 남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댐 바로 아래는 물이 썩어 고기가 살 수 없으니 모두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원래 코스는 명선교를 지나면서 회야강을 따라 쭉 이어지는 강변길을 가면 되지만 나는 서생포왜성을 가기 위해 명선교를 지나면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에서 산 쪽을 바라보면 산 중턱부터 꼭대기까지 쌓여있는 성벽이 보이고 버스 정류장도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주도로 지어진 성으로 이곳에선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다. 그 후 조선군에서 사용하기도 하여 왜성 중에서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성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니고 울산광역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봄이면 벚꽃구경을 위해 연인들이 찾기도 하고 일본 단체관광객들이 방문하기도 한단다. 울산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도 서생포 왜성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실제 와본 건 몇 해 전 일이다. 온 나라가 'NO JAPAN' 열기로 뜨거울 그 무렵 경상좌도 병영성 성곽 언저리에 내가 이사를 오면서 성에 대한 관심이 생겨 호기심에 와 본 것이 처음이었다.  

왜성의 내성 주출입구. 이런 식으로 성 내부에 많은 성벽과 성문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내가 처음 왜성의 구조를 보는 순간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네 성벽은 90도로 쌓아 올린 반면 왜성은 60도 정도로 쌓아 올라가다 사람키 한 길 이상 올라가는 지점부터 일본도 곡선처럼 날렵하게 솟아져 올라간다. 그런 구조는 성위에서 성 아래를 지켜보며 방비하기에 많이 유리할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네 성은 메인 성곽을 넘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 방어에 속수무책인 반면 왜성은 외부 성곽 안에 마치 양파껍질처럼 촘촘히 미로처럼 계속 성곽이 쌓여있다. 그러고도 위쪽엔 외부로 향하는 통로가 여럿 있어 언제든 상대를 기습공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런 성의 구조를 갖고 있으니 울산성전투에서 5만이 넘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함락시키지 못한 이유가 설명되는 듯하다.

  나는 이 왜성을 볼 때마다 결코 일본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을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은 항상 숨기고 있는 그들의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젊은이들의 'NO JAPAN'도 좋고 '국뽕'도 좋지만 뽕에 취해 경계심 마저 놓으면 안 된다. 젊은 친구들은 꼭 서생포 왜성을 한 번은 와 보기를 추천한다.     


  왜성 동문에서 회야강까지 직선거리로 1km 나 될까? 그러나 그 사이엔 논으로 가로막혀 있고 그나마 있는 농로도 회야강 둔치도로와는 연결이 되어 있지는 막다른 길이다. 막다른 길 앞에서 다시 돌아가기도 막막하고 겨울이면 언덕을 기어 올라가겠지만 잔뜩 우거진 풀숲에서 뱀이라도 밟는다면 어쩐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사설 낚시터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에게 길이 아니라는 퉁을 들어야 했다. '참 고약하다. 어차피 손님을 받는 낚시터에 사람하나 지나간다고 그리 할 건 뭐 있누.' 행정기관에서 관광상품에 대해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것을 많이 아쉽다.       

낚시터 아주머니에게 욕을 한 바가지 듣고 나오니 둔치엔 낚시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금의 회야강 하구는 이렇게 고깃배들과 낚시꾼들 그리고 오리배들이 평화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 이곳은 왜선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섬뜩하다.


  서생교를 지나면서는 편안하게 회야강을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된다. 가을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오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달리기에 딱이었다. 남창천과 합수하는 구간을 넘어서면서부터 강은 다시 구불구불 흘러가며 덕신리를 감아 돌아간다.

  덕신은 과거 산업화시절 고래고기로 유명했던 장생포와 그 일대에 대단위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되면서부터 인근 온산지역 주민들의 공해 피해가 심각해지자 집단 이주를 위해 조성된 곳이다. 지금은 온산공단에 입주한 많은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기로 체류하거나 장기로 터 잡고 살아가고 있는 곳이 되었고 온산공단 경기에 민감하게 부침을 겪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덕신을 지나면서부터는 강의 유량도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앞에서 회야댐이 막고 있으니 댐 아래는 이렇게 된다. 이제 점점 회야강과 이별해야 하는 지점이 다가오고 있다.  

유량이 적으니 강폭도 좁아져 이런 다리로도 넘어갈 수 있다.

  울산과 부산 해운대를 연결하는 동해선 망양역을 지나면서 회야강과는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 강물과 함께 불어오던 맞바람의 저항이 없어지니 조금 수월해지긴 했지만 대신 지루하고 재미없는 찻길만 약 2~3km 남게 된다.

  추석 뒷날이라 덕하 5일장이 열린다 해도 볼거리가 뭐 있을까만은 그마저도 장날이 아니라 덕하역 앞은 한산하기만 하다.

  나의 해파랑길 5코스 달리기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전에는 한 번에 두 코스씩 달렸던 것을 이제부터는 한 코스씩 하기로 했다. 대신 체력을 조금 남겨서 주변 명승지도 구경하고, 동네 구경도 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래도 약 석 달을 쉬었다 긴 거리를 달린 탓에 영 죽을 맛이다.


- 총 거리 20.94km

- 소요시간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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