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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Oct 23. 2023

길에서 길을 잃는다

올해는 여기저기 부상이 끊이질 않는다. 6월 말에는 발목을 접질려 몇 달을 꼼짝 못 하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 후 발목 상태가 조금 나아진 듯하여 10월 초에 20킬로미터 해파랑길 달리기 여행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장경인대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혼자된 나를 일으켜 세우기엔 정신없이 땀 한줄금 흘리는 것보다 더한 약이 없는 것 같아 다소 무리하게 운동한 대가를 이렇게 치르는가 보다.   

처음엔 무릎을 오므리면 펴지질 않고 펴면 오므리질 못하겠더니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고 걷는 것도 가능해졌다. 무릎 상태도 테스트 할 겸 며칠 전 무룡산에 다녀왔다.


늦은 아침, 배낭에 물만 넣고 산으로 향했다. 어치피 테스트 겸 가는 산행이고 거리는 8킬로미터 정도라 물 말고는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다. 천천히 산을 걸어가는 맛은 참 좋았다. 그동안 뭐가 그리도 급해 허겁지겁 올라갔나 싶다. 천천히 걸어가니 다람쥐도 보이고, 수줍은 들국화도 보이고, 바람이 나무를 스쳐가는 소리도 들린다. 


젊은 아빠가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앞세우고 조심조심 올라가고 있다. 또 한참 앞에는 열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씩씩하게 걸어가고 그 앞엔 젊은 엄마가 '나 건드리지 마'하는 듯이 혼자 열심히 앞서가고 있다. 뒤따라가는 아빠가 아이들 엄마에게 뭐라 말한다. 그 말에 엄마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그러자 아들이 엄마와 가까워졌다. 

'아빠가 부른 게 저 이유겠다' 

일주일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렸을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아이들 챙기지 않는 아내가 미운 아빠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딴에는 아이들 챙긴다 생각했지만 아내가 보기엔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그걸 알기까지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다. 이젠 미안하다 말할 그 사람도 없다. 


무룡산은 매봉을 지나면 반절 이상 오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봉을 옆으로 비켜 돌아가는 임도를 통해 간다. 그러나 나는 임도보다는 매봉을 거쳐가는 산길이 더 좋다. 임도에 깔린 자갈과 차들로 다져진 딱딱한 느낌이 별로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길 옆으로 비켜서 숨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다. 앞에 건장한 젊은 남자는 내가 신경 쓰이는지 발걸음이 어지러워진다. 평소의 나라면 일찌감치 추월했겠지만 오늘은 무릎 테스트 중이라 뒤 따라 걸었다. '이러다 이 사람 죽겠다' 싶어 앞질렀다. 이젠 반대로 그 남자가 나를 추월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웃음이 난다. 이게 뭐라고. 


정상에는 사진 찍는 사람,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 먹는 사람. 산은 이렇게 내어준다. 각자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그렇게 다 내어준다. 


입 다실 것 하나 없이 온 나는 물 한 모금 마시고 발걸음을 통신탑 쪽으로 틀었다. 늘 다니던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다. 통신탑을 옆으로 돌아 동대산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다시 무룡산 임도길과 만나게 된다. 지루한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오르내리면 매봉이 나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내가 보통 다니는 길이다. 

통신탑에서 동대산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이정표에서 '무룡사 1.2km'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내가 올라온 반대방향으로 산을 완전히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왕복 2.4킬로미터 뭐 대략 1시간 정도.' 간식도 없고 무릎 상태도 의심스럽지만 그동안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니 한번 가보고 싶다. 

무룡산의 이름을 딴 절인지, 절의 이름을 딴 산인지 알지 못하나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다만 산행출발 시간이 늦어 이미 점심시간이고 내겐 먹을 것이 하나도 없긴 하지만 거리가 3킬로미터 이내이니 다녀와도 될 것 같았다.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서자 눈앞에 동해바다가 활짝 열린다. 무룡산 정상은 태화강 하구와 시내 전경은 잘 보이지만 동해바다는 통신탑에 가려 아쉬웠었는데 이런 곳이 있다니. 


쨍한 가을햇살을 가득 받은 동해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알지 못하겠다. 

'무룡산(舞龍山)'이라는 명칭은 기우제의 옛말인 '무우제'의 '무'자와 '용'자가 합쳐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용이 춤은 추는 산'이라 하고 싶다. 푸른 동해바다에 사는 용이 땅에 올라 한바탕 춤추듯 구불구불 이어진 산은 우뚝 솟아 하늘에 닿고, 하늘에 닿은 산은 다시 끊어질 듯 이어져 바다에 이르는 것이 용이 춤추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고 무룡사를 향해 내려갔다. 데크 계단을 한참 내려서니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는 소리가 마치 파도소리인 듯하다. '쏴~아' '쓰~으'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소리로 보는 것 같은 착각에 걸음을 뗄 수가 없다.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푸석푸석하다. 내려갈 때까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멀리서 닭이 목청을 돋우며 울어댄다. 다 내려왔나 보다. 길은 농로를 만나고 더 이상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무룡사를 가려면 농로를 통해 내려가야 하는지, 올라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 절은 산에 붙어 있겠지 싶어 산 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무룡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뒤로 산그늘에 숨은 절이 보인다. 절에서는 법회라도 하는지 스님의 설법소리가 조용조용 새어 나온다. 

현대도 과거도 아닌 그 어디쯤의 절. 법당 뒤편 산기슭에 마련된 산신각까지 둘러보고 내려와 법당 옆 밴치에 앉아 잠잠히 숨을 돌려본다. 

법당 지붕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지붕이 일반적인 사찰 지붕과는 다르다. 대개는 팔작지붕으로 위세를 보이지만 이곳 무룡사 대웅전은 박공지붕이다. 보통은 요사체나 스님들의 강원같이 긴 공간이 필요한 곳에 많이 사용하는 박공지붕이 이곳에는 대웅전에 사용되었다. 박공지붕은 웅장한 멋이 있는 대신 한옥지붕의 날아갈 듯 살짝 솟아오르는 추녀의 곡선미는 없다. 새롭다.

이름에 용이 있어서 그런지 지붕을 받치고 있는 보의 끝을 용으로 장식했다. 지혜를 상징하는 뱀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용이 되었다. 통도사에도 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반야용선도'가 있다. 

의심의 종교인 불교,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지혜를 용을 타고 우리 모두가 건너가길 염원하는 용선. 대웅전 지붕아래 용 4마리는 어서 나를 타고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자 말하는 듯하다.


무룡사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오니 스님이 스피커를 밖에도 들리게 했나 보다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농로를 지나 다시 산길을 올라가는 중에도 염불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바람소리와 뒤섞여 뭐라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고즈넉한 오후 산행길에 축도를 받는 것 같다.


무룡사를 보고 돌아가는 길은 산을 두 번 타는 것과 같다. 편안히 무릎 상태나 살필 요량으로 시작한 산행이 예정 없이 길을 바꿈으로써 길을 잃은 것이 돼버렸다. 길을 잃으니 비록 힘은 들지만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 2년간 준비한 일이 틀어질 지경에 처했다. 그러나 길은 멈추지 않는 자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길에서 길을 묻고, 길에서 삶을 묻고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 싶다.


올라오는 중에 무릎에서 신호가 온다, 다시 무릎 바깥쪽이 조금씩 아파온다. 오르막은 그럭저럭 갈만 한데 내리막이 걱정이다. 다시 온 무룡산 정상에서 동대산 방향으로 돌아 내려가는 완경사길을 버리고 경사는 심해도 최단거리 길을 통해 출발점인 화동못 주차장으로 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스틱도, 먹을 것도 없이 온 나의 대충 정신이 그리 오랫동안 마나님에게 욕을 먹고도 아직 고쳐지질 않았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어찌저찌 절며 끌며 화동못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 총거리는 약 12.6킬로미터. 저승 가면 마나님에게 욕 들어먹을 거리 하나 추가하고 무사히 집으로 왔다. 입맛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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